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한 순간
여러 가지 일이 밀려들면 야근을 피할 수 없다. 누군들 ‘칼퇴(정시 퇴근)’를 원하지 않겠느냐만, 그게 마음대로 되는 건 아마 사장밖에 없을 거다. 아닌가? 요즘처럼 어려운 시국에는 사장들도 바쁘려나? 모르겠다. 그렇지만 야근보다 더 큰 문제가 있다.
노래 <가시나무> 노랫말처럼 “내 안에는 내가 너무나” 많다. 그 ‘나’들은 대개 고민과 불안을 껴안고 산다. 아침에 일어나면 그날 하루에 관해 총체적으로 고민하는 것부터 시작이다. 아침식사를 하는 동안에는 ‘지금 먹고 있는 음식물에 몸에 안 좋은 성분이 들었을까 싶어’ 걱정하고, 다 먹을 무렵이면 ‘홈트레이닝을 20~30분은 하고서 출근해야 하는데 괜찮을까 싶어’ 불안해진다. 집 밖을 나서면 내가 원하는 시간대에 지하철을 타지 못할까 봐 걱정하고, 사무실 인근 역에서 내리면 혹시라도 늦을까 봐 조바심을 낸다. 그리고 일할 때, 점심 먹을 때, 퇴근할 때, 잠들 때까지 고민과 불안은 끊이지 않는다.
‘야근하든 어떻든 머리가 복잡하지 않고 맑아진다면 꽤 살 만할 텐데’라는 생각, 매일 한다. 그런데 그런 생각을 하면 할수록 머리가 더 복잡해진다. 떨치려고 할수록 상황이 더 나빠진다. 어떻게 해야 머리가 맑아질까 싶어 술을 매일 마셔봤다. 술을 마실 당시에는 기분이 퍽 좋아진다. 술이 센 편이 아니라 맥주 한두 캔만 마셔도 그런 효과가 금방 나온다. 근데 그건 잠깐일 뿐이어서, 술에서 깨고 나면 더 무거운 짐들이 머리를 짓누른다. 그러니 매일 두통에 시달리는 거다. 내 안에서 수많은 ‘나’들이 서로 악다구니를 쓰며 싸운다.
직장을 다니는 동안 느껴지는 통증은 그나마 낫다. 통증을 사라지게 해줄 해법 같은 건 갖고 있지 않지만 그렇다고 죽고 싶을 만큼은 아니니까. 그냥 그 통증을 안고 살아가는 거다. 세상에 통증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는 근거 없는 말을 품고 사는 거다. 반면 직장을 잃어 구직 활동을 할 때면 그 통증은 몇 배 더 강해진다. ‘아파도 돈을 버는 것’과 ‘아픈데 돈도 못 버는 것’의 틈은 꽤 넓다. ‘아파도 돈을 버는’ 세계에 영원히 닿지 못할 것 같은 불안이 끝도 없이 퍼진다. 그 시기의 혼란스러움은 죽음마저 가볍게 해준다. 극단적인 선택을 해도 어쩌면 괜찮을 것 같아, 순식간에 숨을 끊어내는 방법을 택하면 되잖아?
그때로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다. 그러니 ‘아파도 돈을 버는’ 세계에 머물 수밖에. 어떻든 시간은 흐르고, 나는 조금씩 나아질 것이다. 아니, 실은 나아진다거나 성장하지 않아도 괜찮다. 지금 이대로도 나쁠 것 같지는 않으니까. 불안을 껴안고 사는 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