영화 '스틸 앨리스'
기억은 참 야속하다. 붙잡으려 하면 할수록 술술술 새어나간다. 나는 어렸을 때 건망증이 좀 있었다. 주로 잃어버리던 것은 우산과 필통이었던 것 같다. 가끔은 내가 잃어버렸던 바로 그 자리에 운 좋게도 그 물건들이 있어줄 때도 있었다. 그래도, 그때에는 내가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기억했다. 그때는 뭔가를 잃었다는 사실이 너무나 크게 다가왔다. 또 다시 똑같은 이유로 혼나는 것이 두려웠다. 그런데, 나이가 들고 보니 이제는 내가 무엇을 잃어버렸는지를 모르고 있는 것이 더 무섭게 다가온다.
앨리스는 언어학 교수다. 세 자녀는 모두 성장했지만, 여전히 열정적으로 대학에서 강의를 한다. 어느 날, 초청을 받아서 다른 대학에 갔다가 말하려던 단어가 기억이 안 나는 상황을 겪게 된다. 그녀는 그냥 그러려니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다. 단어 하나 기억이 안 나는 게 뭐 대수겠는가. 그런데, 하루는 조깅을 나가서 한참을 뛰다가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 거지?'
그녀는 병원에서 그녀에게 했던 이야기들을 쉽게 믿을 수 없었다. 누구보다 머리를 많이 쓰는 직업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는 스스로의 상태에 대해서 확신을 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상황은 좋지 못했다. 앨리스는 희귀한 종류의 알츠하이머 병을 앓고 있었다. 병은 예상보다 빠르게 그녀를 잠식해나갔고, 기억은 낙엽이 바스러지듯이 너무나도 쉽게 추억 속으로 흩어져갔다.
예전에 '에고 트릭'이라는 책을 봤었다. 그동안 인지하고 있지 못했던 '나'라는 존재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만드는 책이었다. 책에서는 '나'라는 개념이 어떻게 구성되어있는지를 이야기한다. 나는 과학에 쉽게 흥미를 붙이지는 못했지만, 이 책만큼은 예외였다. 이 책의 저자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자아의 핵심은 없다'라고.
자아는 여러 요소들의 합으로 이루어진다. 정신의 구조물인 자아는 기억에 의존한다. 과거의 '나'하고 현재의 '나'를 잇는 데에는 '기억'이 필수적이다. 자아에 필수적인 부분이 없다는 것은, 다르게 말하면 그것을 이루는 어떤 한 부분이 부족하더라도 우리는 여전히 살아갈 수 있다는 이야기다.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끔찍한 이유는, '나'를 이루고 있던 기억들을 점차 잊어간다는 것이다. 내가 누구의 아들, 딸인지. 내가 어떤 일을 하던 사람이었는지, 무엇을 좋아했었는지를 말이다. 앨리스가 영화 중간에 사람들 앞에서 연설하는 부분에서 그런 말이 나온다.
앨리스: 한때 우리의 모습에서 멀어진 우리는 우스꽝스럽습니다. 우리의 이상한 행동과 더듬거리는 말투는 우리에 대한 타인의 인식을 바꾸고, 스스로에 대한 우리의 인식도 바꿉니다. 우린 바보처럼 무능해지고 우스워집니다. 하지만, 그건 우리가 아닙니다. 우리의 병이죠.
스스로가 고통스럽지 않고, 그저 애쓰고 있을 뿐이라고 이야기하는 그녀의 마음이 어떨지 감히 상상하기가 힘들다. 애써 감정을 억누르며 차분하게 이야기하는 앨리스의 모습에서 나는 계속 영화를 멈추고 있었다. 나는 '기억에 남는다'는 말을 참 많이 사용했다. 그렇게 이야기했던 그 모든 상황들이 항상 기억나는 것은 아니다. 어떨 때는 그냥 의미가 있음을 이야기하고 싶어서 그렇게 표현하기도 했었다. 기억한다는 말을 참 쉽게 쉽게 해왔지만, 그 무게를 실감하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잊어버린 것에 대해서는 쉽게 쉽게 넘어가고는 했었으니까.
앨리스는 연설에서 매일 매일 상실의 기술을 배우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녀는 목적을 잊어버리고, 사람들의 이름을 잊어버리고, 기억을 잊는다. 그녀는 평생 쌓아온 기억과 노력해서 얻은 모든 것들이 사라져 간다고 말한다. 내가 쌓아둔 기억이 사라지는 것은, 결국 '나'라고 만들어놓은 세계가 부서지는 일이다. 결국, 그런 상황에서 앨리스가 할 수 있는 것은 이것 뿐이었다. 지금 이 순간을 사는 것.
지금 이 순간을 살라고 스스로에게 말합니다. 그게 제가 할 수 있는 전부니까요.
사진 출처: 다음 영화 '스틸 앨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