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나는 쓰고 싶다거나 표현하고 싶은 대상이 많지 않다. 왜 그런지 가만 생각해보니 답은 간단했다. 좋아하는 게 점점 줄어들고 있다. 싫은 사람, 생각, 시간 공간들은 점점 늘어가는 데 반해 좋아하는 건 갈수록 찾기 힘들다. 남녀불문 인기 있고 잘나가는 배우가 나오는 영화, 드라마, 예능은 이제 보지 않는다. 외모보단 다른 면을 장점으로 둔 배우들의 작품만 챙겨 본다. 키가 너무 커도 싫고 근육량이 많아도 싫다. 너무 똑똑해도 싫고 돈을 잘 벌어도 싫다. 잘생겼거나 예쁜 연인이 있는 사람들의 작품도 마찬가지. 그러니까 볼 수 있는 작품이 극도로 줄어들었다. 유명 배우들을 내세우지 않는 작품만 골라서 봤다. 독립영화나 다큐멘터리를 특히 좋아했다. 한 번만이 아니라 여러 번 반복해서 봤다.
남은 건 악밖에 없는 거지. 난 나 자신을 그렇게 판단했다. 자존감은 낮고 자존심은 세니까 그런 거야. 차별 없이 모든 사람에게 까칠하고 냉소적인 사람, 아니, 상대방이 루저라거나 만만하게 느껴질 때만 친절하고 상냥하게 군다. 그렇지 않은 대부분의 사람과는 사적으로 어떤 이야기도 하지 않고 어떤 교감도 하지 않는다. 여자에게든, 남자에게든 마찬가지다. 무척 예쁘고 내게 친절한 여자라 하더라도 잘났다고 생각되면 말 ‘한 마디’도 섞지 않았다. 국어사전에 등재된 ‘한마디’가 아니다. 정말 ‘한(1)’ 마디도 섞지 않았다.
그러니 인간관계가 갈수록 좁아지고 소외될 수밖에 없지. 나이를 먹으니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의 연락도 뜸하다. 매달 보던 친구는 이제 1년에 서너 번 보는 것도 힘든 상황이다. 주말이라고 해도 약속 따위는 없으니 본가에 가서 부모님과 시간을 보내는 게 전부다. 집에서 혼자 있을 때면 가끔 영화나 드라마 속 인물들과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외로웠구나. 그래서 귀신이 돼 다른 사람들을 괴롭힌 거야? 네 어머니는 널 미워하지 않아. 분명 널 이해해주실 거야. 넌 널 사랑해야 해. 네가 아니면 누구도 널 사랑하지 않을 거니까.
밖을 나가는 것도 좋지만 코로나19 이후로는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었다. 카페 투어를 안 한 지도 오래됐고 영화관을 찾는 일도 없다. 집에서 혼자서 영화를 보고 커피를 만들어 마시고 불안한 내 미래를 걱정하고 고민한다. 결국 이렇게 살다가 죽겠구나. 잘난 자존심 때문에 제대로 부딪히지도 못하고. 소셜 모임에 가고 싶지만 내 나이 사내를 받아줄 모임은 없다. 하긴, 단체 생활을 잘하는 편도 아니지.
내가 내 상황을 인식하고 문제를 알고 있다 하더라도 딱히 해결책이 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남은 건 오로지 버티는 일뿐이다. 난 바뀌지도 않을 거고 더 나아지지도 않겠지. 괴물의 시간이 남아 있다. 그러니까, 나는 어린 시절 내가 혐오했던 ‘괴물’이 되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