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한 순간
러브 크래프트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데이곤>(스튜어트 고든 연출, 2001년 작품)을 처음 본 소감은 “희한하네”였다. 하지만 그다음 “잘 만든 것 같진 않은데 매혹적이네”라는 감상이 따라왔다. 결말이 기괴하고 일반적이지 않은데 심지어 아름답기까지 했다.
<데이곤>에서 폭풍우의 영향으로 스페인의 포구 마을에 떠내려온 미국인 주인공은 몸에 아가미가 달린 생명체로 진화된 존재들을 만난다. 거기서 매혹적인 여자를 만나게 되는데 그 존재는 상반신은 인간, 하반신은 수중생물의 모양을 띤 그 생명체들의 지배자였다. 그 지배자는 미국인에게 “우리는 결혼해야 한다”라며 매달린다. 물론 그가 그 말을 받아들일 리 없다. 그저 그곳에서 탈출하고 싶을 뿐이다. 이쯤 되면 결국 주인공이 탈출할 거라 예상되지만 결말은 전혀 그렇지 않다. 예상하지 않은 결말이 이어져 입을 다물지 못하고 봤던 기억이 있다.
그때부터 스튜어트 고든이란 감독의 이름을 머릿속에 각인하고 있었다. 그러고 나서 오랜만에 그 이름이 다시 호출됐다. 2007년 영화 <스턱> 덕분이다. 요양병원 간호사로 일하는 브랜디는 늦은 밤 자차로 운전하며 퇴근하던 길에 한 남자를 친다. (사실 그 남자는 방세를 내지 못해 집에서 쫓겨난 직후였다) 남자는 치인 후 튕겨 나가지 않는다. 대신 상반신이 앞유리창을 뚫고 차에 박힌다. 피투성이가 된 남자는 운전자 브랜디에게 구급차를 불러달라고 부탁하지만, 요양병원에서 승진을 앞두고 있던 브랜디는 이 사건이 알려지면 자신의 경력이 끝이라고 생각했다. 결국 브랜디는 차에 박힌 남자를 무시한다. 그대로 두면 결국 피를 흘리다 죽을 거라고 생각한 것. 하지만 남자는 절대 죽지 않는다. 결말을 자세히 밝히지는 않겠지만 이 영화의 스토리는 <데이곤>과는 달리 속시원한 측면이 있다.
<데이곤>이 악처럼 보이는 존재들의 손을 들어주는 반면, <스턱>에서는 결국 죄를 지은 존재가 처절한 대가를 치른다. 나이가 들어 타협한 게 아니냐고 볼 수도 있지만 영화 자체의 흥미나 완성도는 <스턱>이 훨씬 낫다. 기괴함이나 악에 대한 매혹은 사라졌지만, 대신 그 자리를 채우는 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쫀쫀한’ 긴장감이다. 억울하게 차에 치인 남자가 결국 어떻게 될지, 사고를 내고도 개인의 욕심 때문에 묻어두려 했던 여자가 결국 어떤 결말을 맞이하는지 그 과정을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스튜어트 고든도 6년 사이 변했다. 모든 사람이 똑같이 늙지는 않는다. 어떤 사람들은 나이가 들어서도 20대 때의 날카로움을 유지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걸 자신의 훈장처럼 여기기도 한다. 하지만 여전히 칼끝이 날카롭다고 다 좋은 건 아니고, 무뎌졌다고 다 나쁜 것만은 아니다. 자책하면 한없이 땅 밑으로 추락하기 마련이니 다르게 생각하는 것도 괜찮다. 무뎌진 칼끝으로 세상을 더 따뜻하게, 더 깊고 세밀하게 들여다볼 수도 있으니까.
나도 한때는 날카로움을 잃는 게 두려웠다. 하지만 세상 곳곳에 생채기를 낸다고 다 뛰어난 예술가가 되지는 않는다. 그 생채기를 온전히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특히나. 그러니 자신이 더 이상 날카롭지 않다고 자책하거나 열등감을 느끼진 말기로 하자. 세상을 바라보는 데에는 수만 수억 개의 시선이 있고, 그 모든 시선의 끝이 다 똑같지는 않다. 고매하고 위대하신 평론가, 교수, 출판 관계자들이 극찬한다고 다 좋은 책인 건 아니듯, 관심을 받지 못한다고 무시할 만한 책이 되는 것도 아니다. 물론 관심을 못 받으면 마음은 쓰리겠으나 그럴 때는 술이나 커피를 한 잔 마셔볼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