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첼섬 감독이 연출하고 리처드 기어와 제니퍼 로페즈가 출연한 2004년 영화 <쉘 위 댄스>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동명의 1996년 일본 영화를 거의 그대로 가져온 리메이크 작품이다. 반복되는 일상에 무료함을 느끼던 사내가 우연히 한 여인의 모습에 이끌려 춤의 세계에 빠지면서 삶의 큰 활력을 얻게 된다는 이야기. 일본 원작이든 리메이크 작품이든 좋아했던 이유는 별다른 게 아니다. 뭔가 배우고 훈련하며, 아주 조금이라도 만족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새로운 무언가를 배우는 데 겁이 났다. 새로운 걸 터득하려면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까, 배워서 즐길 수 있는 데까지 얼마나 오래 걸릴까, 그렇게 배워서 대체 내가 무얼 얻을 수 있을까, 정작 다른 데 시간을 뺏기는 건 아닐까. 생각이 많은 나는 그렇게 고민만 반복하다가 도돌이표처럼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러고는 “괜찮다”는 말로 스스로를 위로하면 끝나는 일이었다. 그렇다 보니 영화에 등장하는 ‘훈련 내지는 배움’의 과정은 내게 큰 위안이 됐다. 내 손에 닿지 않는 푸른 하늘의 촉감을 대신 만져주고 전달받는 느낌이랄까. 군대를 끔찍이 싫어하는 내가 이따금 군대 소재 영화들을 보는 이유도 그와 다르지 않을 거다. 군대는 훈련 과정을 통해 성장하고 깨닫고 배우는 모습이 등장하기에 적절한 장소이니까.
하지만 그런 대리 만족은 때때로 씁쓸함과 쓸쓸함을 안겨주기도 했다. 결국 훈련하고 배우는 것은 내가 아니었으니.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이제 ‘성장’이라는 키워드를 더 이상 신뢰하지 않는다. 성장이 내게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고, 또 그게 정말 가능한 것인지도 알 수 없었다. 길은 험난한 정도가 아니라 아예 잘 보이지조차 않았다. 낫으로 풀을 베고 또 베어내도 앞길은 좀처럼 안 보였다. 시간이 갈수록 난 더 어린아이가 되는 듯했고, 갈수록 더 겁을 먹었다.
내가 <쉘 위 댄스>에서 가장 인상적으로 본 장면은 춤 장면이 아니다. 잭(리처드 기어)이 우연히 들어간 ‘미치 댄스 학원’의 학원장 미치가 등장하는 장면이다. 폴리나(제니퍼 로페즈)가 주로 고급반을 가르친다면 나이가 지긋한 미치 원장은 신입 회원 및 초급자를 맡고 있다. 미치는 신입 회원을 가르치기 전 자신의 라커를 열더니 대뜸 은색 술병을 꺼내 한 모금 마신다. 인생의 고단함을 다 알고 있다는 듯, 당신도 그렇지 않느냐는 듯한 표정을 짓고서. 그 장면에 매료돼 몇 번이나 되돌려 보았다. 처음에는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주인공도 아니고 스토리텔링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인물도 아닌데 굳이 그토록 체념한 표정으로 술을 마시는 장면을 대체 왜 넣었을까.
술을 마시면 약간 마음이 들뜬다. 애매모호하게 마시면 기분이 더 처지지만 적정선을 넘기면 술은 멱살을 잡고 나를 끌어올린다. 괴로웠던 과거의 일, 불안한 현재, 미래에 대한 두려움. 그 모든 감정이 꼬리를 내리고 숨죽인 채 머문다.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지만, 분명 내 주변을 맴돌고 있겠지만, 더 이상 내 신경을 거스르는 행동은 하지 않는다. 미치 원장은 작품에서 사랑했던 연인이자 남편이자 댄스 파트너였던 사람을 잃고 살아가는 인물이다. “그는 두 번 다시 없을 최고의 파트너였어요.” 그 말은 다시 하면 다시는 그런 사람이 오지 않을 거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내 인생에 이제 더 이상 장밋빛은 쏟아져 내리지 않을 거라는 추측. 불행한 추측은 대개 잘 들어맞는다. 아마 미치에게는 남편 같은 파트너가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 나이 많은 댄스학원 원장, 몸이 예전 같지 않아 초급반을 가르칠 수밖에 없는 사람의 인생 앞에 놓인 인생이 새로우면 얼마나 새롭겠는가. 그날이 그날 같겠고, 내일도 그날과 크게 다르지 않겠지. 인생에서 ‘모험’이라는 두 글자가 완전히 삭제된 사람.
주인공 잭에게는 춤이 새로운 모험이 됐고, 폴리나에게는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기회가 됐다. 하지만 미치에게는 어땠을까. 생각해보면 미치는 그다음 날도 일어나 학원 문을 열었겠지. 그리고 다른 날과 다름없이 신입 회원을 늘리기 위해 골몰하겠지. 모험이 사라진 인생의 자리를 채워주는 것이 바로 ‘술’이다. 술은 늘어져 있는 몸을 되살린다. 술을 마시면 머릿속으로 수없이 많은 바다와 정글, 무인도를 탐험하는 나를 발견할 수 있다.
그러니, 누군가에게 술은 매일의 모험이다. 물론 술이 흘러넘친다면, 제자리로 돌아오지 못할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하지만. 미치도 아마 춤을 추며 머릿속으로 모험을 즐겼던 것 같다. 내가 그렇듯이 미치의 머릿속엔 그가 사랑했던 사람과 함께 춤추고 거닐었던 풍경이 함께하는지 모른다. 인생의 어느 시점이 되면 사람은 추억을 먹고산다. 누군가는 과거에만 매몰된 사람을 나무라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그게 유일한 존재 이유일 수 있다. 미치의 머릿속 모험을 말리고 싶지도, 비난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건 매몰이 아니라 깊은 탐구에 가깝다. 지나간 나에게,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우리를 더 깊게 사유하는 것이니까. 지나간 것에서 배우라는 온고지신이라는 말도 있지 않던가. 다시 제자리로 되돌아올 수 있다면, 그건 꽤 괜찮은 모험이 되지 않을까. 미치에게도, 나에게도, 어쩌면 당신에게도. 단, 다시 돌아오라. 비루하고 남루한 이 현실의 자리에도 아직은 풀이 자라나고 있으니. 당신의 모험이 언젠가는 당신의 자리를 따뜻하게 데워줄 것이다. 온기가 생긴 자리에는 언제고 다시 꽃이 피고 생명들이 살아 숨 쉴 수 있다. 그때를 담담한 심정으로 기다려볼 것. 이러한 인생의 과제를 골몰하는 동안 난 또다시 술 한잔과 함께 머나먼 곳으로 모험을 떠난다. 언젠가 올 당신을 기다리며, 다시는 오지 않더라도 내 자리를 따뜻하게 데워줄 당신을 기억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