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한 순간
<Aliens>는 일본의 형제 듀오 키린지가 2000년에 발표한 노래다. 1~2년 전 처음 들었을 때 이 곡에 담긴 변두리 정서가 내 마음을 흔들었다. 비행기가 공공임대주택 위를 날아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화자는 부유함과는 거리가 먼 변두리의 우울한 청년으로 보인다. 그는 세상에 잘 섞이지 못한 사람이다. 자신을, 그리고 연인을 ‘외계인’이라 여기는 그는 “금단의 열매를 뺨에 가득” 문 채 남들 눈에 띄지 않는 새하얀 밤에 숨어든다. 그러고는 사람들이 잘 찾아보지 않는 “낡은 SF 영화”를 연인과 나누어 보며 그들만의 낙원을 만들어간다.
‘밤을 사랑하는 아웃사이더들의 찬가’라 불릴 만한 이 곡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단번에 내가 이 곡과 사랑에 빠질 것임을 알았다. 마음 가장 깊숙한 서랍에 넣어두었다. 제일 눈에 잘 띄고, 제일 좋은 명당 자리에.
고된 업무를 마친 퇴근길, 사람이나 세상에 상처받아 모든 걸 끝내고 싶다거나, 쥐구멍에 숨어들고 싶다고 느낄 때면 으레 이 노래를 꺼냈다. 나 때문에 햇볕 구경도 못 한 그 노래는 그렇게 세상에 나올 때마다 가로등 불빛처럼 은은하고 아늑한 빛을 내게 보여주고는 했다. 마치 “너의 마음을 나만은 알고 있어”라고 말해주는 듯했다. ‘내가 알고 있어’가 아니라 ‘나만이’라고 말해주는 느낌이 좋아서, 나는 더 깊이 이 곡에 기대었다.
이 노래를 듣고 있는 순간만큼은 우주선을 기다리는 외계인이 된 것 같았다. 그러고 있으면 유유하게 흘러가는 밤도 시간도 나의 동지처럼 느껴졌다.
한동안 이 노래를 오랫동안 파고들다 모처럼 다른 의미에서 괜찮은 노래를 발견했다. 키린지의 동생 멤버 ‘야스유키 호리고메’가 솔로로 나와 발표한 두 번째 앨범 수록곡 <What a Beautiful night>는 설 연휴 기간에 우연히 만났다. 2018년에 발표된 이 곡은 <Aliens>처럼 한밤의 정서를 노래하지만, 배경도 분위기도 노랫말도 다르다. 기타 연주로 시작해 잔잔하고 적막했던 <Aliens>와 달리 이 곡은 미디움 템포의 세련된 팝 멜로디를 갖추고 있다.
가장 처음 다르게 느껴진 건 배경이다. 도시 외곽의 오래된 주택 단지가 연상되는 <Aliens>의 배경과 달리 <What a Beautiful night>의 배경은 도시의 한가운데로 보인다. 자동차 헤드라이트와 빌딩 불빛이 강물처럼 흐르는 곳 말이다. 똑같이 밤을 노래하지만 정서는 다르다. <Aliens>의 공간이 단절되고 소외된 화자를 은폐시키는 피난처 같았다면, <What a Beautiful night>의 공간은 상처받아 다친 영혼을 따뜻한 불빛과 온기로 어루만져준다. 두 곡의 노랫말을 나란히 놓으면, 같은 ‘밤’을 노래하면서도 시선이 향하는 방향이 정반대임을 알 수 있다.
“아득한 하늘의 보잉(비행기), 소리도 없이
공영 주택 지붕 위에 멈춰 섰어
희미한 불빛이 감도는 공동묘지
아니면 교외의 우회도로
우리는 외계인
금단의 열매를 뺨 가득 베어 물고는
달의 뒷면을 꿈꾸며”
-<Aliens> 중에서
“창문 틈으로 불어온 바람에
그대의 머리카락이 뺨 위에서 춤출 때
이 세상은 아름다웠어
지금, 문득 깨달은 거야
황혼 무렵, 깊은 사랑스러움을 알았지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이토록 아름다운 밤
달 그림자도, 뻔하게 익숙한 빌딩도 빛나고 있어
길을 잃고 헤매던 뒷골목조차도, Oh girl
그토록 아름다운 미소
그대도 모르는 그대의 웃음, 꾸미지 않은 마법
참 아름다운 밤이야”
-<What a Beautiful night> 중에서
2000년 발표한 노래에서 자신을 외계인이라 여기며 달의 뒷면을 꿈꾸던 화자는 2018년이 되면 어느덧 현재를 즐길 줄 아는 인물로 바뀌어 있다. 그사이에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걸까. <What a Beautiful night> 노랫말을 보면 딱히 그런 것 같지는 않다. 화자는 여전히 고민과 불안함을 품고 있는 존재일 뿐이다. 세상을 바꿀 수 없는 평범한 존재인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그대로다. 다만 미약한 인간이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면 ‘현재’를 즐기자고 결심한 거다. 그러니 “자신의 머리카락이 뺨 위에 춤춘”다고 느끼고, 그럴 때 “이 세상은 아름”답다고 느낀다. “달 그림자도, 뻔하게 익숙한 빌딩도 빛나고” 있음을 깨닫는다.
이 거대한 세상을 바꿀 수 없다면 나의 일상 곳곳을 더 유심히 관찰해보는 거다. 내가 매일 지나는 출근길의 횡단보도, 퇴근길의 가로등, 나 빼고는 아무도 없는 것 같은 내 집에서 이미 오래전부터 살아 숨 쉬고 있던 사물들의 반가운 속삭임까지. 그들이 내 귓가에 대고 건네는 온갖 이야기들을 듣는다. 그걸 차곡차곡 쌓아두었다가 언젠가 꼭 글로 써 내리라고 다짐해본다. 20대 때만 해도 자신을 외계인이라 여기며 누구와도 어울리지 못하고 겉돌던 나는, 이제 조금은 여유로워졌다. 며칠 전 퇴근길, 아파트 단지 가로등 아래를 지나는데 불빛이 발끝에 길게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걸음을 멈추고 그 그림자를 내려다보았다. 참 아름다운 밤이야, 라고 작게 중얼거렸다. 그 한마디가 입 밖으로 나오는 데 이십 년쯤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