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게 다가가는 과정

영화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

by wanderer

나는 가끔씩 인연이라는 확률에 놀라곤 한다. 얼마나 많은 우연 속에서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지 말이다. 내가 지금 아는 사람들은 어떤 우연이 엮인 채 만나게 된 것인지 생각해보는 것도 놀랍고, 앞으로 만나게 될 사람들에 대한 생각을 해보는 것도 놀랍다. 물론, 세상에 여섯 단계만 거치면 모르는 사람이 없게 된다고는 하지만, 그것을 실생활에서 체감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다. 사람들은 세상 참 좁다고 이야기하면서도 누군가를 만나게 된 것 자체에 대해서 신기해하지는 않는다.


이 다큐멘터리는 그 ‘인연’에 신기해하는 영화다.

‘비비안 마이어’의 사진에 대한 특유의 감성도 좋았지만, 전혀 모르던 누군가를 천천히 알아가는 다큐멘터리 특유의 편집이 유독 마음에 들었다. 얼마 전에 비비안 마이어의 사진전이 열린다고 했을 때에도 별 관심이 없었고, 영화가 직접 영화관에서 개봉했을 때에도 이런저런 사정으로 넘어갔었는데 이렇게 그 이름을 기억해서 다시 찾아보게 된 것은 대체 무슨 인연일까? 생각하면 할수록, 오묘한 우연이다.


영화의 화자인 존 말루프가 그녀를 찾게 된 것도 우연이었다. 그는 역사책의 자료로 사용하기 위해서 경매장에 가서 필름이 가득 들은 상자를 샀다. 그 사진들은 하나하나 좋았지만, 정작 본인이 사용할만한 사진들은 없었다. 그래서, 그는 필름들을 스캔해서 블로그에 올려봤다. 그런데 그렇게 올라간 사진들을 사람들이 무척 좋아했다. 사람들의 그 열렬한 반응에 놀란 존 말루프는 그녀의 행적을 뒤쫓아간다.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내 예상과는 다르게, 자그마한 검색창에 등장하는 그녀의 흔적은 조그마한 부고 소식밖에 없었다.


무엇에 대한 원초적인 호기심이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기반이 된다. 사람이든, 사물이든, 동물이든, 식물이든 그렇다. 내가 다큐멘터리를 볼 때 느끼는 가장 큰 재미는 바로 그 부분이다. 호기심을 느끼고, 무엇을 찾아 나서는 그 과정이 제일 흥미롭다. 가장 흔한 사람들의 가장 특별한 이야기가 다큐멘터리가 된다. 비비안 마이어도 그랬다. 그녀의 생활을 아무도 알지 못했고, 또 그녀 스스로가 적극적으로 숨기려 했다는 것에서 호기심은 출발한다. 이 영화에서는 그렇다.


사람을 찾아 나서는 과정에 무슨 재미가 있겠냐고 물어볼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그녀가 아무런 단서도 남기지 않고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우리는 마음껏 상상하면서 그녀의 삶을 찾아간다. 띄엄띄엄 그 사람을 알았던 지인들의 인터뷰가 시작되면, 퍼즐의 윤곽을 완성한 것처럼 그 사람이 보인다. 물론, 그렇게 완성한 퍼즐이 그녀를 전부 설명해주지는 못한다. 이 영화 자체도 그녀에 대해서 온전히 설명해줄 수는 없다. 그녀의 흔적을 찾아서 물어물어 거슬러 올라가는 것은 어디까지나 그녀의 기록들에 의존하고 있는 일이니 말이다.


알지도 못하는 사람의 사진에 감탄하고, 그 사람의 삶 자체에 대해서 몰입해서 보게 만드는 이 다큐멘터리를 싫어하려야 싫어할 수가 없다. 그래서 좋아한다. 다큐멘터리가 그렇듯, 사는 것 또한 그런 일이다. 좋아하는 영화에 나왔던 명대사 한 구절이, 유독 비비안 마이어의 사진과 어울리는 듯해서 그 글로 마무리를 지어본다.

"세상을 보고 무수한 장애물을 넘어 벽을 허물고 더 가까이 다가가 서로를 알아가고 느끼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의 목적이다"

사진 출처: 다음 영화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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