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킹덤 오브 헤븐(감독판)'
대장장이 일을 하던 발리앙은 전쟁에 참전한 경력이 있는 사람이다. 자살로 먼저 세상을 떠난 아내와 스스로의 죄를 씻기 위해서 그는 예루살렘으로 간다. 영주의 사생아였던 그는 아버지의 지위를 승계받으며 고생 끝에 원하던 곳에 도착해 성지라 하는 곳을 둘러본다. 하지만, 그는 그곳에서도 원하는 대답을 듣지 못하고 예루살렘에서 생활한다. 예루살렘은 각 종교들의 성지로써 다양한 사람들이 오고 가는 곳이었다. 그만큼 다양한 사람들의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곳이기도 했다. 그곳의 왕인 보두앵 4세는 현명하지만, 병에 걸려 오늘내일하고 있었고 휘하의 영주들은 걸핏하면 캐러밴을 습격하면서 살라딘에 대한 도발을 멈추지 않았다. 바로 그 혼돈의 중심에서 발리앙은 스스로의 구원과 기사로써의 사명감을 다하기 위해서 고군분투한다.
기나 긴 러닝 타임에 지칠 법도 하지만, 박진감 넘치는 액션이나 액션에 담긴 의미나 버릴 것 없이 생각하게 만드는 그런 영화였다. 이 영화가 종교에 대해서 말하긴 하지만, 각 종교 간의 다툼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기보다는 '종교'라는 것의 본질이 무엇인가에 대한 이야기가 주된 내용이다. 물론 그때의 기준과 지금의 기준을 동일 선상에 두고 비교하기는 어려운 일이지만, 그럼에도 그 안에서 참된 믿음이란 무엇인지 고뇌하고 실천에 옮기는 사람은 있다. 발리앙과 구호기사단원의 문답은 그런 부분에서 일종의 지표로 작용한다. 원하는 대답을 듣지 못한 채, 신앙을 잃었다고 이야기하는 발리앙에게 한 구호기사단원은 그것은 믿을 것이 못된다고 이야기하면서 많은 살인자들의 눈에서 광기 어린 신앙을 봤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는 발리앙에게 약자를 돕고, 선행을 하는 것이 진정한 믿음이라는 이야기를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저 문답은 그 시대로부터 한참 시간이 흐른 지금도 유효하다.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두 인물을 꼽자면 단연 보두앵 4세와 살라딘이다. 보두앵 4세는 한센병에 걸린 환자이자, 예루살렘을 다스리는 왕이다. 그는 체스를 통해서 '삶의 끝'을 이야기한다. 체스 안에는 다양한 계급의 사람들이 놓여있다. 각 장기말들의 배치는 어떤 게임이든 동일하지만, 각각의 말들이 어떻게 죽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누구나 잘 나갈 때에는 희열을 느낀다. 마치 한없이 그 승리의 쾌감이 이어질 것만 같고, 삶에 대한 끝없는 자신감이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는 생각만 든다. 하지만, 인생이란 것이 올라감이 있으면 응당 내려오는 것이 있는 법이다. 보두앵 4세는 그 경험을 보다 극적으로 느꼈다. 그는 16세의 나이로 전쟁에서 대승을 맛본다. 백 살은 넘게 살 수 있을 것 같았다고 이야기하던 그는 지금은 채 서른도 자신 없다고 솔직하게 이야기한다. 그동안 수없이 많은 매체에서 '왕'이라는 캐릭터를 다뤄왔지만, '죽음'에 대해서 이렇게 깊이 생각하고 말하는 왕은 본 기억이 없다. 솔직한 고백과 더불어 그는 자신의 삶을 변명하거나 당시에는 어쩔 수 없었다는 말로 포장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한다. 병에 시달리며 연신 비틀거리면서도, 그는 본인의 의지대로 행동했다.
보두앵 4세와 더불어서 살라딘의 행동 또한 인상적이었다. 그는 배려와 자비로 예루살렘을 다스렸던 보두앵 4세만큼이나 관대한 인물이었다. 기 드 뤼지냥이나 르노 드 샤티용 등의 영주들이 휘하의 성전 기사단원들이 함께 상단을 습격해서 재차 예루살렘을 공격할 명분을 넘겨주었어도, 그는 타협을 통해서 책임자에 대한 처벌을 약속받고 미련 없이 말머리를 돌린다. 그가 이런 행동을 보인 것은 결코 능력이 부족해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언제나 패배하던 아랍군에게 처음 승리를 가져다준 사람이 바로 그였다. 그가 그 위치에 도달하기 위해서 필요했던 덕목은 그가 얼마나 신실하냐의 문제가 아닌, 얼마나 객관적으로 상황을 바라보고 사람들을 생각하느냐의 문제였다. 존중과 자비는 그 어떤 선택보다 큰 결심을 하고 내려야 한다. 살라딘의 인품이 빛을 발했던 순간들은 종교를 떠나서 그것을 보여주었을 때였다. 살라딘은 승자의 위치에 있으면서도 적들에게 자비를 베풀었다. 승리자의 승리를 더욱 돋보이게 만드는 것은 그것의 규모가 아닌, 승자가 패자를 대하는 방식이다.
그렇게 목숨을 내던지며 싸운 '예루살렘'이라는 공간에 뭔가 특별한 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살라딘의 말대로, 그곳은 아무런 의미 없는 곳일 수도 있고 다른 누군가에겐 삶의 전부일 수도 있는 곳이다. 구원의 단서를 얻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발리앙은 그곳에서 종교가 아닌, 사람들에게서 그 해답을 얻는다. 공정함과 존중, 관용과 광신이 한데 어우러지는 상황을 겪으면서 생각은 다듬어지고 행동으로 표현된다. 만약에 이 영화가 단순하게 한쪽을 옹호하는 형태로 그려졌다면, 그토록 많은 찬사를 듣지 못했을 것이다. 어느 한쪽의 편을 드는 대신에, 제3의 눈으로 바라보려 노력한 흔적이 보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에 대해서 '공정하다'는 이야기를 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800년가량의 세월이 흐른 지금도, 아직까지 그곳에는 평화가 도래하지 않았다'는 말로 끝맺음을 하는 이 영화의 마지막은 날이 갈수록 더 심해지는 종교 분쟁과 더불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게 만든다.
사진 출처: 다음 영화 '킹덤 오브 헤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