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과 수단

영화 '모스트 바이어런트'

by wanderer

떠오르지 않은 태양을 뒤로한 채 한 남자가 거리를 질주한다. 아직 태양의 열기는 거리에 스며들지 않았고 거리 곳곳에는 눈들이 쌓여있다. 남자는 거리에 온기가 퍼질 때 즈음 멈춰 서서 가쁜 숨을 몰아쉬고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간다. 남자의 이름은 아벨, 석유회사의 사장이다. 그는 보다 적극적으로 회사를 확장하기 위해서 땅을 구입하기로 한다. 물론, 그 토지 매입에 걸린 돈이 한두 푼이 아니었기에 잔금을 치를 기한을 두고서 계약을 맺는다. 그러던 와중에 기름을 실은 유조차가 강도들에게 도난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운전자는 강도들에게 폭행당한 채 버려지고 유조차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 기름만 사라진 채로 발견된다.


도난 사건과 더불어서 지방 검사는 아벨의 회사에 대한 조사를 시작한다. 기소와 함께 거래를 계속해오던 은행과의 관계도 삐걱거리기 시작하는데 사건은 또다시 발생한다.

성공의 '기준'이 된다는 것

아벨은 성공한 사람이다. '아메리칸 드림'의 표본이라 할 수 있는 인물이다. 그는 영화에서 성공에 대한 순수한 열망을 보여준다. 그리고 본인만의 방식으로 일을 처리하기를 원한다. 어쩌면 그만한 성공이 없었다면 그는 그만의 방식을 고수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본인의 방식에 대한 확신은 그가 '입지전적'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사업에서 성공했기 때문이다. 때문에, 그는 거리낌 없이 본인의 주장을 관철한다. 사업을 같이 운영하는 부인 안나와의 갈등은 주로 그 지점에서 발생한다. 그녀뿐만 아니라 그의 부하직원과의 갈등 또한 그 부분에서 발생한다. 트럭 조합장은 유조차의 기사들이 지속적으로 강도들에게 공격을 받으니 자기방어를 위해 총을 소지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아벨은 반대를 한다. 기사들이 총과 관련해서 사고를 내게 되면 그 피해가 고스란히 그의 사업에 영향을 준다고 생각을 해서다.


아벨이 어떤 환경에서 성장한 것인지는 영화에 등장하지 않아서 우리가 알 수는 없다. 그저 짐작만 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런 짐작을 해본다면, 그는 아마도 상당히 험난한 유년기를 보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의 부하직원이 스페인어를 쓰자, 영어를 사용하라는 말을 하면서 그 이후로 영어로 대화를 한다. 굉장히 짧게 등장하는 부분이지만, 이런 것이(+인트로에 그가 조깅을 하는 모습과 더불어서) 그가 성공을 위해서 어떤 준비를 하면서 살아왔는지를 요약해서 보여준 장면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는 '고급'이라는 이미지를 갖기를 원했다. 사업을 하는 방식 또한, '고급'이라는 이미지를 소비자에게 각인시키기를 원했다. 단지 기름을 파는 행동뿐만이 아니라, 전반적인 사업 자체에 그런 이미지가 깃들기를 원했다. 기사들을 무장시키기를 거부하고, 가족이 위협받는 상황에서도 동일했다. 그는 상황이 그만의 방식으로 행동하기를 바랐다. 미약한 상상력을 덧붙여서 아벨의 지난 삶을 유추해본다면 아마도 그는 그가 혐오하는 상황 속에서 자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힘들게 '기회의 땅'이라는 곳에 도착했으나 흔한 언어문제부터 시작해서 고생했을 것이고, 자라면서 총을 쓰거나 해서 다치고 죽어가는 사람들을 많이 봐왔을 것 같다. 그렇게 사업을 키운 다음부터는 단순히 일을 키우는 것보다 그것을 '유지'하는 것에 신경을 써야 된다는 것을 직감하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정작 그에게 왜 그 정도로 '성공'을 원하냐는 질문이 주어졌을 때에 그는 대답할 수 없었다. 어떻게 성공할지에 대해서는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고 철저하게 관리하면서 사업을 키운 사람이 왜 그 정도의 성공이 필요한지에 대해서 대답하지 못했다는 것은 묘하게 들렸다. 아벨은 왜 그리 절실하게 이 모든 것을 원하냐는 질문에 무슨 질문인지 모르겠다는 말로 넘어갔다. 나는 그의 대답에 대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성공=생존'이라는 등식을 머릿속에 갖고 살아온 사람에게 그렇게 사업을 키워서 뭐에 쓰려고 하느냐는 질문은 '왜 사느냐?'는 말처럼 들리지는 않았을까.


목적과 수단은 서로 갈등을 겪지만, 결국에는 어느 정도 서로 합의점을 찾아간다. 아벨과 안나의 대립은 그런 부분에 있어서 굉장히 흥미로웠다. 어쩌면 저 두 사람은 '목적'과 '수단'을 상징하는 인물들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갱스터'의 딸이라는 면에서 거리낌 없이 수단을 활용할 줄 아는 안나와 사업가로서의 목적의식이 투철한 아벨의 케미스트리는 확실히 인상적이었다. 둘의 그런 상징성이 내게 강하게 와 닿은 것은 아무래도 두 배우의 열연이 한몫을 했다고 생각한다. 영화의 제목처럼 극의 배경이 되는 1981년은 '아메리칸 드림'을 꿈꿨던 줄리안에게나, 그 꿈을 이루고 살던 아벨에게나 그 어느 때보다도 폭력적인 해가 되었던 것은 분명하다. 폭력의 객체가 되느냐 혹은 주체가 되느냐에 따라서 결과는 다르지만 말이다.


사진 출처: 다음 영화 '모스트 바이어런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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