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이 히사이시 조의 음악과 같다면

by 초생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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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수록 더워지는 6월 말엽 단 하루 동안 벌어지는 콘서트는 성황이었다. 가족과 연인, 친구 단위의 관람객들이 설레는 발걸음으로 극장에 모여들었다. 사람들 얼굴에는 낭만과 로맨스가 가득했다.


공연장에서 실제 연주가 주는 힘은 굉장하다. 미야자키 하야오나 기타노 다케시의 작품을 보지 않아도 충분히 귀에 익숙한 멜로디와 연주가 귀에 꽂히자 피곤한 심경과 불안함, 짜증 같은 것들은 멀리 사라졌다.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인 김재원 씨를 중심으로 한 오케스트라의 연주는 단단했다. 이미 여러 해 같은 곡들을 반복해서 연주해서인지 실수는 느껴지지 않았고 여유로움과 자연스러움이 느껴졌다. 1부에서는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와 <마녀 배달부 키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벼랑 위의 포뇨>, <이웃집 토토로>까지 미야자키 하야오의 지브리 애니메이션 삽입곡들이 연주됐다. 드라마틱한 곡 구성(히사이시 조)에다 편곡 해석 역량(We 오케스트라)이 더해졌다. 이 곡들에는 노랫말도 없고, 공연장에서 누구 하나 이 곡이 무슨 메시지를 담고 있는지 설명해주지 않았다. 하지만 관람객들의 표정은 저마다 벅차 오르는 듯 보였다. 그건 아마도 히사이시 조의 음악이 직관적으로 표현하기 때문일 거다. 추상적인 음악의 세계에다 직관적인 표현력을 포갠 그의 음악들은 저마다 듣는 이의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그래, 이 곡을 들었을 때 난 그렇게 느꼈지, 그 시절 내 사랑과 가족은 그랬지. 공연장에는 저마다의 이야기들이 피어나고 있었다. 내 감정이 벅차오른 것이 인터미션이 끝난 후 2부 공연 때였다. 키타노 다케시의 영화 <기쿠지로의 여름> 삽입곡으로 유명한 ‘Summer’가 연주되는 순간 내 마음은 완전히 이 공연장의 포로가 됐다. 간신히 붙잡고 있던 줄을 놓아버리자, 내 감정은 걷잡을 수 없이 벅차올랐다. <원령공주>와 <하나비>, <천공의 성 라퓨타>, <붉은 돼지>, <하울의 움직이는 성> 삽입곡으로 이어지는 2부 라인업은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하나비>의 메인 테마를 수백 번 반복해서 듣던 날, 영화 <렛미인>의 정서와 딱 어울리니 이 작품에 <하나비>의 메인 테마가 삽입되면 어떨까 상상했던 시간, ‘하늘에서 떨어진 소녀’(<천공의 성 라퓨타>)의 애절한 멜로디를 들을 때마다 공간이 낭만으로 가득 채워지던 경험, ‘Merry Go Round’(<하울의 움직이는 성>)를 들으며 출근할 때마다 느껴지던 힘찬 기운, 그러니까 어디선가 나를 응원하고 위로해주는 것 같던 그 고마운 마음이 떠올랐다.


복잡한 감정이 몰려들면서 나는 매번 곡의 클라이맥스마다 눈물을 글썽였다. 옆에 앉아 있던 꼬마 아이는 이따금 흘깃거렸고, 그럴 때마다 나는 눈물을 훔치면서도 오른손으로 내 얼굴을 숨겼다. 공연을 보고 듣는 내내 초등학생 시절, 중학생 시절, 대학생 시절, 그리고 청춘의 다양한 표정들이 내게 다가왔다. 음악은 이토록 내 마음을 요동치게 만드는구나. 공연 막바지에는 이 공연이 영원히 끝나지 않기를 바랐다. 이렇게 살다가, 그의 음악을 평생 듣다가 죽어도 좋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기어이 공연은 끝이 나버렸고, 앙코르 연주까지 끝나자 관객들은 저마다의 일상으로 복귀했다. 환하게 밝아진 공연장 천장을 바라보며 나는 문득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곳들이 그리워졌다. <하나비>의 곡을 들을 때는 영화 속 마지막 바닷가와 <렛미인>의 북유럽이 그리웠고, <기쿠지로의 여름> 삽입곡 ‘Summer’를 들을 때는 초록빛 사이를 날아다니는 날벌레들의 세계를 동경했다.


내 삶이 히사이시 조의 음악과 같다면 얼마나 좋을까. 힘들고 고된 삶의 흔적조차 낭만적인 멜로디와 리듬, 따듯한 기운으로 품어내는 넉넉함이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한참이나 그런 생각에 골몰했다. 이제 나는 다시 불안과 짜증, 고단한 삶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곳에는 애틋한 마음이나, 내 고민을 말없이 이해하며 감싸주는 존재들이 없으니까. 어쨌든 버텨야 한다고 다짐하며 이를 악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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