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과 삶을 떠 올리며
19살, 고 3때 술을 배웠다. 술은 어른에게 배워야 한다는 말은 알았지만 그 무렵의 치기가 발동하여 몇 명의 친구들과 무작정 포장마차로 들이쳐 호기롭게 마셔 본 술이 처음이었다.
그 때의 술 맛을 아무리 기억해 보려고 해도 떠 오르지가 않는다. 酒種은 소주가 분명한데 성인이 된 후 접했던 그 소주 맛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냥 쓰기만 할 뿐 전혀 좋다는 느낌은 없었던 그 독한 소주를 타고 난 주량 탓인지 첫 날부터 제법 들이켰던 것 같다. 알딸딸한 기분이 좋았던지 매주 토요일 마다 술집을 찾아 헤매기 시작했고, 그렇게 배운 술은 종류를 불문하고 섭렵의 대상이 되었고 성적과 반비례하여 술 양은 점점 늘어만 갔다.
대학과 직장 생활을 거치면서 알콜리즘(Alcoholism)에 빠진 나는 거의 35년 넘게 술 독에 빠진 채 살아왔다. 아무리 부정하고 싶어도 이미 주위 사람들의 평판이 암묵적으로 알코올 환자처럼 대하기 일쑤였고 남자는 술 정도는 마셔주어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이 대뇌 중심부에 자리잡은 상태였었다.
그렇게 마신 술은 내 삶에 어떤 결과를 주었을까?
누구나 예측할 수 있는 가정파탄이 두번이나 있었고, 그 결과 우울증과 공황장애, 불면증 등의 정신질환, 강직척추염이란 자가면역질환, 역류성식도염 등의 위장질환, 포도막염 등의 안과질환 등등 헤아릴 수 없는 질병들에 둘러싸인 채 살아온 세월이 술이 준 선물이었다. 물론 이러한 결과가 모두 술 때문이라고는 단정 짓기 어렵겠지만 개연성을 이미 알고 있는 나로서는 지대한 공헌을 술이 했다고 스스로 자인한다.
아이러니하게 이렇게 오랫동안 나와 한 몸을 이루었던 술을 멀리하게 된 계기는 몸에서 시작된 반응이었다. 그 중 매일같이 쓰려 오는 위 식도 역류성식도염은 도저히 술을 마실 수 없게 만드는 1등공신이었다. 술은 커녕 조금이라도 매운 음식이 들어가면 마치 불이 난 듯 속이 쓰렸고 제산제나 위산억제제 등의 약을 수십년 먹어왔던 죄로 그 약마저 제대로 효과를 못 보고 쓰린 속을 항상 의식하며 사는 게 당연한 듯 여겨지게 된 단계가 술을 멀리하게 된 시작이었다. 어쩌면 망가진 몸이 구원의 첫 신호탄이 된 것이다.
어쩔 수 없이 못 마시게 된 것이 나의 금주생활의 출발이었고 제법 긴 시간 금주한 덕에 더 이상 술 생각이 나지 않는 요즘이 스스로 신통하기까지 하다. 지금은 신약에 의존하는 것 대신 한약을 부지런히 복용하면서 근본치료를 해 보려고 노력한다.
지난 과거를 돌이켜 보면 후회가 가장 많은 부분이 술을 배운 것이다. 내 또래의 중년 남성들이 겪었던 술 문화를 탓하고 싶지는 않지만 조금만 절제하고 스스로 다스릴 줄 아는 음주 습관을 가졌더라면 그렇게 험난한 세월을 살지 않았을 텐데, 나는 왜 그랬을까? 하는 후회와 반성이 참 많이 된다. 술은 비단 육체의 건강뿐 아니라 정신, 즉 마음을 혼탁하게 하고 삶을 벼랑 끝에 빠트리게 만드는 사탄이다.
꼭 나를 예로 들지 않아도 주위에 술 때문에 인생의 황혼에 비참한 노후를 살고 있는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나의 직장 상사이자 고등학교 선배인 K 선배님이 바로 그 모델이다. 그 분은 너무도 좋은 집안의 외동아들로 태어나 무엇 하나 부러울 것 없이 살아왔고 배우자도 장안의 갑부라고 할 정도의 집안 규수를 맞이해 물려 받은 유산만으로도 평생 쓰고도 남을 재산을 가진 부잣집 아들이었지만 워낙 타고 난 음주가무 탓에 배우자와 이혼하고 혼자서 가산을 다 탕진해 버린 지금 70대의 나이에 원룸 월세 오피스텔에 홀로 살고 있다. 그 뿐이랴. 지금도 타고 난 체력을 앞세워 거의 매일 술 자리를 찾아다니다가 최근에는 인사불성으로 취한 채 계단에서 굴러 천만 다행으로 위급한 고비를 넘긴 경험마저 겪었다.
굳이 친한 선배님의 아픈 사연까지 거론하고 싶지 않았지만 술이 왜 그렇게 악한 존재인지를 강조하고 싶은 마음이니 혹시 K선배님이 이 글을 읽으시더라도 부디 이해와 용서를 구하는 바이다.
이제 나의 과거와 선배의 사례를 통해 술이 얼마나 우리 삶을 망가지게 하는지 충분히 설명이 되었으리라 본다. 어떻게 보면 나의 가장 아픈 치부를 드러내면서 이 글을 쓴 이유는 나와 같은 전철을 한 명이라도 밟지 않게 하고 싶은 나의 소망 때문이다.
술은 마약과 같은 악한 존재이다. 아무리 적당히 마시면 몸에 좋다고 억지 주장을 하지만 이미 한 두 잔의 술로도 치명적인 질병을 가져다준다는 연구결과가 최근에 발표되고 있다. 암, 심뇌혈관질환, 간 질환 등 목숨을 위협하는 중병이 한 두 잔의 습관적인 음주로 발병된다는 것이다. “건강을 위한 안전한 음주량은 없다”는 글로벌 보건지침이 단적으로 암시하는 것은 금주만이 최적의 건강습관이라는 메시지이다.
歲暮의 이 때, 송년회나 신년회 등의 모임으로 많은 술 자리가 예정되어 있을 것이다. 꼭 이 시기라서 이런 글을 쓰는 게 아님을 강조하고, 평소 술에 대한 고정관념을 심각하게 바꾸어 보고자 권면하는 차원임을 누차 새겨두고 싶다.
술은 음료가 아니다. 건강을 해치고 인생을 녹슬게 만드는 독약이다. 마침내 모든 것이 망가지고 난 뒤에 깨닫지 마시고 조금이라도 건강할 때 새해 계획을 세우듯이 금주를 실천해 보시길 간곡하게 당부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