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한 고독

by 초생달

‘세상에 홀로 떨어져 있는 듯이 매우 외롭고 쓸쓸함’

표준국어대사전에 적힌 고독의 정의다. 생각해보면 고독은 내 친구였다. 중학생 무렵부터 나는 집에 혼자 있는 날이 많았다. 한 살 터울 여동생은 항상 어딘가 놀러 다녔고 부모님은 공장 일로 항상 늦게 들어오셨다. 나는 학교 수업이 끝나면 집으로 기어들어 와 오래돼 주파수 이름이 지워진 검정 고물 라디오를 껴안고 살았다. 낮에 방송했던 홍서범과 김기덕의 방송부터 배철수, 고소영, 윤상, 정은임, 전영혁에 이르는 많은 디제이가 내 친구가 돼주었다. 하지만 그들의 몸을 만질 수는 없었으므로 나는 항상 머릿속으로 상상하고 또 떠올릴 뿐이었다.


라디오는 곧 내 세상이었다. 그 안에서 노래와 영화를 비롯한 문화예술은 물론이거니와 컴퓨터의 기초와 시사 상식, 그리고 인생을 배웠다. 물론 라디오 속 인물들이 단 한 번도 내 꿈에 나타나 주지는 않았지만. 늦은 밤이면 방 안에서 누워 라디오를 껴안은 채 밤하늘에 걸린 달과 별빛들을 바라보았다. 그걸 보면서 나는 ‘인생이란 참 고독한 것이구나’ 생각했다. 내게 ‘함께’나 ‘더불어’ 같은 단어는 밤하늘 달이나 별빛처럼 멀게 느껴졌다.


중학교 때 일부분을 나는 자살 충동에 헌납했다. 몇 명의 아이들이 집중적으로 괴롭혔고 담임 선생은 그걸 방관했으며 부모님은 그저 형식적인 몇 마디뿐이었다. 누군가 옆에 있다고 행복한 건 아니었다. 학교 친구와 가족에 둘러싸여 있어도 나는 여전히 고독했다. 삶은 내게 친절하지 않았다. 이 악물고 몇백 번의 자살 충동을 견디며 간신히 앞을 내딛어야만 나는 다음 단계로 진입할 수 있었다. ‘인생에는 참 쉬운 것이 없구나’ 생각했다.


고등학생 무렵 나는 집단 따돌림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나를 둘러싼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서울대학교사범대학부속(지금은 ‘부설’로 변경)중학교에서 서울대학교사범대학부속고등학교로 이동했는데, 중학교 때 만났던 아이들 대부분을 고등학교에서도 만났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여전히 나는 외따로 놓인 휴지 조각 같은 존재였다. 누가 후, 불기만 해도 쉽게 날아가 버렸고, 원래 자리를 찾지 못해 한참을 헤맸다. 그럭저럭 친하게 지내는 반 친구, 말 상대는 몇 있었으나 그 누구와도 속 깊은 대화를 나누지는 못했다. 그때 나는 ‘문학’을 만났다. 특히 한국 문학에 빠져 지냈다. 이청준, 오정희, 조경란, 하성란, 김소진, 기형도, 이문재, 황지우. 특히 사회와 가족 안에서 불안정하게 부유하는 인물을 그려내는 조경란의 소설이 마냥 좋았다. 나는 그녀의 팬카페를 만들었고 작가까지 직접 초대했다. 이는 대학교 때까지 이어졌다. 소설의 이야기들 안에서 나는 비로소 마음껏 숨 쉴 수 있었다.


영화도 좋아했지만 실제 직업으로 삼는다는 건 두려운 일이었다. 영화는 단체 작업이 필수였으므로. 난 여럿과 어울려 뭔가를 만들어낼 자신이 없었다. 게다가 자본도 필요했다. 반면 글을 쓰는 일은 나 혼자서 충분했다. 돈도 많이 들지 않았다. 대학생 때도 역시 사람과 어울리지 못했던 나는 도서관에서 거의 살다시피 했다. 컴퓨터로 기형도를 검색해 기형도를 언급한 비평과 관련 책을 모두 살펴볼 때도 있었다. 그 안에서 살다가 그냥 그렇게 죽어버려도 좋을 것 같았다. 그 과정에서 문학의 뜻을 나누는 친구와 선배를 만났다. 그들과 여행을 다니기도 했고, 밤새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때도 있었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함께한다는 건 퍽이나 괜찮은 일’일 수 있음을 깨달았다. 하지만 그건 내게 더 큰 절망을 안겨주었다. 누군가와 함께하는 걸 배우면서 나는 고독을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다시는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대학교 2학년을 마치고 입대한 군에서 나는 나를 세뇌시켰다. 그래야 살 수 있었다. 수도 없이 얻어맞고 기합받으며 내 신체와 마음은 자연스레 군의 일부분이 됐다. 여자를 ‘먹고’ 싶다는 형편없는 생각들을 그곳에서 배웠다. 내가 지내던 내무반 동기, 선후배에게 여자들은 정복의 대상일 뿐이었으니까. 상병이 되고 나서는 나 또한 선임이 그랬던 것처럼 후임을 벌줬다. 때리지는 않았으나 권력의 맛은 충분히 즐겼다. 달콤했다. 가해자가 되는 건 쉽고 간편했다. ‘이런 인생이라면 나는 평생 생각하지 않고도 살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군에서 제대하기 전 말년 휴가를 다녀오면서 나는 그게 얼마나 허망한 생각인지 깨달았다. 학점과 취업, 앞으로의 생이 피부 가까이에서 느껴졌다. 군대에서 배운 것을 온전히 씻어내는 데 몇 달의 시간이 걸렸다. 그 결과 나는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물론 다시 고독한 존재가 된 건 필연이었다.


나는 언제나 혼자였으므로 단체 생활에 쉽게 적응하지 못했다. 이십 대에는 몇 개월 다니다 그만두고 나오는 일을 반복했다. 직장에 오래 눌러앉기 시작한 건 삼십 대부터다. 내 고독은 그동안 차곡차곡 쌓였다. 이제는 너무 견고해 누구도 깨뜨리거나 흠집을 내기 어려웠다. 예전처럼 고독을 즐기긴 어려웠다. 함께하는 행복을 몇 번 경험한 이후 나는 더 이상 예전과 같을 수 없었다. 혼자 살기 시작하면서 ‘공황’ 비슷한 증세가 나타났다. 그럴 때면 밤하늘 아래를 마냥 걸었다. 찬 밤공기를 마시며 어둠 속을 걷고 있으면 기분이 좀 나아졌다. 그 아득한 어둠에서 나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였으므로, 비로소 자유로웠다.


리사는 2년 전 겨울 인스타그램을 통해 알게 됐다.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일본 여자였다. 꽃 사진과 자연 풍경 사진을 여러 장 올렸고 우리는 다이렉트 메시지를 통해 대화를 나누다가 라인 메신저로 옮겨 대화를 나눴다. 하필 코로나19 시절 대화를 시작한 우리는 서로가 있는 곳으로 갈 수 없었다. 나처럼 고독을 알고 있는 여자였다. 우리는 고독에 익숙했기에 부담을 주지 않은 채 서로의 일상을 공유했다. 각자의 업무와 고민, 꿈, 방황. 부담 없이 나누던 대화들은 어느새 진득한 마음으로 변하고 있었다. ‘고독과 고독이 만나면 어떻게 될까’ 생각했다.


나의 고독을 온전히 공유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리사였다. 리사 역시 내게 자신의 고독을 온전히 내주었다. 우린 서로의 몸을 지배하는 고독의 실체와 만났다. 우리는 서로를 바꾸거나 힐난할 생각이 없으니까, 그저 있는 그대로의 상대를 바라보면 되니까. 서로의 고독이 어떻게 자라고 병을 앓고 다시 꿈틀거리는지 확인하는 것도 꽤 재미있는 일이 아닐까. 연애하거나 결혼한다고 상대방의 고독을 온전히 지울 수는 없으니까. 지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오만이다. 우리는 서로의 고독을 털끝 하나 건드리지 못한다.

다만 서로의 고독을 바라봐 주고 지켜줄 수는 있겠지. 어차피 우리는 불완전한 존재들이니까. 서로의 텅 비어 있는 부분, 공허한 마음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지 않을까. 이 상태를 이름 붙여야 한다면 나는 ‘완전한 고독’이라 부르고 싶다. ‘세상에 홀로 떨어져 있는 듯이 매우 외롭고 쓸쓸하’다가도, 기어코 누군가가 나를 걱정해주고 지켜봐 준다고 느끼는 상태. 내 고독을 완전히 무너뜨릴 수는 없지만, 마음 한편을 뜨겁게 만들어주는 사람이 이 세상 어딘가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 편히 숨 쉴 수 있는 날들이 있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알고 보면 따뜻한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