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퇴근길에 듣는 노래
누군가 그랬어요. 이별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어른이 되고, 성장할 수 있다고요. 속으로 되묻고 싶더군요. 난 어른으로 살고 싶지 않은데요. 부모님의 아들로 태어나 할아버지가 지어주신 이름으로 불리며 살아간 저는 살면서 몇 번의 이별을 했을까요. 수도 없었습니다. 어떤 이별은 쉽게 잊히지만, 평생 지울 수 없는 이별도 있습니다.
제게도 잊을 수 없는 이별이 있습니다. 할머니, 삼촌, 대학 동기 정혜주의 죽음이 제겐 그랬습니다. 그리고 어린 시절 만났던 강아지 역시 그렇습니다. 당시 저는 그 녀석을 무서워했어요. 아직도 또렷이 기억납니다. 유치원을 다닐 무렵 저는 마당 있는 집에서 부모님은 물론 할머니, 할아버지, 삼촌, 고모들과 한 집에 살았는데요, 마당 한쪽에는 갈색빛 잡종견이 있었어요. 녀석과 저는 그리 친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한번은 의식하지 않고 녀석 옆을 지나가는데 위협을 느꼈습니다. 녀석은 나를 향해 크게 짖었습니다. 마치 그 녀석이 나를 잡아 먹으려고 하나 생각했나 봅니다. 깜짝 놀란 저는 그 자리에서 펑펑 울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에게 어서 저 녀석을 치워달라고, 다른 데로 보내라고 말했습니다. 그날 저녁 어른들은 회의를 했어요. 뭐라고 이야기 나누는지 알 수 없었어요. 며칠 후 그 녀석은 마당에서 사라졌습니다. 나중에 고모 한 명이 제게 말해주더군요. 잡아서 고기를 해 먹었다고요. 그날 밤 저는 잠을 설쳤을까요. 기억나지 않지만 그게 평생 잊히지 않는 걸 보면 충격을 받긴 했나 봅니다.
그 이후 저는 한동안 반려견을 원하지 않았어요. 동물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죄책감 때문입니다. 나 때문에 고깃덩어리가 된 녀석에게 미안했어요. 아직도 그 녀석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육교 위의 네모난 상자 속에서 처음 나와 만난 노란 병아리 얄리는 처음처럼 다시 조그만 상자 속으로 들어가 우리 집 앞뜰에 묻혔다. 나는 어린 내 눈에 처음 죽음을 보았던 1974년의 봄을 아직 기억한다. (중략) 나 역시 세상에 머무르는 건 영원할 수 없다는 것을. 설명한 말을 알 수는 없었지만 어린 나에게 죽음을 가르쳐 주었네. 굿바이 얄리, 이젠 아픔 없는 곳에서 하늘을 날고 있을까. 굿바이 얄리, 너의 조그만 무덤가엔 올해도 꽃은 피는지. 굿바이 얄리, 이젠 아픔 없는 곳에서 하늘을 날고 있을까. 굿바이 얄리, 언젠가 다음 세상에도 내 친구로 태어나줘.
그러니까 넥스트의 이 노래 <날아라 병아리>를 처음 들었을 때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그 녀석을 떠올렸습니다. 신해철 형님과 얄리처럼 돈독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미안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친구가 될 수도 있었으니까요. 그때 내가 녀석을 외면하지 않고 따뜻하게 대했다면, 무서워하지 않고 천천히 다가갔다면 우린 둘도 없는 친구가 될 수 있었을지도 모르잖아요. 녀석과 저는 시작도 하지 못한 상태에서 끝이 났습니다. 말이 이상하죠? 시작이 없는데 끝은 존재한다니. 그런데 정말 그랬습니다. 시작이 있었다면 우리의 끝은 달랐을지도 모르잖아요. 왜 난 그 녀석을 없애달라고 부탁했을까요. 어린아이 입장에서는 그럴 수 있다지만, 고깃덩어리가 돼 어른들에게 먹힌 녀석을 생각하면 한없이 미안했습니다.
다른 세상이 있을까요? 그런 세상이 있다면, 녀석에게 먼저 다가가고 싶습니다. 이제는 전보다 능숙하게 친해질 수 있겠어요. <동물농장>에서 배운 노하우가 있으니까요. 다시 만나면 그때 우리는 꼭 친하게 지내자. 끝만 남았으니, 뒤늦게라도 시작을 만들어보자. 생각해보니 이름을 지어줘야겠군요. 당시 녀석은 뭐라고 불렸을까요? 누렁이? 바둑이? 좀 더 친근하고 따뜻한 이름을 찾다가 결국 ‘얄리’를 떠올립니다. 신해철 형님에게는 미안하지만 그 이름을 좀 나눠 써야겠습니다. ‘얄’이라는 글자에는 설렘과 기대를, ‘리’라는 글자에는 포근함과 영원한 시간을 담습니다. 얄리, 잘 지내고 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