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면접을 보러 다니면, 면접관은 ‘멀티 업무’가 가능한지 묻고는 했다. 쉽게 말해 너에게 이런저런 업무를 동시다발로 시킬 텐데 넌 그걸 뭐 하나 빠질 것 없이 다 잘해야 한다, 여기는 직장이고 본래 직장은 그런 곳이다, 네가 그걸 할 수 있겠냐는 식. 멀티 업무는 직장인들이 피할 수 없는 과제다. 이 책 진행하면서 저 책도 진행해야 하고, 다른 책 기획을 해야 하며, 다른 이의 업무도 지원해야 한다. 일을 여러 가지 맡는다고 월급 액수가 달라지지는 않았다. 애당초 입사 당시 회사 임원들은 그런 업무 진행이 가능한 인력을 뽑으니까. 그러니 에디터에게 책은 빨리 쳐내야 할 업무로 인식되기도 한다. 책에 대한 진정성이라거나, 글자에 대한 애정 따위는 들어갈 자리가 없다. 그저 소모품이다.
어떤 이들은 에디터가 전문직이며 주인의식을 가져야 하고 더 열정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그게 소원이라면 대다수 기업의 업무 환경이 더 개선돼야 한다. 적은 연봉과 발전 없는 환경이라는 기반 위에 간신히 서 있는 사람들은 그저 생존이 목적일 뿐이다. 더 열심히 일할수록 더 뛰어난 소모품이 된다. 직장인들은 기름칠하고 깎고 조여서 회사라는 거대한 기계 안에 자신을 억지로 밀어 넣는다.
자기계발서, 혹은 소위 성공했다고 부르짖는 업무 분야 선배들은 저마다 횃불을 높이 들고 선언한다. 자, 불평과 불만은 이제 그만 하세요. 패배자가 되고 싶지 않다면 이 시스템을 이해하고 적응해야 합니다. 더 닦고 기름칠해서 본인의 가치를 높이고 더 많은 연봉을 받으세요. 그게 곧 당신의 성공이 됩니다. 의문을 갖거나 반항하는 사람들은 패배자일 뿐이다. 일도 잘하지 못하는 애들이 꼭 저러더라고. 여태껏 내가 에디터 분야에서 꽤 오래 버티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패배자가 되지 않으려고 애썼다는 뜻이다. 그만큼 나를 다듬어왔다는 뜻.
복잡한 멀티 업무를 끝내고 집에 돌아오면 어떤 글자들도 보고 싶지 않았다. 글자에 질렸다는 표현이 딱 맞는 것 같다. 생각해보면 ‘경력’이라는 건 별 게 아니다. 그만큼 이 거대한 기계에 대한 적응력을 높였다는 증거일 뿐이지. 기업들이 경력직을 선호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다른 생각이나 길로 고민하는 직원 때문에 시간을 낭비할 틈이 없다. 경력직은 대개 기업의 입장과 목표, 그리고 직원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있다.
나도 어느새 그런 ‘경력직’ 중 한 명이 된 듯하다. 이게 맞는 것인지, 틀린 것인지는 모른다. 사실 맞고 틀리고는 중요하지 않다. 내가 잘 버티고 있고, 여하튼 생존하고 있다는 것이 핵심이니까. 무작정 걷다 보면 원래의 나와는 더 멀어질지도 모르지만, 대신 얻게 되는 소득도 있다. 걷지 않았을 때는 볼 수 없던 새로운 풍경과 만날 수 있다. 지겨운 업무 중 만난 반가운 사람들, 그들의 이야기, 그리고 그들과 함께한 시간과 공간에서 때때로 나는 ‘무언가’를 배운다. 잊고 싶지 않아서 스마트폰 메모장에 적어두었다가 나중에 다른 글을 쓸 때 활용하기도 한다.
언젠가는 다른 길을 걷겠다는 희망, 그리고 그때가 되면 지금보다 조금은 더 자유로운 사람, 행복한 사람이 되겠다는 열망. 이룰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는 그 열망 때문에 나는 오늘도 늦은 밤이면 잠들고, 내일이면 일어나 출근을 준비할 거다. 윤기가 흐르는 부품이 되기 위해, 쉽고 빠르게 마모되지 않는 소모품이 되기 위해. 스트레스를 받으면 가끔 인생 한탄도 할 테지만, 때때로 업무에 대한 회의나 패배감에 빠질 때도 있겠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최악은 아니다. 원하는 대로만 살 수는 없었지만, 그렇게 들어선 길이 나를 망가뜨리거나 무너뜨리지는 않았다. 해피엔딩이 좋은 소설의 기준이 될 수는 없듯 원하는 대로만 이루어진 삶이 좋은 인생의 기준이 될 수는 없다. 바람을 맞고, 폭우에 휘청거리고, 때로는 폭설에 주저앉을 때도 있지만 그래도 난 아직 사라지지도 무너지지도 않았다. 그거면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