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끝까지, 어쩌면 모험가

영화 <잠복근무> DVD

by 초생달


몇 년 전부터 영화를 소개하는 유튜브 콘텐츠를 즐겨 보고 있다. 영화를 자기 나름대로 분석하며 평가하는 콘텐츠도, 줄거리만 요약해서 전달하는 콘텐츠도 각자 지닌 매력이 있다. 영화의 평이나 해석이 궁금할 때는 리뷰를 보고, 생각 없이 내용만 들여다보고 싶을 때는 줄거리 소개 콘텐츠를 본다. 몰랐던 작품을 찾아서 보는 재미가 생겼다. 존 바담 감독의 1987년 영화 <잠복근무> 역시 그중 한 작품이다. 구독해서 보는 유튜버가 소개한 리뷰 콘텐츠를 보고, 또한 여배우 매들린 스토우(1958년생이니 내 어머니와 비슷한 연배)의 매력 때문에 찾게 된 이 영화는 인터넷에서 다운로드 파일을 구할 수 없어 절판된 DVD의 중고품을 구매했다.


영화를 30분쯤 틀어놓고 나니 슬슬 집중력이 흐트러졌다. 이미 유튜브를 통해 줄거리를 대강 파악했기 때문일 거다. 몇 장면은 건너뛰거나 그냥 지나쳤다. 117분의 상영시간이지만 70여 분 만에 영화 한 편을 다 보고 나니 머릿속에도, 가슴에도 특별히 남는 게 없었다. 이럴 거면 그냥 유튜브 콘텐츠를 보고 말 걸 그랬다.


OTT나 파일 다운로드를 통해 손쉽게 영화를 볼 수 있게 되면서 인내심과 참을성을 잃었다.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거나 비디오테이프를 봐야 했을 때가 무작정 더 나았다고 추억하려는 건 아니다. 생각보다 재미가 없거나 감흥이 적은 작품을 상영시간 끝까지 봐야 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고문이었다. 그래도 좋았던 점은 있다. 좋은 작품을 골랐을 경우, 영화 전체의 온도를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됐다. 그러니까 중요 사건이 벌어지기 전 주인공은 어떤 긴장 상태에 놓여 있는지, 배경음악과 세트는 어떻게 긴장감을 만들어내는지, 카메라는 무엇에 집중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노력해서가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다 지켜보면 알게 된다. 영화 전체의 온도를 파악하면, 작은 디테일이 보인다. 조나단 드미의 <양들의 침묵>에는 왜 그토록 정면 쇼트가 많이 나오며, 남자 동료들이 스털링을 둘러싼 장면은 왜 그토록 위협적으로 느껴졌을까. <8월의 크리스마스>의 오프닝에서 왜 정원은 어둠 속에 잠들어 있다가 갑자기 환한 햇빛 속에 눈을 뜨는 걸까.


작은 부분들이 눈에 띄면 그만큼 영화가 달리 보인다. 영화가 달리 보이면 그만큼 와닿는 정도도 다르다. 유튜브 콘텐츠를 볼 때 흐뭇하는 정도라면, 영화관이나 비디오테이프를 통해 처음부터 찬찬히 지켜볼 경우에는 온몸을 흠뻑 적시는 기분이 든다. 어쩌면 마음까지도. 내 몸과 마음 모두를 영화에 맡기고 나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는 일이 힘들어진다. 영화가 끝나고 크레딧이 올라가면 허탈한 마음을 쉬이 잠재우기 어렵다. 머릿속에서는 아직도 물과 산, 낯선 세계를 모험 중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나는 모험가가 된다. 그랬다. 영화는 끊임없이 나를 어딘가로 떠밀었다. 그 어딘가가 무엇인지 알아내기 위해 끊임없이 다음 영화, 또 영화를 찾았다.


유튜브 영화 콘텐츠에 담긴 것은 영화가 아니라 영화를 흉내 낸 ‘어떤 얼굴’이다. 그 얼굴은 실제 영화와는 다른 표정을 보여준다. 그러니 오해해서는 안 된다. 당신은 아직 그 영화를 보지 않았다. 못했다. 뤽 베송 감독의 <그랑블루>(1988)가 보여주는 그 눈부신 바다, 그 장대함을 예고편이나 요약 영상으로 어찌 이해할 수 있을까. 알프레드 히치콕의 <현기증>(1958)에서 남자 주인공이 여자를 쫓는 그 우아한 추적 장면을 온전히 보지 못한다면, 지루하다며 건너뛰어 본다면 그 관계나 감정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까. 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본다는 것은 스스로 모험가가 되겠다고 선언하는 일이다. 삭막한 사막에서 오아시스나 종착지를 찾으려면 주변 상황에 집중해야 한다. 무엇이 들리고 보이는지, 어떤 실마리가 나를 지나치는지 주의 깊게 둘러보고 느껴야 한다.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된 사람만이 모험가가 될 수 있으니까. 어쩌면 나는 내가 모험가라는 사실을 잊고 살았는지도. 생각해보면 사는 일도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반복되는 지루한 일상에서 ‘무언가’ 빛나는 것을 발견해내지 못한다면, 죽은 것과 뭐가 다를까. 시종일관 투덜거리며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니 이건 모두 남의 탓이라고 둘러대는 모험가가 되고 싶지는 않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어쩌면, 언제나, 그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