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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nyeong Sep 13. 2023

그대 정직한 사람이길

출퇴근길에 듣는 노래 

겉모습만 봐도 가까이 가면 안 될 것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왜 그런 사람 있죠? 포마드로 머리를 잔뜩 뒤로 넘긴 헤어 스타일, 상체에 딱 달라붙는 반 팔 티, 배바지를 차려입은 사내. 그냥 딱 봐도 운동 좀 했다고 느껴지는 사내였어요. 전 이상한 루틴 몇 가지에 집착하는 편인데, 그중 하나가 매일 같은 출입문 번호에서 지하철을 타는 겁니다. 청담역 출구에서 가까운 것도 아닌데 그쪽이 좋더군요. 느긋하게 걸으면서 직장으로 갈 수 있어서 좋아요. 지하철을 타려고 그 사내 옆으로 다가갔습니다. 위협감이 느껴졌지만 전 제 루틴을 지키고 싶었습니다. 지하철이 도착하고 출입문이 열렸습니다. 자연스럽게 들어가려고 하는데 그 사내가 저를 밀치려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두 명이 동시에 입장하는 일이 생기면 그저 살짝 옆으로 비켜주면 됩니다. 잠깐 멈춰 서 기다려도 되고요. 전 살짝 옆으로 움직일까 고민하고 있는데 갑자기 사내의 굵은 팔뚝이 내 몸을 치고 지나갔습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시비였습니다. 그뿐만 아니었어요. 하긴, 저도 문제는 있었어요. 보란 듯이 그 사내를 바라보며 씩 웃었거든요. 물론 냅다 다시 들고 있던 책으로 눈을 돌리긴 했지만요. 그 사내가 저를 5초가량 째려보고 있다는 게 느껴졌습니다. 머릿속이 복잡했지만 해답은 간단했어요. 그 순간 제가 그 사내를 바라보면 바로 다툼이 시작되는 겁니다. 남자들의 세계가 그렇지요. 시비 붙은 상황에서 서로를 노려본다는 건 사실상 ‘이제 나는 너랑 싸우겠다!’라는 신호 같은 거니까요. 그래서 저는 몸을 움츠리고 더 책에 파묻혔습니다. 마침 제가 좋아하는 조해진 작가의 소설집을 들고 있으니 좋은 핑곗거리가 됐죠. 

 

출근길 내내 그 생각에 골몰했습니다. 시비 자체는 문제가 아니었어요. 대체 왜 출입문 앞에서 절 이기려고 했을까 하는 궁금증이었죠. 출입문은 양쪽으로 문이 달려 있고 두 사람이 충분히 지나갈 수 있는 공간이 확보돼 있습니다. 그렇지 못하다면 누구 하나가 살짝 양보해주면 되는 겁니다. 그런데 왜 그 사내는 굳이 저를 밀치고 지나가려고 했을까요? 대체 왜? 그게 너무 궁금하고 이상하게 느껴졌습니다. 거기서 저를 밀치고 먼저 들어가면 누가 상을 줍니까? 아니면 자신이 이겼다는 자부심을 느낄 수 있나요? 정말 이상한 출근길이었어요. 

 

답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습니다. 저 또한 20대 시절 그랬거든요. 지하철, 버스, 거리 등에서 비슷한 또래나 젊은 사내들을 마주치면 이상하게 ‘내가 너보다 강한 존재’라는 걸 ‘굳이’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몇 번 시비가 붙은 적도 있죠. 다른 이유가 아니에요. 열등감 때문이었어요. 자신이 싫었던 저는 언제나 자신을 크고 위협적인 존재로 보이려 애썼습니다. 덩치가 작았기에 육체적으로 보여줄 수는 없었고, 대신 표정과 자세가 중요했습니다. 사내들과 우연히 눈을 마주치면 잔뜩 인상을 쓰고선 알아서 기라는 식으로 위협적인 자세를 보였습니다. 진짜 진상이 따로 없었네요. 

 

나와 눈이 마주쳤을 때 그 어느 때보다 그대 정직한 사람이길 나와 눈이 마주쳤을 때 그 어느 때보다 그대 여린 사람이길 거짓된 마음들이 돋아나는 세상에 살며 아플까 날 감추는데 익숙해진 건 아닌지 그대여 난 온전한 그댈 원해요 그대 내게 언제나 정직하기를 원해요 늘 몰래 삼켰던 그 목소리로 내게 이야기해주세요

 

생각해보면 저는 자신에게 정직하지 못했어요. 아프기 싫어서, 약해 보이기 싫어서 부러 강한 척을 했지만 실은 누구보다 약하고 여린 존재였죠. 2013년 발표된 강아솔의 노래 ‘나의 대답’을 듣고 그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온전한 자신으로 살아본 게 언제인지 기억이 안 났어요. 저를 누군가에게 소개할 때면 언제나 과장되게 표현했습니다. 제겐 ‘사실’ 이런 능력이 있고, ‘알고 보면’ 되게 남자답고, ‘솔직히 말하면’ 누구든 이길 수 있지만 부러 싸우지는 않는다는 식으로 말이죠. 말할 때마다 ‘사실’, ‘알고 보면’, ‘솔직히 말하면’을 자주 붙이는 사람은 신뢰하지 말라는 말이 있습니다. 제가 딱 그런 인물이었어요. 제가 자신을 신뢰하지 못하니 남들도 저를 신뢰하지 않았습니다. 깊은 인간관계는 당연히 어려웠겠죠. 

 

강아솔의 목소리는 차근차근 부드럽게 제 귓가에 감깁니다. 마치 옆에서 들려주듯 달콤합니다. 조용히 이렇게 말하는군요. “나와 눈이 마주쳤을 때 그 어느 때보다 그대 정직한 사람이길”, “온전한 그댈” 원한다고 말입니다. 사실 누군가에게 약해 보인다고 삶에서 지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난관에 봉착했다면 극복하려고 노력하면 되고, 약해 보이는 게 불만이라면 제 몸과 마음을 키우면 되는 거죠. 아프다면 아프다고 솔직히 말해도 됩니다. 본인의 상태를 정확히 판단하고 이해해야 치료받을 수 있잖아요. 

 

해답은 알고 있었지만, 그동안 외면해왔던 것 같아요. 이 노래를 듣고 있으면 왠지 부끄러워집니다. 지난 20대 시절 어설픈 반항아였던 제 모습이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늘 몰래 삼켰던 그 목소리로” 이제는 고백합니다. 저는 정직하지 못했고 강한 척 굴었던 나쁜 사람이었다고, 아픔을 감추며 으스댔던 거짓말쟁이였다고 말입니다. 이제는 이렇게 말하렵니다. 저는 약하고 여린 사람, 끊임없이 불안하고 흔들리는 사람이라고요. 하지만 단단하고 부드러운 내면을 가지고 싶고, 그러기 위해 남은 생 동안 조금씩 노력해보겠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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