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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나 Jun 05. 2024

재채기처럼 튀어나오는 트라우마


재채기처럼 튀어나오는 트라우마

여러분은 이 길을 보면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하늘이 정말 예쁘다'

'여유로운 시골 길처럼 느껴진다'

이 사진을 보는 사람들은 각기 다른 감상을 얘기할거예요. 

하지만 저는 이 길의 풍경을 보는 순간 '두려움'을 느꼈어요. 무엇이 저에게 두려움을 가져다 주는걸까요? 


최근에 템플스테이를 다녀오고 나서 '있는 그대로 보기'에 대한 많은 생각을 하는 요즘인데요. 현재에 집중해서 어떤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본다'는 것이 생각보다 어렵다고 느낀 순간들이 많아요.


사진 속 길은 한강공원에 따릉이를 타고 갔다가, 근처에 따릉이를 반납할 대여소가 없어서 약 1km 가량 걸으면서 지났던 길이에요. 자전거를 타고 빠르게 지나갈 때는 몰랐는데, 돌아오는 길에 갑자기 저 길이 무서워지기 시작하더라구요. 분명 나는 '지금 여기' 현재에 있는데, 으슥하고 조용한 그 '길'에 서있는 상황이 저를 유학시절 외국에서 택시강도를 당해 어두운 길에서 마구 도망치던 그 때로 끌고갔어요.


그 때 저는 이게 바로 '트라우마'라는 거구나 하고 느꼈어요. '트라우마'라는 것은 내가 눈치채지도 못하는 순간, 재채기처럼 튀어나오더라구요. 


당시 천천히 출발하려는 마티즈 택시에서 문을 열고 몸을 밖으로 내던져 차에서 탈출했어요. 가로등 하나 없는 어두운 외각 도로의 깜깜한 그 길을 마구 달렸는데요. 이미 수년전 일어났던 일이고, 지금은 모두 해결되어서 그 때의 사건으로부터 영향받는 것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어요. 두려움은 그와 비슷한 상황에 놓여지기만 해도 조건부로 저에게 찾아오더라구요.


길은 그냥 길일뿐인데,

저에게는 1) 혼자 무방비하게 걷는 상황 2) 무슨 일이 일어나도 도와줄 사람이 하나 없는 무서운 공간으로 느껴지더라구요. 이런 조건이 마치 이 길이 과거의 그 사건 현장처럼 느껴지고, 그 때 그 범죄자가 어느 구석에서 튀어나올 것만 같았어요 . 누군가에겐 오히려 여유를 즐기며 걸을 수 있었던 길이 저에게는 스릴러 공포 영화가 되는 순간을 경험하면서 트라우마로 인한 두려움의 실체는 사실 과거에 있구나 하고 느꼈어요.


길은 그냥 길일 뿐, 어떤 의미도 위협도 가지지 않는다는 것을 말이죠.

살아가면서 우리는 내가 지금 현재에 집중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조금만 깊숙히 들어가보면 우리의 마음은 과거 혹은 미래에 가있는 것 같아요. 특정 요소가 나의 트라우마를 건들일 순 있지만, 그 다음 불현듯 두려움이 파도처럼 나를 덮치면 의식적으로 '현재에 집중하기'로 마음먹었어요. 이미 무의식 속에 두려움 발현 조건이 정해져있지만, 과거로 돌아간 내 마음을 현재로 다시 돌려오기만 한다면 똑같은 조건에서도 두려움이라는 감정의 본질을 찾을 수 있는 것 같아요.


여러분을 과거로 돌아가게 만드는 요소는 무엇인가요? 그 때 나는 어떤 감정을 느끼나요?


 P.S 에피레터에 어떤 글을 쓸지 매 순간 고민하면서 살다보니, 사소한 순간에 얻은 글감을 열심히 기록하게 되었어요. 이번 글도 그냥 한강에 갔다가 머릿속에 떠올랐는데요. 뉴스레터에 써야지 생각하고 신나게 메모장에 기록했답니다. 정기적인 글쓰기의 장점이랄까요 ㅎㅎ

                                                                                                                                    미뇽�


 P.S 아니 유학 생활 중 택시 강도라니.. 타국에서 정말 무서웠겠는데요. 일상을 살다가 생각지도 못한 것에서 과거의 잔재를 만나기도 하는듯 해요. 저는 미뇽의 템플스테이 얘기를 좋아하는데요. ‘있는 그대로 보기’는 단순해보이면서도 어렵기 때문이에요. 현재에 집중하려는 일상에서의 노력도 멋지고요�

                                                                                                                                    오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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