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사이시 조는 고누마 준이치 와세다대학 교수와의 대담에서 이런 대화를 주고받았다. “(음악 작품이) 유기적으로 융합되면 그 자체가 의지를 갖게 됩니다. 작품은 어느 정도 선까지 가면 제 의지와는 상관없이 멋대로 움직이기 시작합니다.”(히사이시 조) “작품 스스로 말을 거는군요.”(고누마 준이치) 히사이시 조에게 음악은 살아있는 생명체다. 6월 24일 하남문화예술회관 대극장에서도 위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펼쳐낸 히사이시 조의 음악은 살아있는 것처럼 꿈틀거렸다.
히사이시 조 음악의 매력을 살려낸 공연
히사이시 조(Hisaishi Joe)는 아시아는 물론 유럽과 미국 등 전 세계에서 사랑받는 영화음악의 거장이자 피아니스트다. ‘히사이시 조’는 예명으로, 당시 존경하던 음악 프로듀서 퀸시 존스(Quincy Jones)와 비슷한 느낌을 내고 싶어서 작명했다고 한다. 히사이시 조는 올해 클래식 음반계 명문 ‘도이치 그라모폰(Deutsche Grammophon)’과 계약을 맺고 음반을 출시했다. 노란색 라벨로 알려진 도이치 그라모폰의 명성과 높은 장벽을 생각한다면 그의 음악이 클래식계에서도 높이 평가받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대중에게도 역시 마찬가지다. 유튜브에 그의 영어 이름만 검색해봐도 유럽과 미국 등지에서 공연하는 모습, 그리고 환호를 보내는 세계 팬들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그럴 만하다. 애니메이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 대부분에서 영화음악을 맡은 데다 <기쿠지로의 여름>, <하나비> 등 기타노 다케시 감독의 영화에도 참여하며 높은 명성을 쌓았으니 말이다.
지난 6월 24일 오후 5시 하남문화예술회관 대극장(검단홀)에서 히사이시 조의 음악을 현장에서 접할 수 있는 공연이 열렸다. 미야자키 하야오와 히사이시 조의 명성 덕분인지 객석은 빈틈없이 매진이었다. 위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다채로운 편곡을 기반으로 다양한 악기의 소리를 섬세하게 살려냈다. 그들의 연주는 단단했다. 이미 여러 해 같은 곡들을 연주해서인지 여유로움과 자연스러움이 느껴졌다. 공연 곳곳에 선보인 피아노(김재원), 바이올린(김영준), 오보에(고관수), 첼로(배성우) 솔로는 그 매력을 더해줬다.
히사이시 조 음악의 굳건한 생명력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관객에게 전달하는 힘은 굉장했다. 영화나 애니메이션을 보지 않아도 충분히 귀에 익숙한 멜로디와 연주가 귀에 꽂히자 가족, 친구, 연인 단위의 관객은 저마다의 사연을 품은 채 공연에 몰입했다. 1부에서는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와 <마녀 배달부 키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벼랑 위의 포뇨>, <이웃집 토토로>까지 미야자키 하야오의 지브리 애니메이션 삽입곡들을 선보였다. 드라마틱한 곡 구성(히사이시 조)에다 위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편곡이 더해졌다. 이 곡들에는 노랫말도 없고, 공연장에서 누구 하나 설명해주지 않았지만, 관객들의 표정은 저마다 벅차오르는 듯 보였다. 다층적이면서도 섬세한 표현력을 지닌 히사이시 조의 음악은 관객의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기쿠지로의 여름> 삽입곡으로 유명한 ‘Summer’로 시작해 <원령공주>와 <하나비>, <천공의 성 라퓨타>, <붉은 돼지>, <하울의 움직이는 성> 삽입곡으로 이어지는 2부 공연 역시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관객의 귀에 익숙한 곡들이 많은 덕분이다.
‘이 곡을 들었을 때 그랬지’ ‘그 시절 내 사랑과 가족은 그랬지’ 공연장에는 저마다의 이야기가 피어났다. 히사이시 조의 음악은 힘들고 고된 삶의 흔적조차 따듯한 기운으로 품어내는 넉넉함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처연하고 슬픈 멜로디도 비극적이라기보단, 진중한 위로처럼 느껴진다. 히사이시 조의 음악을 ‘말없이 등 두드려주는 친구’처럼 느끼는 것은 그런 이유가 아닐까.
그러니까 지난 주말 <히사이시 조 영화음악 콘서트>에서 관객들이 목격한 것은 다름 아닌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히사이시 조는 저서 《히사이시 조의 음악일기》(2020, 책세상)에서 공연의 매력을 이렇게 표현했다.
“라이브에서는 연주 당시 오케스트라의 상태, 지휘자의 컨디션, 관객의 반응, 나아가 그 장소에만 있는 특별한 분위기 속에서 음악이 탄생한다. (중략) 그래서 같은 곡이라도 몇 번이고 다시 들으러 가고 싶어진다. 이때 CD를 복사한 것만 같은 연주가 좋을 리 없다. 때에 따라서는 템포를 빨리 하고, 일부로 격하게 연주하기도 한다. 그런 현장감이 콘서트의 묘미다.”(56쪽)
히사이시 조는 이런 순간이야말로 ‘음악이 음악이 되는 순간’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음악이 삶이 되는 순간’이라고 표현해도 되지 않을까. 작곡가는 작품과의 대화를 통해 음악을 완성하고 이를 관객에게 선보인다. 그리고 오케스트라의 새로운 편곡과 해석이 더해진 음악을 현장에서 접한 관객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음악과 대화를 나눈다. 이런 대화들이 쌓일수록 히사이시 조의 음악이 지닌 생명력은 더욱 굳건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