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틀의 잠못 이루는밤

팀장님 여행지 좀 소개해주세요! (번외 편)

by 회자정리

시애틀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내 또래들은 아마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을' 떠올릴 듯하다. 개봉을 1993년도에 했으니, 지금의 40대 정도의 나이가 되어야만 고개를 끄덕일 듯.


비록 나는 그 영화를 보지 않았지만,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라는 영화가 대 히트하면서 스타덤에 올랐던 맥 라이언의 차기작으로 눈길을 끌었던 영화이기도 하다. 영화가 어느 정도 흥행을 했는지는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그 덕분에 시애틀이라는 미국 도시 이름을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던 효과를 냈던 영화기도 하다.


seattle-4748986_1280.jpg 시애틀의 명소 중 하나인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 스타벅스 1호 점도 위치해 있다.


그리고 얼마 후, 내 머릿속에 시애틀이라는 이름이 다시 한번 각인된 적이 있었다. Fish - 펄떡이는 물고기처럼 이라는 책 때문이었는데, 2000년에 발간된 책으로 경영 or 자기 계발 분야 책으로 꽤 화제가 되었던 책이다.


그 책의 배경 도시는 시애틀이고 그 속에서도 시애틀 명소 중 하나인,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이라는 곳이 자주 묘사된다. 그곳은 꽤 역사가 깊은 재래시장으로 입구에 들어서면 큰 생선가게가 보이는데 그 가게 직원들이 일하는 모습을 통해 일과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이야기다.


사실, 책을 읽으면서 자기계발서에 대한 내용보다는 책에서 그려진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과 그 생선가게의 모습이 실제로 어떤 모습일지가 가장 궁금했었다. 책 속에서는 그곳은 일에 열정이 넘치는 사람들이 가득했고, 관광객이든 실제 생선을 사러 온 손님이든 구분 없이 활기차게 일하며, 생선을 가지고 장난을 치는 장면 등이 묘사되어 있었다.


생선을 일종의 쇼처럼 던지기도 하고, 구경하고 있는 사람들을 아귀처럼 생선으로 깜짝 놀라게 만드는 그런 곳, 즐겁고 에너지가 넘치는 곳으로 생생하게 묘사되고 있었다. 과장된 책의 묘사 일지, 실제 그런 모습일지 나중에 시애틀에 갈 기회가 생긴다면 꼭 직접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이렇게 영화 제목 그리고 책으로만 접했던 도시 시애틀. 이때만 해도 내가 시애틀로 어학연수를 가게 될 줄은 단 1%도 상상하지 못했다.




그렇게 한 해가 지나고 어학연수를 가게 되었다. 사실, 연수를 가기 전에 내가 잘할 수 있을까라는 두려움과 부담감에 많이 망설였다. 보내주겠다는 부모님과 시스터의 지원에 고맙다는 표현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나중에 영어 안 해도 되는 회사에 취업할 거라는 얼토당토않은 아집을 부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처구니가 없는 정도가 아니라 도대체 무슨 생각이었던 건지, 기회가 있었도 잡지 못하는 그런 똥 멍청이가 없었다.


당시야 말로, 유럽 배낭여행도 대학생의 필수 코스였고, 어학연수도 필수 코스쯤이라 여겨지던 시대였기에 결국 몇 가지 이유들이 더해져 어학연수 길에 올랐다.


시애틀은 그런 의미에서 여행을 다녀온 도시는 아니다. 하지만, 죽기 전에 꼭 한 번 다시 가보고 싶은 곳이다. 겨우 1년 2개월 정도 살다 온 곳이지만, 반짝거렸던 청춘의 시간을 보냈던 곳이기에, 돌아가 그 시절을 떠올리고 재회하는 기쁨을 느끼고 싶다.


seattle-416065_1280.jpg 시애틀 스페이스 니들 (이미지 출처: pixabay.com)


어쨌든, 그렇게 지내 던 1년 남짓의 시애틀은 내게 특별함과 함께 아련함이 남아 있는 장소다.


버스를 타고 다운타운의 UW ESL으로 가던 길, 버스에 내려 UW 캠퍼스 오뎅 도서관*에서 습관적으로 들려 인터넷도 하고 공부도 하던 시간, 다운타운에서 제일 싼 1+1으로 파는 멘솔 담배를 사던 그 타바코 가게, 싸온 도시락 점심을 먹고 나서 가끔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으로 바람 쐬러 가는 것도 그립다.


간혹, 날아다니는 생선도 한 번씩 구경하고... 실제로 학교에 입학하기 전, 홀로 파이프 플레이스 마켓을 찾았을 때 처음으로 느꼈던 그 생생함은 늘 변함 없었다. 책의 묘사가 결코 거짓이 아니었다.


오뎅 도서관 앞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으면 간혹 담배 한 까치에 쿼터(25센트)를 주고 사던 학생과의 밀당 (처음에는 한국 담배 인심에 그냥 주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돈을 건 냈을 때만 줬다. 나도 가난한 연수생이니까) 그리고 오뎅에서 집 앞까지 걸어오며 지나오던 숲길의 냄새.


주말마다 평일에 싸갈 도시락 재료와 먹거리를 사던 QFC**. (돈을 아끼기 위해서 마트에서 재료를 사 와 볶음밥, 햄버거를 도시락으로 격일로 만들어서 싸갔다. 미국에 가기 전 볶음밥을 직접 해 먹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었는데, 한국에 돌아와서 몇 년 동안은 볶음밥을 해 먹지 않았다. 정말 너무 지겨웠다.)


주말에 다국적 친구들과 함께했던 술자리, 그리고 같은 클래스 친구들과 수업 끝나고 가끔 들렸던 윙돔*** 나열하자면 끝이 없겠지만 그런 소소한 것들이 무작정 그립고 아련하다.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시애틀에 다시 가면 그때가 더 생생해질 것만 같다.


https://en.wikipedia.org/wiki/Odegaard_Undergraduate_Library

※ UW의 Odegaard 도서관 - 오뎅 도서관 (사진 오른쪽 벽에서 담배를 피곤했다.)


그리고 지금은 어떤 모습인지 그때의 모습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는지 궁금하다. 이제는 구글 어스로 살았던 집을 찾을 수도 없고, 그 일대가 많이 변해버렸지만 그래도 다운타운이나 캠퍼스의 흔적들을 찾아낼 수 있으리라.


다시 간다 해도 누구 아는 사람도 없고, 그저 아직도 그대로인 흔적을 찾으려고 애쓰고, 반대로 많이 변한 모습을 보며 세월이 흘렀구나 하겠지만 그래도 꼭 다시 가보고 싶다. 낯설었던 만큼 두렵고, 또 동시에 신나고 즐거웠던 그때, 나의 청춘을 기억할 수 있으니...



* University Washington에 있는 Odegaard library를 한국 유학, 연수생들은 오뎅 도서관이라 부름

** Quality Food Centers, 시애틀에서는 University Village라는 일종의 쇼핑 빌리지 안에 있었던 큰 체인 마트

*** 미국식 바비큐 윙을 팔던 가게, 맵기 단계가 1~5단계까지 있는 무척 맵다. 윙과 함께 먹는 샐러리, 블루치즈 소스의 궁합이 환상이었던 곳. 참고로 이태원에 유사한 바비큐 윙을 파는 가게가 있다.




시간이 지나면 누군가에게 추천하고 싶은 여행지가 또 바뀔지도 모르겠다. 또 그런 질문을 한 상대에 따라서 여행지가 달라질 수 있으리라. 그때 후배가 나에게 여행지를 물었던 때가 벌써 3년 전이다. 이후, 그때 이야기 [팀장님, 여행지 좀 추천해주세요 1, 2]편과 번외 편으로 시애틀을 하나 더 썼다.



최근이야 코로나 19로 인해 근 2년 가까이 해외로는 여행을 못 가고 있지만, 미국 연수를 포함하여 여행으로 방문했던 나라가 대략 30개국 정도인 것 같다. 대학생 때 배낭여행도 포함이니 이제는 사실 여행을 다녀왔다 하기에도 너무 오래전 일이긴 하지만, 다시 시애틀뿐만 아니라 유럽의 좋았던 곳은 아내와 다시 가고 싶다. 나아가 많은 나라 여러 도시를 더 가보고 싶다.


앞으로 몇 개의 나라와 도시를 더 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구글 지도에 별이 하나하나 더해지는 기쁨과 일상의 결핍을 채우기 위한 끝없는 여행을 꿈꿔 본다.


google_ihopetogo.GIF 구글 지도 - 여행으로 다녀왔던 곳 (별 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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