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행우주의 나에게

매일 한 순간

by 초생달

사진작가, 영상 피디와 함께 외근을 다녀왔다. 서울에서 만나 사진작가 차량으로 목적지에 갔고, 오후 늦게 업무 종료 후 다시 그 차를 타고 서울로 복귀했다. 저녁 시간이 다가올수록, 서울로 돌아갈수록 도로 위 차량은 늘어났다. 차는 밀리고 우리 분위기는 썩 밝지 않았다. 그럴 만도 했던 게 우리 셋은 친한 사이도 아니고 업무상으로 자주 본 적도 없었다. 나는 사무실 동료의 부탁으로 취재를 나왔고, 사진작가는 프리랜서, 영상 피디는 출근한 지 2주 차였다.


일과 군대(셋 다 남자였다), 영화 이야기를 나누다 만화 <룩 백> 이야기가 나왔고, 나는 평행우주에는 좀 더 나은 삶을 사는 우리가 있지 않을까 하는 시답잖은 말을 던지기도 했다. 사진작가와 영상 피디는 실소를 터뜨리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가능하지 않겠지만 과거로 돌아가고 싶어요.”

“그래서 제가 <백 투 더 퓨처(Back to the Future>를 좋아하나 봐요.”

“공부는 안 하고 그냥 놀기만 하는 학창 시절이면 좋겠어요.”


말수가 적고 침착한 성격의 영상 피디가 꺼낸 그 말을 듣고 나는 ‘모두 비슷한 생각을 하며 사는구나’라고 느꼈다. 돌아가고 싶은 시기는 저마다 다를 거다. 영상 피디는 영화를 사랑해 감독을 꿈꿨다는 고등학생 시절을 언급했고, 사진작가는 꿈도 고민도 없던 중학교 시절을 떠올렸다. 내가 돌아가고 싶었던 과거는 그보다는 좀 더 지난 시점이다. 내 10~20대 무렵은 고통과 불안, 반항으로 점철돼 있었다. 다시 돌아가도 그 시절을 무사히 보낼지는 알 수 없다.


내게 그나마 평화로웠던 시절은 30대 무렵이다. 급여는 적었지만 시와 소설을 책으로 만드는 출판사에서 일했고, 매달 만날 수 있는 친구가 있었다. 퇴직을 걱정할 만큼 많은 나이는 아니었으니 고민이나 불안은 필요하지 않았다. 야근이나 잔업이 없을 때는 정시에 퇴근하자마자 라이브 공연장을 찾아다녔다. 사무실이 홍대입구역 인근에 자리해 공연 보기 편했다. 2~3만 원만 있으면 두세 시간 공연을 어디서든 즐길 수 있었다. 소극장 공연인 데다 관객 수가 많지 않으니 공연하는 음악인과 대화가 가능했고, 신청곡도 잘 받아줬다. 10~11시 무렵 공연이 끝나면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라이브로 들은 노래 몇 곡을 흥얼거렸다. 그러고는 며칠 후에는 어떤 공연을 보러 가야 할지 핸드폰을 뒤적거리며 일정을 체크하고는 했다.


누군가에게 괴롭힘을 당하지 않고, 고민이나 불안도 없고, 무엇보다 ‘청춘의 일부’라 항변할 수 있던 그때가 내 인생의 유일한 황금기였다. 40대가 된 후, 나는 홍대 공연장 대신 회사 근처 편의점에서 맥주를 사 들고 집으로 향한다. 미래에 대한 고민과 언제 일자리를 잃을지 모른다는 두려움, 더 이상 도망칠 곳이 없다는 막막함이 일상이다.


사진작가와 영상 피디, 그리고 내가 그 차 안에서 과거의 어느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고 느낀 이유는 간단했다. 돌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절박하게 애써도, 책이나 영상을 보며 인생과 이 세계를 공부한다 해도 그 소원은 이루어질 수 없으니까.


그때 나는 머릿속으로 평행우주라는 단어를 떠올렸던 것 같다. 이곳과는 다른 우주의 한 행성에는 나와 동일한 인물이 살고 있지는 않을까. 그곳의 나는 이곳의 나보다 더 나은 사람일까. 만약 그런 존재가 어디선가 살아가고 있다면 말해주고 싶었다. 1년 중 며칠쯤은 서로의 삶을 바꿔 살아도 괜찮지 않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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