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을 준비하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한국인과 어울리지 마라’였다. 외국어를 배우기 위해서는 한국어를 최소한으로 쓰고 외국어에 많이 노출되는 환경을 만들어야 언어를 제대로 배울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 물론 나도 유학을 시작한 처음에는 한국인과 최대한 적게 어울리고 현지 친구들과 어울리려 했다. 하지만 내 성격으로 내 주변사람을 완전히 100% 현지인으로 채우기는 너무나 힘들었다. 20살의 나는 내가 모르는 언어로 둘러싸여 있으면서 현지에 녹아드는 것에 큰 부담을 가지고 있었고 실제로 너무 힘들었다. 겁이 많았고, 혼자라 외로웠다. 분명 현지 친구들은 먼저 내게 다가오고 배려해 주는데도 불구하고 외국어로 소통한다는 편견이 있어서인지 그들과의 관계는 나에게 있어 항상 불편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100% 하지 못하고 친구들과 아무리 얘기해도 채워지지 않는 마음속 한 구석 빈 공간이 있었다.
유학을 떠나기 전에는 내 환경을 현지에 맞게 세팅해서 그 나라 문화에 스며들고자 했지만,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마음속 빈 구석을 채우기 위해 나는 한인교회를 통해 한인사회에 들어가게 되었다. 역시 모국어를 함께 쓴다는 공통점이 주는 익숙함이란… 그래도 같은 언어를 쓰는 한국 친구들을 사귀고 난 후부터 마음의 안정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전에는 항상 답답하고 우울하고 외롭다는 기분이 많이 들었었는데 단지 말이 통하고 쉽게 서로를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 내게는 굉장히 큰 장점으로 다가왔다. 물론 왜 우리 삼촌을 포함한 모두가 한국인들과 어울리지 말라고 했는지 그 이유는 가늠할 수 있었다. 나는 유학을 간 것이지 놀러 간 게 아니기 때문. 하지만 그보다도 중요한 것이 내 정신건강이 아닌가.. 향수병을 조금이나마 누를 수 있는 것이 바로 한인사회에서 한국인 친구들과 소통하는 것이었다. 완전히 현지사회에 녹아들어서 공부한 친구들보다는 언어 습득이 느렸지만 유학시절 내가 얻을 수 있었던 건 언어만이 아니었기에 내가 한인사회에 들어간 것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한인교회에 나가서 소통하고, 한인회 체육대회에 참여하기도 하고, 주말에는 한국 아이들을 위한 주말한글학교 선생님으로 봉사하기도 하고.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졸업하면 우즈벡에 진출한 한국 기업에 들어가서 일을 하려고 했다. 그래서 대학생 때 미리 한인사회에 들어가서 한국인들과 네트워크를 쌓아두면 좋을 거라는 생각도 솔직히 했다. 종교는 없었지만 한인교회를 나가게 되고 좋은 사람을 많이 만났다. 거의 매달 멤버가 바뀌는 청년부, 항상 챙겨주시는 어른들. 사람을 만나게 되면 상처를 받는 건 어쩔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한 일이 더 많았다. 우즈백 생활을 하면서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게 되고 마음의 안정을 가지게 되었다. 물론 한국인들과의 네트워크를 넓혀가면서 또 그들과 나를 비교하며 가끔 우울에 빠지긴 했지만.. 한글학교 알바자리도 연결될 수 있었고 한국어 선생님 알바도 제안받으며 금전적으로도 많은 도움을 받았다. 어려서부터 나는 남들이 하지 말란 것에 너무 얽매여서 살았던 것 같다. 그래서 한인사회에 들어가서 한국인 친구들과 놀면서도 왠지 내가 잘못된 길을 가고 있는 것 같은 죄책감을 느꼈다. 유학생활을 한다면 4년 만에 그 나라 언어를 원어민처럼 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인생을 살아가면서 스스로에게 꼭 이렇게 해야 한다는 제약을 두지 않아야 내가 더 자유롭게 경험하고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남들이 하는 말이 정답이 아니고 내가 직접 경험하고 눈으로 본 것들이 정답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유학하면서 꼭 해야 하는 일’ 혹은’ 절대 하지 말아야 하는 일’ 같은 건 사실 없는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본다. 그 당시에는 우즈벡에 갔으니 러시아어를 엄청나게 잘해야 내 유학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나는 러시아어와는 전혀 상관없는 마케팅일을 하고 있고 외국에 나가서 일하는 것보다는 한국에서 자리 잡고 싶다는 생각으로 살고 있다. 어떤 일이건 강박에 빠지지 않고 현재에 충실하게 내 삶을 살다 보면 그 경험들은 모두 내 미래를 위한 거름이 되고 나를 더 성장시키는 요인이 된다. 다른 사람과 나를 비교하기보다는 그 순간 내가 하고 싶은 일,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을 열심히 하면 어떻게든 그 경험은 내게 득이 된다.
요즘의 나를 생각해 보면 다시 유학하면서 남과 나를 비교하던 보잘것없던 나로 돌아간듯한 느낌이 든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다 나보다 잘 사는 것 같고 나는 시작부터 틀려먹은 것 같다는 생각. 하지만 이렇게 글을 쓰면서 당시에는 나도 확신이 없었던 행동 행동이 지금의 탄탄한 나를 만들었구나, 그때의 완벽하지 못했던 내가 겪었던 일들이 밑거름이 되어 지금의 나를 바쳐주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부모님의 지원을 받으며 유학했지만 한글학교, 한국어 학원 알바를 하며 생활비를 벌었던 경험은 나를 더 독립적으로 만들어줬고 뭐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