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살아서 좋은 일에는 무엇이 있을까. 여름철이면 집 안에서 홀딱 벗고 지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나는 최소한의 복장으로 노트북 앞에 앉아 있다. 냇킹콜의 플레이리스트를 틀어놓고 있자니 청승이 따로 없다. 혼자 살면 또한 생활비를 줄일 수 있다. 전기세와 가스비, 식비 등이 적게 든다. 특히 요즘에는 도시락을 싸서 출근하니 더욱 절약할 수 있다. 물론 그 돈으로 영양제나 다른 취미생활에 투자한다는 것이 문제이긴 하다.
솔로 중년들의 이야기를 다룬 책 『에이징 솔로』에서는 혼자 살아서 외롭다는 것은 미디어와 언론이 부추기는 착각이자 환상이라고 지적한다. 당신은 실제로 그렇게 외롭지 않다는 거다. 그 책을 읽는 내내 헷갈렸다. 그간 내가 느꼈던 감정들은 대체 뭐지? 난 누군가에게 현혹되고 있다는 걸까. 결혼한 선배들은 저마다 말한다. 함께해도 어차피 외로운 건 마찬가지라고 말이다. 그러면서 훈계한다. 혼자여서 외로운 사람들은, 누군가와 함께해도 외로울 것이라면서, 너 자신을 바꿔야지 단순히 누군가 옆에 머물길 기대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마치 외로운 생각을 죄악시하는 것 같달까. 그렇군요. 난 그간 헛된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군요.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난 그 생각에 공감할 수 없었다. 혼자 출근하고 퇴근하고 주말을 보내면서 내가 느낀 그 생생한 감각들은 분명 사실이었다. 내가 외롭다는데, 그 외로움을 부정하라니.
외롭다고 해서 딱히 그게 부정적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때때로 외로움은 업무와 창작의 열쇠가 되기도 한다. 복잡다단한 생각에 골몰하면서 머릿속을 스치는 수천 가지의 생각 중 몇 가지는 내게 좋은 글감이 되기도, 혹은 그럴듯한 낭만을 안겨주기도 하니까. 외로움의 생각들은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는 힘이 된다. 가만히 내 안으로 파고들수록 내 부족함은 무엇이고, 보완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 그러면 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배울 수 있다. 물론 실제로 행동에 옮기지 못할 때도 많지만 그런 마음을 먹는 것만으로도 내게는 의미가 있다.
외로움의 사전적 정의는 ‘홀로 되어 쓸쓸한 마음이나 느낌’이다. 그 쓸쓸한 마음과 느낌이 생생할수록 자주 꿈을 꾼다. 언젠가는 교감할 수 있는 상대와 함께할 수 있다는 꿈, 그런 상상을 하고 있노라면 내 삶은 잠시 근사하고 우아해진다.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고, 소셜미디어를 기웃거리고, 쓸데없이 OTT를 둘러보는 것보다는 외로움을 느끼는 시간이 내 삶을 더 의미 있게 해준다. 그러니까 내게는 외로울 권리가 있다는 것, 그 권리가 대단히 우아할 수 있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