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집 토토로가 살았던 그 동네
2004년, 태어나서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고 갔던 곳은 후쿠오카였다. 하카타 시내에 도착해 2시간 30분 가량 버스를 타고 '유후인'이라는 곳으로 이동했다. 창밖으로는 숲길만 이어졌고 나무가 빽빽이 울창하여 햇볕도 잘 들지 않았다. 어쩐지 음산한 느낌마저 들었지만, 엄마 아빠가 가자고 한 곳이니 이유가 있겠거니 생각했다. 종점에 도착하여 사람들이 모두 내리니 드디어 유후인에 도착했다고 생각했다. 공항으로 오기 위해 버스를 탔던 한국 집 앞의 터미널보다 훨씬 작은 이곳이 유후인의 중앙역이었다. 유후인의 중앙역은 마치 역무원 복장을 하고 말을 하는 돼지가 나올 것만 같은 동화 속 기차역처럼 생겼다. 역 안쪽으로는 '유후노모리'라는 이름의 빨간색 기차가 들어와 있는 것이 보였다. 역 앞에서 기념사진을 남긴 후 료칸을 가기 위해 택시를 잡았다.
당시 유후인에는 외국인 관광객보다 온천을 즐기러 온 일본 현지인들이 훨씬 많았으며, 우리에겐 구글맵이 깔린 스마트폰이 아닌 종이 지도 한장만이 전부였다. 결국 별수 없이 택시를 잡아탄 것이다. 료칸의 이름을 보여주니 친절한 기사님이 료칸 문 앞까지 데려다 주셨고, 료칸 주인이 부재중이자 직접 전화까지 걸어 체크인을 도와주셨다. 처음 만난 친절한 일본이었다. 아기자기한 숙소와 정갈한 조식, 조용하고 넓은 풀밭이 보이는 노천 온천 그리고 긴린코 호수는 한편의 동화가 되어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내 머릿속에 남았다. 그 기억에 취해 이후로도 대여섯번은 유후인을 더 찾았다. 마치 현실을 떠나 토토로가 사는 동화 속으로 들어가서 잠시 쉬다 오는 느낌 때문이었다. (나는 토토로를 엄청나게 좋아한다.) 시간이 흘러 어른이 된 나는 여전히 여행을 좋아하는 엄마 아빠와 다시 가을의 어느 날 유후인으로 떠났다.
이동경로
후쿠오카 공항 국제선 도착
도착층 출구로 나가면 YUFUIN이라고 써진 버스정류장에서 버스 탑승
버스 티켓은 미리 인터넷으로 예약을 하고 가는 편이 저렴하다.
좌석이 매진 될 수 있으니 미리미리 예약!
종점에서 하차
유후인에는 료칸이 많다. 교토나 도쿄 근교 온천마을에 비해 가격도 훨씬 저렴하다. 조식과 석식은 추가로 신청해야 한다. 역에서 걸어서 15분정도 떨어진 료칸으로 향했다. 새로 생긴 곳이라 가격대도 저렴하고 시설도 깔끔하여 엄마가 고른 곳이었다. 가는길 풍경이 고즈넉하고 예뻤다. 정갈한 가정식을 파는 작은 식당들도 많았다.
깔끔한 숙소. 완전 전통 료칸은 아니고 약간의 신식 호텔같은 느낌도 있는데 나는 이게 훨씬 좋았다. 욕실도 깨끗하고 제일 기대했던 온천도 훌륭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저녁에 자기전에 두번씩 했는데 역시 새벽무렵에 해야 바깥 풍경도 보이고 좋은 것 같다. 직원들도 짱 친절하고 근처에 편의점이 없는게 조금 아쉽지만 뭐!
숙소에 도착해서 약간 출출하기도 하고 강가를 따라 마트로 가본다. 가는 길 저 멀리 산봉우리가 노을빛을 받아 핑크색 보라색으로 보이는 게 예쁘다. 괜히 이런 게 일본 갬성이라며 자판기 사진도 찍어보고. @B-speak 라는 유후인에서 아마도 제일 유명한 롤케이크 집이 있다. 여기를 시작점 삼아 뒤쪽으로 쭉 긴린코 호수까지 길이 이어져 있다. 이 길이 유후인 최대 관광 거리로 이것저것 기념품 가게와, 그릇 가게, 베이커리, 음식점 등등이 즐비하다. 또 한 가지, B-speak 바로 뒤에 큰 마트가 있다. 유후인에서 가본 마트 중에는 제일 컸다. 혹시 일본 식료품이나 먹을 것을 사고 싶다면 이곳으로! 저녁 시간대에 가면 우리나라 마감 세일처럼 초밥, 사시미, 덮밥 등등을 할인해서 판매 중이니 참고하자.
아침을 안먹으면 손발이 떨리고 현기증이 나는 신기한 몸뚱이 때문에 조식은 꼭꼭 신청한다. 일본식 조식뷔페도 좋지만 보통 료칸은 사진처럼 정식으로 나온다. 밥과 국은 얼마든지 더 먹을 수 있다. 일본사람들은 요렇게 개미 코딱지만큼 먹고 생활이 되는지 궁금하다. 여튼 보글보글 끓는 두부랑 후식 요거트까지 야무지게 먹고 외출했다. 맨날 우리엄마는 일본인들은 어쩜 이렇게 비린내 안나게 생선을 잘 굽는지 궁금하단다.
왼쪽 사진은 내가 '일본'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풍경이다. 시간을 달리는 소녀나 짱구를 보면 꼭 저런 강둑 같은 게 나오더라. 주인공들의 출퇴근, 등하교 길로... 보통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던데. 일본에 강이 많나?
나는 지브리를 정말 좋아한다. (지금도 지브리 OST 모음을 들으며 이 글을 쓰는 중) 마블, 픽사, 디즈니보다 훨씬! 동화 같은 스토리에 귀여운 캐릭터들, 그리고 히사이시조의 OST까지 합쳐지면서 두고두고 여운이 남는다. 특히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과 이웃집 토토로는 시간이 나면 숨 쉬듯이(?) 자주 보는 최애작품이다. 처음 유후인을 알게 된 것도 토토로의 배경이 됐다는 산골마을이라서이다. 그걸 증명이라도 하듯 거리 초입에는 지브리 공식 굿즈샵이 있다. 한국에서는 구하기 어려운 지브리템들을 살 수 있다. 덕질이 이런 걸까? 유후인 올 때마다 들러 이것저것 사 가는데 이번에는 센과 치히로에 나오는 '분홍 쥐'(유바바의 아들이 저주에 걸려 변해버린) 인형을 샀다. 손바닥만 한 크기에 거진 6만원 정도 했으니 저렴한 가격은 아니지만 모 어때~~ 귀여우면 됐지.
유후인 맛집 하면 검색 결과가 가장 많이 나오는 식당이다. 10년 전에도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여튼 아주 오래되고 일본 현지인들에게도 인지도가 있는 식당이다. 본점이 유후인 어딘가에 있고 역 앞에 2호점이 있다. 유후인 역에서 나오면 정말 바로 앞 정면으로 빨간 천에 마음'心'이 써진 간판이 보인다. 찾기 쉽다. 점심이나 저녁에 딱 맞춰가면 웨이팅이 있고 애매한 시간에 가는 걸 추천한다. 여기는 장어 덮밥이 유명한데 나는 소고기덮밥이 내 입에 맞았다. (내 입맛: 어려운 음식, 예를 들면 아주 어른(?)스러운 음식은 잘 못 먹는다) 처음에는 차왕무시랑 각종 밑반찬이 나오고 기린 맥주를 한잔 곁들였다. 그리고 소고기덮밥이 나오는데 밥에 양념이 스며들어 있어서 밥을 떠서 위에 고기를 얹어 먹으면 된다. 다 먹고 육수를 주면 우리나라 돌솥밥처럼 저 솥에 부어서 누룽지를 만들어 또 먹는다. 쓰다 보니 또 먹고 싶다. 아참, 이곳은 현금만 받는다!
긴린코 호수 가는 길에 있는 플로럴빌리지. 동화 나라를 컨셉으로 한 작은 테마파크 이다. 안에는 진짜 쬐그만한 동물원이 있고(오리, 다람쥐 요런 애들이 있다.) 대부부이 기념품 샵이다. 사진 찍기 좋은 스팟이 많아서 엄마 사진을 잔뜩 찍어줬다. 기념품은 피터래빗 그림책과 같은 동화 캐릭터 상품들이다. 다람쥐 사진 잘찍은 것 같다...
메인 거리를 따라 직진만 하다보면 아주 쉽게 긴린코 호수에 다다를 수 있다. 중간에 표지판도 있어서 굳이 구글맵을 키고 찾아갈 필요는 없다. 긴린코에 다다르면 오른편으로 샤갈 미술관과 유명한 메밀 소바집이 있다. 소바집은 일본 내에서도 꽤 유명한 곳이라고 하니 소바를 좋아하면 추천!
아마 사갈 미술관에 붙어있는 카페였나? 여튼 그 카페에서 음료와 디저트를 먹으며 이렇게 예쁜 가을 날의 긴린코 호수를 볼 수 있었다. 왼쪽 사진 정면에 출연한 뒷 모습은 우리 아빠. 커피랑 케이크를 먹었다. 빵 케이크 딱 질색인데 커피가 너무 써서 어쩔수 없이(?) 먹었다.
일본 최고의 온천 관광지 중 하나인 긴린코 호수! 운 좋게 사계절 모두 와 볼 수 있었는데, 새벽 무렵의 긴린코와 가을 낮의 긴린코 호수가 가장 멋졌다. 단풍과 호수 표면에 비친 잔상이 그림처럼 예쁘다. 겨울에 왔을때는 일본 애니메이션 '학교괴담'에 나오는 귀신이 사는 호수(...) 같아서 조금 무서웠던 첫인상이 있었지만, 가을의 긴린코는 그 첫 인상을 완전히 지워주었다.
수채화로 그린 것처럼 알록달록한 풍경. 다리 위에서 찍은 사진 인데 여기서 사진찍으려고 기다리는 사람들 짱 많다. 나도 엄마 아빠 사진을 찍어주고... 쨍한 파란색 하늘과 빨강 주황 단풍들이 누가 와서 일부러 그리라고 해도 이렇게 이쁘게 못 그릴 거다!
다음날 쿠로가와로 떠나기 전에 시간이 남아서 유후인역 족욕탕에 왔다. 역 창구에서 한 사람당 200엔인가? 를 내면 기념품 발수건과 엽서, 족욕탕 이용권을 준다! 버스를 기다리면서 족욕을 했는데 ㅠㅠ 정!말! 물이 너무너무너무 뜨겁다. 샤브샤브 될 뻔 했다 ㅠㅠ. 화상도 입었다. 엄마 아빠는 괜찮다는데 내가 엄살이 심한 걸 수도 있다. 여튼 ㅠㅠ 피부가 약하시면 조금만 하세요.
유휴노모리(초록색, 사진 속 기차는 다른 열차 입니다)기차는 동화 속 기차로 유명하다. 티켓이 금방 매진이 되기 때문에 이용할 생각이 있으신 분들은 일찍 예매를 해두는 게 좋다. 우리는 쿠로가와라는 더 산속의 온천마을로 가야 해서 기차 대신 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유후인 버스 터미널은 역 바로 맞은편에 있다.
지금 당장 휴가가 주어진다면 유후인으로 또 떠날 수 있을 만큼 소박하고 매력적인 동네다. 몇 년 전부터 기하급수적으로 많아진 한국인 중국인 관광객 덕에 여행자들에게 더욱 친절한 인프라가 생겨서 여행하기도 편하다. (한글 메뉴판, 안내 표지판 등등) 또 후쿠오카 공항에서 유후인까지 버스 노선도 생겼기 때문에 아무리 내 친구 H모 양과 같은 길치라도 쉽게 찾아올 수 있는 곳이다. 한적한 여행지를 좋아하는 부모님과 함께 오면 좋을 듯하다. 작지만 은근 교통의 요지라 쿠로가와, 벳푸 등 다른 곳으로의 이동도 쉽다. 이상 비공식 유후인 서포터즈의 유후인 여행 추천글을 마치며 이만 일 하러 가보겠습니다~~ฅ(• ɪ •)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