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물화가 추상화로 변하는 시간

매일 한 순간

by 초생달

술의 맛을 잘 알지는 못한다. 대학 시절에는 친구 몇과 어울려 곧잘 마셨으나 그건 그냥 혼자 있기 싫어서였다. 맛도 없이 쓴데 건강에도 안 좋은 걸 혼자서 마시고 싶지는 않았다. ‘어른들은 대체 왜 이걸 마시며 스트레스를 푸는 걸까? 오히려 마실수록 스트레스가 쌓이는 것 같은데?’ 그러니 20~30대에 술은 ‘즐기는 게’ 아니라 ‘견디는’ 거였다.


아직도 술의 맛을 잘 아는 편은 아니지만 최근에는 마시는 횟수가 늘었다. 여전히 쓰고 맛도 없지만 작은 잔으로 소주를 한 잔 따라 입안에 털어 넣으면 금세 취기가 오른다. 얼굴과 이마가 붉어진다. 두 눈으로 보이는 세상은 정물화에서 추상화로 변한다. 공간과 물건의 경계가 무르고 흐릿해진다. 소주 두어 잔이면 충분하다. 그러고 나면 하루 동안의 고민이나 복잡한 사정은 옅어지고 대신, 행복했던 기억들이 불쑥 튀어나온다. 두서도 없다. 튀어나온 것들은 태권도장에서 유치원을 다니던 일곱 살 무렵이었다가, 공부 안 해도 즐겁던 초등학교 6학년 수학여행이었다가, 백일장에서 장원을 받았던 고등학교 2학년이었다가, 처음 쓴 시로 교수님의 칭찬을 받았던 대학교 2학년 무렵이었다가 했다. 아주 잠깐 스쳤다가 사라지더라도 마음이 가득 채워지는 기분이다.


그럴 때면 소파에 비스듬히 기대앉아 천장을 본다. 낮에 했던 말들, 써야 할 원고, 내일 할 일 같은 것들이 저 멀리 떠내려간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은 시간이다. 세상 시름을 잊는다. 어니스트 헤밍웨이와 스콧 피츠제럴드, 레이먼드 카버 같은 세계 작가들이 왜 그토록 술을 사랑했는지 깨닫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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