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다녀온 후 하는 다짐

작심삼일 '어학공부'

by 회자정리

어디든, 해외로 여행을 다녀오면 항상 하게 되는 다짐이 있다.


여행으로 촉발되고, 여행하는 내내 스스로 자극을 받은 것인데, 바로 언어에 대한 욕심이다. 조금 더 잘하면 좋겠다는 마음과 함께 오기 전에 조금이라도 공부를 더 해, 예전의 언어 감각을 부여잡고 올 것을 하는 후회가 떠나지 않는다.


여행을 가면 어학에 대한 욕심이 생긴다. [사진 출처: pixabay.com]


그런 아쉬움과 다짐은 여행한 나라에 따라 조금씩 결이 달라진다. 중국, 일본, 대만 등 한자 문화권의 영향에 있는 나라에 방문했을 때는 한자 공부에 대한 욕심이 생긴다. 중학교 교과에 한자가 별도 과목으로 있었던 세대이기도 하고, 어릴 적 서예학원을 다닌 덕에 비교적 한자에 대한 거부감이 별로 없다.


더하여, 어릴 적 아버지가 신문을 보며 한자를 읽어보라고 하면, 띄엄띄엄 그리고 문맥으로 제법 어려운 한자를 찍어 맞췄다. 그럴 때마다, 아버지는 조금 더 어려운 한자를 읽어보라고 했고, 그런 과정이 내게는 아버지가 주는 칭찬으로 받아들여졌다. 지금이야 종이 신문도 흔치 않고, 신문 지면에서 한자를 볼 수 없어 더 한자를 접할 일이 없긴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전에 알고 있던 한자 수준으로, 대략의 뜻을 유추하는 것이 여행 내 소소한 재미를 준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중국어나 일본어를 인사말 정도만 알지, 언어를 지금 다시 공부하기에 시기도 늦었지만, 자신도 없다. 그나마 조금 구사가 가능한 영어나 더 열심히 하자로 항상 귀결되곤 한다. 해외에서 가장 활용도가 높은 언어가 영어이다 보니 여행을 가면 어쩔 수 없이 영어에 대한 욕심이 부쩍 늘어나고 또 동시에 좌절하는 일이 허다하다.

어학연수를 다녀온 덕에 생활영어는 어느 정도 구사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불행히도 언어란 쓰지 않으면 줄어드는 법. 점점 영어 실력이 급격히 퇴보하고 있다. 지금의 레벨을 아주 후하게 쳐준다 해도, 듣기 평가의 레벨은 중간 정도인, 'intermediate level'




크로아티아 여행을 갔을 때 일이다. 푸른 동굴(blue cave)을 가기 위해서는 현지 여행사에서 투어 상품을 예약해야 했다. 스플리트에 도착한 당일 예약 수속을 잘 마치고 상품 설명도 얼추 듣고 대략 이해했다고 생각했다. 어디서 만나고 주의해야 할 점. 그리고 식사는 포함되지 않다는 것도.


그레고리우스 닌 동상 - 동상의 엄지발가락을 만지면 부자가 된다는 속설이 있다.


다음날 아침, '그레고리우스 닌'* 동상 앞에서 투어에 참여할 사람들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했다. 이른 아침부터 다시 시작된 듣기 평가. 이야기를 들어보니 푸른 동굴 투어 말고도 다른 투어를 신청한 사람들도 여기서 모이는 것이었다. 어디로 가는지를 시작으로 어느 나라 사람인지, 얼마나 여행을 했는지 여행에서 만났을 때 나누는 뻔하면서도 짧은 대화들이 오고 갔다. 당시 상황에서 듣기 평가의 레벨 수준은 초급단계인 'beginning level'


그리고 푸른 동굴 투어 인솔자가 왔고 우리는 항구에서 모인 다른 투어 참여자들과 함께 배에 올랐다. 투어 후 점심 식사 시간. 한 야외 식당에 들어갔고 각 테이블에 앉아 메뉴를 보고 각자 주문을 하면 되는 것이었다.


자리가 충분치 않은 것 같아, 아내와 난 혼자 앉아 있는 백인 여성과 합석을 하게 되었다. (사실, 앉고 나서 둘러보니 빈 테이블이 있었는데, 당시 왜 제대로 테이블을 찾아보지 않고 바로 합석을 했는지 아직까지도 잘 모르겠다. 내가 왜 그랬는지?!) 식사 주문은 따로 했지만, 한 테이블에서 같이 식사를 하니 당연히 대화를 할 수밖에 없었고, 당시 듣기 평가의 레벨 수준은 상급 단계인 'advanced level'을 뛰어넘는 수준.


미국에서 온 그 여성은 학회 참여를 위해 크로아티아에 왔고 연구 영역은 생물학 쪽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 외 여행에 대한 소소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미국에 있는 연구원 동료 중 한 명이 한국인이어서 한국에 대해서 비교적 잘 알고 있었다. 여기까지는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짧은 이야기가 거듭되면서... 점점 oh, my god!!!

어느 정도 수준이었냐면 대화 중 트럼프에 대한 이야기는 물론, 심지어 트럼프와 김정은 국방위원장과 비교하는 질문을 하기도 했다. 질문은 얼추 알아들었지만, 그녀의 질문에 제대로 된 생각을 전달하기에는 나의 말하기 레벨을 턱 없이 부족. 더 설명하고 싶은 게 많았지만, 두 어개의 짧은 문장으로 간단하게 답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진땀 나는 대화들이 오고 간 후, 아내와 내가 영어에 그리 능숙하지 않아 의견이 다 전달되지 못했다고 말하자 그녀는 단호하게 'No'라고 말해줬다.

오히려 본인은 영어밖에 할 줄 모르지만, 우리 둘은 한국어와 영어를 할 줄 아니 아내와 나야말로 대단하다는 말을 해줬다. 그녀의 진심은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그런 말을 해줄 수 있는 그녀가 근사해 보였다.


비록 어설픈 영어로 짧게나마 나눈 대화이긴 하지만, 상대를 인정하고 배려해주는 사람과 대화는 언어의 장벽을 낮췄고 크로아티아에서의 좋은 추억을 하나 더 얻은 듯한 기분이었다. 적지 않은 스트레스가 오히려 약간의 뿌듯함을 느끼는 순간으로 변모했었다. 그녀의 말 한마디가 어깨를 으쓱하게 만들었던 셈이다.


다만, 돌아오는 길에 매번 하는 다짐을 다시 하게 했다. 영어 공부를 다시 좀 해야겠다. 그리고 또, 아까 그녀가 한 질문에 이렇게 답변했으면 좋았을 걸 하는 생각으로 머릿속은 영어 문장으로 가득 차 있었다.


education-4382169_1280.jpg [출처: pixabay.com]




여행에서 모국어가 아닌 언어로 소통해야 하는 게 쉽지 않다. 그리고 학교를 다니면서, 연수를 다녀오면서 영어를 잘하기 위해 조금은 노력했던 터라 영어에 대한 갈증이 있다. 그리고 그 갈증은 여행 때마다 절정을 이룬다. 한국에 돌아오고 나면 그 갈증이 서서히 사라지는 것이, 늘 반복적이라는 것이 문제긴 하지만 말이다.


* 그레고리우스 닌 - 동상의 크기는 4.5m로 생각보다 거대하다. 크로아티아의 유명한 종교지도자라고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팀장님, 여행지 좀 추천해주세요!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