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중 나가는 길

by 초생달

1993년 대학가요제를 통해 데뷔한 듀오(서동욱, 김동률) 전람회의 등장은 쇼킹했다. 1974년생 동갑내기 둘은 연세대학교 1학년 재학 당시 한 명은 베이스, 한 명은 피아노를 치며 아마추어들의 무대인 대학가요제를 거의 ‘개인 콘서트’ 분위기로 만들었다. 김동률의 매력적인 저음의 보컬 톤과 재지한 느낌의 노래는 이후 내 플레이리스트에 빠지지 않고 오르내렸다. 김동률이 노래를 부르고 노래를 만들었기 때문인지 서동욱은 잘 눈에 띄지 않았다. 베이스기타를 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흉내만 내는 것일까 궁금했던 정도랄까. 가수 활동을 이어간 김동률과 달리 서동욱은 1997년 전람회 해체 이후 직장인의 삶을 택했다. 금융계에서 활동하며 이따금, 아주 간혹 김동률의 음반과 몇몇 라디오 방송에 등장했던 서동욱은 쉽게 잊혔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 잘 몰랐고, 실은 별로 궁금하지도 않았다.

전람회의 앨범을 좋아했으면서도 ‘마중 가던 길’이라는 서동욱의 솔로곡을 처음부터 끝까지 들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에 반복해서 들으며 알게 됐다. 하늘거리는 듯한 목소리는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며 나직하고 깊게 청자의 귀를 파고든다.

널 만나기 위해 길을 나섰지 아무도 모르게

낯익은 가로수 아름드리 나무는 푸른데

날 스쳐 가는데 가을바람은 예전 그 모습으로

늘 따뜻한 웃음 날 지켜주던 네 모습은

이제는 허물어져 아른거리는 기억 속을 더듬어도

난 생각이 나질 않아 그저 차가운 웃음만이 쌓여갈 뿐

난 이제 잊혀지(표준어는 ‘잊히’)겠지.

화자는 ‘너’라고 지칭된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길을 나섰다. 그런데 ‘아무도 모르게’ 나섰다. 깜짝 쇼를 준비할 배포도 없는, 부끄러움이 많은 사람이리라. 푸른 빛의 나무를 스쳐 지나가는데 가을바람이 불고, 그때 화자는 ‘너’의 따뜻했던 웃음을 떠올린다. 하지만 기억나는 것은 그뿐이다. 너의 구체적인 모습은 기억나질 않는다. ‘내’가 기억하는 ‘너’의 웃음은 따뜻했지만, 이제 ‘나’에게는 차가운 웃음만이 쌓인다. 오래 만나지 못했으니 ‘나는 이제 잊히겠지, 진작에 잊혔겠지’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수줍은 사춘기, 여드름 가득한 소년이 짝사랑하는 소녀를 만나러 가는 길에 떠올린 생각 같달까. 정서가 미묘하다. 누군가를 마중 나가는 길은 설레기 마련인데, 이 노래에는 설렘과 자학이 공존한다.

어린 시절 사내자식의 연애라는 게 대개 그랬다. 긍정과 부정, 희망과 절망이 한 마음에 공존한다. 하루는 기뻤다가 그다음 날은 우울해지고, 그러다가 또 다음 날이 되면 혹시 모를 희망에 기댄다. 갈대처럼 하늘거리는 서동욱의 목소리를 통해 듣는 ‘마중 가던 길’은 그 복잡미묘한 감정을 잘 전해준다.

화자는 언제쯤 ‘너’를 만날 수 있을까. 지난 12월 18일 이곳을 떠나 하늘의 별이 된 서동욱은 이제 ‘너’를 만났을까. 만났다면 둘은 어떤 대화를 나눌까. 노랫말에서는 사춘기 소년의 수줍은 고백처럼 떨리는 목소리로 자학하지만 굳이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이미 너무 많은 전람회와 그의 팬들이, 그의 노래와 함께 청춘을 보냈던 숱한 사람들이 그를 기억하기로 마음먹었으니까. 당신이 다시 걷던 그 마중 길에 아름드리나무는 여전히 푸른지, 가을바람은 여전한지 묻는다. 이제 그의 모습이 선명하게 떠오르는지. 당신은 쉽게 잊히지 않을 것 같다. 그 이름 세 글자만으로도 자신의 청춘과 시간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이토록 많다는 건, 아직 이 땅에서 생생하게 당신이 살아 있다는 뜻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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