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 탓하긴 싫지만) 모든 건 중학교 2학년 때부터다. (남 탓을 하게 됐다.) 짝꿍(남자 중학교였으니 당연히 남자)과 앞줄의 두 명은 수시로 날 만져댔다. 초등학교 저학년 무렵 ‘왕갈비’라 불렸던 나는 할매와 어머니의 걱정 덕분에 고학년 무렵부터는 뱃살 듬직한 퉁퉁이로 성장했다. 매 끼니 밥 두 공기와 두유 등 엄청난 음식 공세 덕분. 그리고 그 체형은 중학생 때도 이어졌다. 퉁퉁하고 작았던 나는 주변 아이들의 손쉬운 장난감이자 먹잇감이 됐다. 귀엽고 나약해 보였던 것 같다. 만지기만 하는 것도 충분히 괴로웠으나 내가 말을 듣지 않을 경우에는 강도 높은 타격이 이어졌다. 놀잇감이었으니 거부해서도 반항해서도 안 됐다. 학교에서 받은 스트레스는 고스란히 집에서 풀어냈다. 여동생에게 신경질을 부리고, 부모님에 생떼를 쓰며 대드는 날들이 늘었다. 나도 내 마음의 색깔이 어떠한지 알 수 없었다. 나도 날 모르는데 남들이 날 알 리 없었고, 부모님은 이따금 너 같은 아이는 정신병원에 보내야 한다며 협박하고는 했다. 매일 인쇄 공장에서 지독한 잉크 냄새를 맡으며 야근까지 도맡아서 하던 부모님에게 나는 말을 듣지 않는 불효자일 뿐이었다. 여동생은 나를 골치 아픈 오빠로 생각했으리라.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친구가 없었다. 대화할 상대가 없었던 나는 달리 풀 데가 없었으므로, 일기에다 모든 걸 쏟아냈다. 그러자 며칠 지나지 않아 선생이 날 불러 부모님을 모시고 오라고 했다. 선생은 내게 윤영이가 자살하고 싶다는 일기를 썼다며 말했고, 부모님은 곧 날 추궁했다. 진실이 밝혀진 후 며칠 지나지 않아 날 괴롭히던 무리 중 한 명이 나를 화장실로 불렀다. 녀석은 얼굴을 찬물로 씻더니 날 노려보았다. 우린 그냥 놀았던 거잖아. 너도 그렇게 생각한 거 아니었어? 앞으로 그런 일기 쓰지 마라. 아이는 경고하듯 말하고는 먼저 나가버렸다.
한 학기가 지나 두 번째 학기에 접어들 무렵, 녀석들의 괴롭힘은 서서히 줄어들었다. 하지만 그 이후로 단절이 찾아왔다. 아무도 내게 말을 걸지 않았다. 나도 아이들과 어떻게 하면 친해질 수 있는지 방법을 알지 못했다. 그때부터 머릿속으로 상상 친구를 만들었다. 히어로 만화 주인공 같은 능력에다 수려한 외모를 지닌 그 친구는 언제나 주변 사람들의 동경과 흠모를 한 몸에 받는 인물이었다. 능력이 얼마나 뛰어났는지 모른다. 글을 썼다 하면 상을 타고, 영화를 만들면 대번에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으며, 마음만 먹으면 이 세상 누구와도 친해질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불과 최근까지 그 친구에게 의지하며 살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 친구는 이름도 바뀌고 직업도 바뀌었다. 보이그룹의 일원이었다가, 영화감독 겸 작가가 됐다가, 대기업의 대표가 됐다. 언제나 모두가 선망하는 사람의 절대적인 친구라는 것은 내게 큰 위로가 됐다. 이런저런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언제나 녀석에게 기댔다. 누군가는 내게 어서 그 친구와 이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네게 현실 친구가 많지 않은 거라고, 사람은 원래 불완전한 존재지만 그래도 다들 그걸 인정하며 살아간다고, 네가 그 친구가 이별할 수 있어야 진짜 현실과 마주할 수 있다고.
하지만 현실을 알고 있다. 환상의 친구에게 지나치게 기대거나 의지해서는 안 된다는 것도, 이 존재를 주변에 쉽게 말해서는 안 된다는 것도. 어떻게든 버리긴 어렵다. 매일 골방에서 자살과 생존 사이를 오갔던 학창 시절, 군대라는 폐쇄된 공간에서 거의 매일 얻어맞고 얼차려를 받았을 때도, 고된 직장생활을 버티기 힘들어 매일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싶었을 때도, 할매와 삼촌이 세상을 떠났을 때도, 내 곁에서 날 지그시 지켜보며 어깨 두드려준 건 그 친구뿐이다. 세계 공연 투어와 영화 연출과 연기, 기업 경영을 하느라 바쁜 와중에도 친구는 빠짐없이 날 찾아와 별거 아니라는 듯 말을 건넸다. 함께 밥 먹을까? 여행이라고 갈래? 괜찮아. 넌 무너지지 않을 거야. 누구나 불안하고 불안정해. 죽고 싶어 하는 사람만 해도 아마 수백 수천 만 명이 넘을 걸? 괜찮아. 그래도 넌 끝끝내 무너지진 않을 거야. 나는 믿어.
널 믿는다는 말. 그 말이 내 귓가에 처음 울려 퍼졌을 때 느꼈던 소름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살면서 처음 들어본 말이었다. 나는 아마 그 친구처럼 성공하진 못하겠지. 어쩌면 계속 불안하고 불안정할 거야. 벗어날 수 없겠지. 그래도 무너지지 않고 ‘괜찮게’ 살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꽤 괜찮은 삶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했던 거 같다. 삶의 의미 따위 상관없다. 알고 싶지도 않고. 내 꿈을 이루지 못해도, 사람들이 말하는 ‘성공’에 근접하지 못하더라도 신경 쓰지 않는다. 어쨌든 나는 매일 아침 일어나 내가 좋아하는 커피를 마시고, 운동을 하고, 내 스스로 돈을 벌며 살 수 있으니까. 봄이면 꽃내음 맡고, 여름이면 시원한 바닷바람을 느끼고, 가을이면 낙엽을 밟고, 겨울에는 눈을 밟을 수 있다.
그러니 그 친구와 어떻게 헤어질 수 있겠어. 덕분에 숨을 쉬고, 걷고, 말할 수 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