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라 노래 중 <track 9> 노랫말은 이렇게 시작한다.
나는 알지도 못한 채 태어나 날 만났고
내가 짓지도 않은 이 이름으로 불렸네
걷고 말하고 배우고 난 후로 난 좀 변했고
나대로 가고 멈추고 풀었네
그 누구든 본인의 의사가 아닌 타의로 태어난다. 누군가 지어준 이름으로 불리고, 밥도 누군가 떠먹여주고, 걷는 법도 부모에게 배운다. 가족과 주변 도움을 받아 끊임없이 훈련해야 아가는 아이가 되고 청소년이 되고 청년이 되고 중년이 되고 노년이 된다. 그러니까 애당초 세상은 나 혼자 살 수 없다는 거다. 타의로 태어난 사람은 배우고 자랄수록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애쓴다. 그리고 비로소 세상이 어떤 것이라고, 사람 사는 일이 어떤 것이라 짐작할 즈음 죽음은 사람에게 한결 더 가까이 다가온다. 그러니까 사람은 평생 질문하고 고민하고 되뇌인다.
초등학생 때부터 죽음을 두려워했던 나는 인간의 한계를 절감한 후 지레 겁 먹은 채로 살았다. 스스로 한계를 긋기 일쑤였고, 낯선 길로 들어서는 데도 한참을 고민해야 했다. 좀 더 나이를 먹고 나면 난 무엇을 후회하고 무엇을 만족할까. 후회하고 나면 무언가 깨달을 수 있을까. 깨달으면 내 죽음은 의미 있는 죽음이 될까. 그런데 대체 의미 있는 죽음과 의미 없는 죽음이란 존재하는 것일까. 이런 고민들로 밤을 지새는 날이 많았다.
사는 일은 즐겁거나 행복한 것보다 한없이 고된 경우가 더 많았다. 내 의도와는 상관없이 태어난 것도 억울한데 사는 것마저 내 의도대로 살기란 힘들었다. 누군가에게 끊임없이 머리를 조아리고 실수하고 후회했다. 그러면서 배우고 깨닫고 터득해갔다. 다들 그렇게 산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는 날이 많았다. 하루는 술 한잔으로 마음을 달래고, 어떤 하루는 깊은 잠에 빠져 잠깐의 일탈을 꿈꾸었다. 그래도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지만 나만 힘든 게 아니라는 건 알게 모르게 힘이 됐다. 나 혼자 사는 게 아니니까. 아주 어린 시절 타인이 날 도와주었듯, 어른이 돼서도 난 주변 도움을 받아 간신히 위기를 극복하며 내 일상과 마주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혼자가 아니라고 생각했다면 어땠을까. 빚이 얼마든, 현실이 어떻든, 나만 힘든 게 아니고, 나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라면, 주변과 충분히 소통해서 이야기 나누고 대책을 찾을 수 있지 않았을까. 실수는 끝이 아니지만 누군가에게는 끝이 됐다. 열 살에 불과했던 소녀도 마찬가지. "알지도 못한 채 태어나" 자신과 만났고, "자신이 짓지도 않은 이름으로" 불렸던 그 소녀는 이제 다시 '나'를 몰랐던 그때로 돌아갔다. 폐암으로 이 세상과 작별했던 할아버지, 대장암 및 합병증으로 고생했던 할매, 대학 동기 혜주, 글 쓰는 후배였던 정은,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신해철, 그리고 신해철의 단짝이었던 병아리 얄리가 머무는 곳으로. 그곳에서 사람들은 이곳의 '나'를 잊은 채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까. 이곳 이름은 의미가 없을까. 그곳에서는 어떻게 걷고 말하고 배우고 자랄까. 네가 도착한 그곳에서는 네가 원하는 모습으로 걷고, 네가 원하는 이름으로 불린다면 좋겠다. 조금은 우스꽝스러운 이름도 괜찮아. 그것도 나름 매력이 될 수 있잖아.
밤하늘 어딘가에서 끊임없이 별이 태어나고 소멸하듯, 사람들은 끊임없이 태어났다가 사라진다. 너는 지금 우리가 육안으로는 확인할 수 없는 어딘가에 빛나는 별이 돼 살아갈 거다. 명멸하되 끝내 스러지지 않는 빛으로 오랫동안 그곳에 머물 거다. 언젠가 내가 그곳에 도착하면 널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지. 그때가 되면 반갑게 인사 나누자. 귓속말로 네 새로운 이름을 알려줘. 네가 짓고 싶었던 그 이름을 소리 내어 불러볼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