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엑스 마키나'
프로그래머인 케일럽은 상품에 당첨되어 일류 인공지능 개발자인 네이든의 연구 시설에 가서 그가 새로 만든 인공지능을 검사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한다. 케일럽은 절대로 외부에 이 정보를 유출시키지 않겠다는 내용의 계약서도 쓰면서, 그 실험에 참가한다. 케일럽은 에이바라고 하는 로봇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던지면서 그녀를 테스트한다. '튜링 테스트'라고 하는 그 실험 자체는 상대가 로봇인지 사람인지 모르는 상황 속에서 질문을 던졌을 때 그 둘을 분간할 수 있느냐는 것이 골자이지만, 네이든은 아예 에이바를 케일럽에게 대놓고 보여준다. 에이바가 로봇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녀가 인간다운지를 확인하게끔 만든다. 그러면서 네이든은 케일럽이 에이바에 대해서 학문적으로 분석하려 들 때마다 그녀를 어떻게 느끼는 지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라는 말을 한다. 이성적인 방식이 아닌 감성적인 방식에서 말이다. 테스트를 계속할수록 케일럽은 점차 에이바의 모습에 대해서 혼란스러워하게 된다.
앞으로 시간이 흘러갈수록, 로봇은 보다 세밀해지고 사람을 닮은 모습으로 변해갈 것이다. 아마도 그 이유는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고차원적인 존재가 우리들 자신이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에이바는 영화 속에서 누구보다 사람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 케일럽과 미묘한 긴장의 끈을 만들고, 그를 유혹하고, 설득하는 일련의 행동들은 정말로 사람이 할 수 있을 법한 사고와 행동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에이바가 그런 모습들을 보여주는 와중에 새롭게 느낀 사실이 있다면 '인간성'이라는 말 자체가 상당히 포괄적인 개념이라는 것이었다. 아픔에 공감하고, 상상하고, 상대방을 알아가는 것 이상으로 여러 가지 행동이 그 '인간성'이라는 말에 담겨있었다. 적어도 이 영화는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영화는 언제나 긍정적인 의미에서 '인간성'이라는 말을 써왔던 이들에게 한 번쯤 그것에 대한 심도 깊은 고민을 해보게끔 유도한다. 내게는 '인간이 갖고 있는 그들만의 성질을 과연 객관적으로 보고 있는가?'하는 질문을 하는 것 같았다.
얼마 전에 무인자동차 조종 시스템에 대한 소식을 접했다. 한편으로는 정말 편리해지겠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윤리적인 판단이 필요한 부분에 있어서 로봇은 어떻게 반응하게 될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다수를 살리기 위해서 다른 사람을 죽여도 되는가' 하는 상황에 대해서 로봇은 어떻게 반응하고 판단할까. 어쩌면 판단 자체를 포기할 것 같다는 생각도 해본다. 그런 상황에서 대다수는 아예 누군가를 살리고 죽이는 그 선택 자체를 포기한다고 하니 말이다.
로봇을 다룬 영화들은 대부분 비인간적인 인간과 인간적인 로봇에 대한 이야기를 다뤄왔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그런 구분을 따지기 보다는, 인간 자체에 대한 물음을 건네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정말로 '사람다운 사람'이란 무엇인지 생각해보라는 이야기를 넌지시 던지고 있었다. 영화를 보고 나서 과연 에이바는 네이든의 의도대로 인간성을 갖춘 로봇이 맞는 것인지 아니면 그래도 발전의 여지가 남아있는 미완성의 존재인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물론 내가 앞으로 로봇을 만들 것도 아니고 그것과 연관 없는 일을 하겠지만, 이런 고민이 늘어나는 것은 스스로를 되돌아볼 수 있게끔 만들어준다.
(영화를 보고 생각난 것인데 만약에 로봇 개인을 두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작용할 수 있는 로봇들이 있는 로봇 사회 속에서 그들의 인간성을 따져보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과연 결과는 동일할까? 아니면 전혀 다른 결과가 등장할까?)
사진 출처: 다음 영화 '엑스 마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