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비행 감각
이상한 일이다. 초등학생 무렵부터 혼자일 때가 많았는데도 혼자 지내는 시간을 견디지 못했다. 그렇다고 타인에게 마냥 친절하지도 않았다. 극 내향 성격 덕에 여럿이 모인 자리에서는 입 다물거나, 누군가 말을 건네줘도 단답형 대답으로 분위기를 낯설게 만들었다. 어른이 돼서도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몇 번의 연애를 거쳤지만 결국 모두 실패로 끝났다. 본가를 떠나 따로 나가 살면서 혼자 있는 시간은 더 길어졌다.
커피 브루잉을 하거나 에스프레소를 내려 라떼 음료를 만들어 마신다. 유튜브 영상이나 영화를 본다. 책을 보거나 글을 쓴다. 이래도 저래도 안 되면 상상 속 친구를 불러낸다. 취미를 즐기다 보니 싱글라이프가 좋다기보다, 혼자 있는 시간을 견디려면 취미는 필수였다. 블로그나 인스타그램을 통해 친구를 만들려 한 적도 있다. 하지만 온라인 공간의 이웃들은 대부분 선을 그었다. 남자든 여자든 온라인 공간의 이웃을 오프라인으로 끌어들이려 하지 않았다.
현실 세계 친구가 많지도 않지만 그나마 있던 친구는 대부분 멀리 있거나 바빴다. 나이를 먹을수록 친구에게 의지하는 것은 철없는 행동으로 여겨졌다. 그러니까 나는 당당한 싱글, 냉소적이거나 우울해하지 않는 싱글이어야 했다. 사람들은 ‘나잇값’ 할 줄 아는 어른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들의 생각에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았다. 다만 궁금했다. 긴 시간 혼자였는데도 왜 나는 적응할 수 없을까. 왜 항상 ‘함께’를 꿈꾸고, ‘협력’이나 ‘연대’ 같은 말에 무너질까. 왜 그리 쿨하지 못한 거야. 나잇값을 하지 못하는 자신이 싫었다. 그렇다고 변하는 건 없었다. 나잇값을 하든 아니든 시간은 항상 똑같이 흐르고 내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으니.
잠깐만. 내가 어떻게 생겼더라. 나는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지? 그러고 보니 거울을 제대로 본 적도 없잖아? 나는 내 모습을 똑바로 마주한 적이 없었다. 외면하거나 실눈을 뜨면서 자신의 마음을 감싸기만 했다. 그래서 결심했다. 일단 똑바로 관찰해볼 것. 내가 나를 사랑하게 되든 말든 그건 나중 일이고, 일단 똑바로 관찰해보자.
내가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기란 어렵다. 객관적으로 본다 한들 항상 한편에는 감상과 연민이 먼저 자리를 잡는다. 내가 자신을 동정하는 순간 게임은 끝난 거다. 어떻게 하면 추락하지 않고 안전하게 비행할 수 있을까. ‘바다를 하늘로 알고 거꾸로 날아가’지 않으려면.
계기판보다 단 한 번의 느낌을 믿었다가 바다에 빠져 죽은 조종사의 이야기를 알고 있다 그런 착시현상이 내게도 있었다 바다를 하늘로 알고 거꾸로 날아가는 비행기처럼 등대 불빛을 하늘의 별빛으로, 하강하는 것을 상승하는 것으로 알았다가 추락하는 비행기처럼
그가 나를 고속으로 회전시켰을 때 모든 세상의 계기판을 버리고 딱 한 번의 느낌을 믿었던 사랑, 바다에 빠져 죽는 일이었다. 궤를 벗어나 한없이 추락하다 산산이 부서지는 일이었다. 까무룩하게 거꾸로 거꾸로 날아갈 때 바다와 별빛과 올라붙는 느낌은 죽음 직전에 갖는 딱 한 번의 황홀이었다
-최문자, <Vertigo 비행감각>
이 글은 혼자 있는 시간의 ‘나’를 비로소, 바라보자는 데서 시작했다. 앞으로 이어지는 연재 글은 모두 이 범주 안에 포함될 것. 커피를 만들고 마시는 나는 어떤지, 혼자 글을 쓰고 생각에 잠긴 나는 무엇을 꿈꾸는지. 왜 살펴보냐고? 답은 간단하다. 날 제대로 바라본다면 더 이상 외롭지 않을 것 같아서다. 나를 동정하고 왜곡하는 일은 ‘죽음 직전에 갖는 딱 한 번의 황홀’만큼이나 짜릿했다. 하지만 아직 나는 한없이 추락하다 산산이 부서지고 싶지 않다.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믿으니까. 그렇다고 그때가 언제냐고 묻는다면 대답할 수 없지만.
커피를 만들다 문득 외로움이 밀려드는 시간, 유튜브에 떠돌아다니는 플레이리스트를 듣다가 이대로 죽어도 좋다는 감정에 취하는 어느 밤, 침묵 속에 잠드는 것이 무서워 철 지난 드라마나 ‘우주의 기원’ 따위의 영상을 틀어놓고 잠드는 시간. 앞으로 쓸 글들은 내 좁은 아파트의 그 시간 어딘가에 있다. 그것들을 끄집어내서 바라보고 생각하고 꾸짖는다. 나를 더 사랑하기 위해 한 발 뒤로 물러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