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지옥으로 흘러 들어가지는 않을 테니까

by 초생달

생각해보면 어릴 때부터 친구가 많지 않았다. 태권도를 배우며 유치원을 다닐 때도, 초등학생, 중·고등학생 때도 매년 친구가 1~2명 이상인 적은 없다. 아예 없거나 절친한 1명 정도가 전부였다. 그래서 나는 그 소수의 친구에게 항상 내 모든 걸 쏟아냈다. 친구들은 그런 나를 부담스러워했다. 그 친구들은 나 말고도 친구가 많았으니까. 나이를 먹은 후에도 상황은 똑같았다. 난 항상 1~2명의 소수의 친구와 어울리고, 그 친구들은 대개 다른 친구가 많다. 때때로 질투할 때도 있었다.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이 친구도 나를 친하게 생각할까? 혹시 나만의 착각이라면 어쩌지?


혼자 있는 걸 견디기 어려워하는 편이다. 모순이다. 타인과 쉽게 친해지지 못하는 성격의 소유자가 혼자 있는 걸 힘들어한다니. 그래서 내 인생은 내내 엇비슷한 흐름으로 흘러갔다. 친구에게 너무 많은 걸 기대다가 채워지지 못하니 실망하고, 혼자 있다 보면 다시 힘들어하는 일의 반복이었다. 혼자 살면서 그 증세는 더 심해졌다. 혼자 있다 보면 갑갑해져 일부러 창문을 훤히 열어놨다. 폐쇄된 공간에서 머무는 건 지옥이나 다름없었다. 밤 산책을 하고, 일부러 불이 켜진 카페나 편의점에 들어가서 쇼핑하기도 하고. 잠을 잘 때도 사람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드라마나 유튜브 콘텐츠를 틀어놓았다. 사람 목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불안했다.


혼자 남기 싫어 발버둥을 쳤지만 결국 나는 혼자 남았다. 내 진심이나 이야기를 자세하게 들어주는 사람은 없다. 뭔가 하고 싶은 말이 많은데 항상 입 안에서만 맴돌다가 사그라진다. 각자도생의 시대다. 우리는 각자의 인생에 몰두한다. 타인의 인생에 관심을 두지 않고, 깊은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것이 예의다.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한 시대다. 각자의 템포를 방해해선 안 된다. 그러니까, 나와 타인 사이에는 어떠한 ‘선’이 그어져 있다. 그 선을 넘어서는 안 된다. 그 선에는 ‘친해지고 싶어요’라고 쓰여 있다. 혹은 ‘앞으로’ 같은 수식어도. ‘앞으로’처럼 기대감이 담긴 말은 쉽게 꺼내면 안 된다.


프랑스 남자와 결혼해 프랑스에서 사는 어느 누나는 내게 법문 공부를 조언했다. 법문을 공부하다 보면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나는 안정될 수 있을까. 불안은 언제쯤 나를 떠나게 될까. 물론 나는 내가 안정될 거라고 믿지 않는다. 다만 “너는 영원히 불안정할 거야. 하지만 살 만할 거야.”라고 말하던 어느 영화감독(이해영)의 말만은 믿는다. 내가 감동한 것은 ‘하지만’이라는 수식어 때문이다. 나의 불안정함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 ‘하지만’ 그 인정이 나를 지옥으로 이끌지는 않을 거라는 조언.


기적은 일어나지 않을 거다. 몇 년 후에도 내 처지는 크게 달라지지 않을 테다. 여전히 불안하고, 외로워하고, 글을 쓰며 이겨내고 있겠지. ‘하지만’ 그래도 내 시간은 계속 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누구에게나 시간은 공평하다. 나도 늙고 너도 늙어간다. 그게 요즘 내 위안거리다. 어쨌든 내가 지옥으로 흘러 들어가지는 않을 거라는 믿음도 위안이 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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