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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단한 삶

by Jacquesenid

장마 초입, 긴 우산과 도시락 가방을 들고 출근한다. 지하철 안은 유난히 북적거리고 작은 움직임 하나에도 사람들 표정과 행동이 날카롭다. 청담역에 도착해 내리려고 했고 난 "잠시만요"를 외쳤지만 어느 누구 하나 비키지 않았다. 나는 그들을 밀쳐내고 전동차 밖으로 빠져나왔다. 상대방도 나도 마음이 불편한 목요일 아침. 마침 전동차에서 읽고 있던 최문자 교수님 산문집에 이런 구절이 있다.



불편은 우리에게 무엇일까? 불편했던 몇 개의 순간 때문에 나는 나도 모르게 불편에 대해 많이 쓴다. 20층 건물 맨 아래 깔린 듯 시멘트 틈에 끼어서 자라는 민들레의 불편함에도 나는 무심할 수 없다. 자세히 보면서 지나다닌다. '키 작은 여린 풀도 밤새 20층이 불편해야 아침에 꽃을 피울 수 있나?' 자세히 보면 불편엔 고단한 삶이 잘 안 보이는 손잡이처럼 나와 있다. 누군가가 그 손잡이를 조금씩 틀어주면 문이 열릴 텐데. 민들레는 오늘 아침 한껏 노란 꽃으로 웃고 있었다.

-14쪽, <사랑은 왜 밖에 서 있을까>(2022, 난다)



한 번 다 읽고 책장에 처박아두었다가 다시 꺼내 든 책에서 발견한 건 '잘 안 보이는 손잡이처럼 삐쭉 튀어나온 고단한 삶'이다. 전동차 안에는 저마다의 고단한 삶이 부유하고 있지. 인생은 원래 고통이라는 격언으로도 위로가 되지 않는 마음은 이 책을 읽고 나서야 비로소 안정을 되찾는다. 난 당신을 모르고, 당신도 나를 모르지만, 우린 모두 고단한 삶을 살아가며 부유하는 종족이라는 것. 위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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