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부터 16일까지 ‘뒤늦은’ 여름휴가 기간이다. 하지만 맡은 업무를 다 넘길 수 없어서 몇 가지는 집에서 진행했다. 그러니 여행은 꿈도 꿀 수 없다. 휴가 중 하루쯤은 할머니, 할아버지가 묻힌 충북 괴산에 가고 싶지만 시간을 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예측 불가능하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없으니. 나라고 맘껏 놀고 싶지 않겠어? 남들 여름휴가 즐길 때도 사무실에 파묻혀 일했다. 예정대로라면 일본에 있는 리사를 한국에서 만나야 했다. 하지만 사정이 생겼고 결국 무기한 연기됐다. 결국 여름휴가는 취소할 수 없었지만, 때마침 일이 쏟아진다. 남들 놀 때도 일하고, 내가 놀아야 할 때도 집에서 일하는 신세라니. 괴롭지만 어쩔 수 없다. 그러려니 해야지.
여행을 많이 다닌 건 아니다. 제주도를 여러 번 갔고, 강원도(정선, 강릉, 정동진 등)나 남해안 지역(내소사, 곰소항, 채석강 등)을 다닌 적 있다. 대전, 대구, 부산 등 도시 지역도 다녀봤다. 서울 인근 제부도, 강화도 같은 섬에 다녀온 기억도 떠오른다. 해외에는 가본 적 없다. 가봐서 좋았던 곳도 있고, 가보지 못해 아쉬운 곳도 있다. 하지만 여행을 ‘꼭’ 가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여행이 아니더라도 나는 충분히 위로받고, 구원받을 수 있는데.
이름 여름휴가의 콘셉트는 ‘걱정과 불안 없이 살기’다. 두 가지를 달고 사는 나는 때때로 수면제를 찾았고, 친구에게 하소연하기도 했다. 답을 찾지는 못했다. 걱정과 불안은 떼어낼 수 없는 상처처럼 내 살갗을 뚫고 들어가 몸속 깊은 곳에 박혀 있다. 담배를 끊은 요즘은 금연 껌 없이 살 수 없다. 입안에 그게 자리 잡고 있어야 안심이 된다. 휴가 첫날은 절반의 성공이었다. 일하긴 했어도 사무실에서만큼 부담감을 느끼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사라진 것도 아니다.
요즘 내게 위로를 주는 사람은 딱 한 명이다.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일본 여자. 연락이 끊겼다 다시 이어지기를 반복했다. 연락이 끊기고 나면 세상에서 가장 우울한 사람이 됐고, 다시 이어지면 세상을 가진 것처럼 기뻤다.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사람과 이렇게 가까워질 줄은 몰랐다. 희한한 일이지. 살면서 여태껏 이런 적이 없었는데.
생각해보면 답은 간단했다. 관심이다. 그러니까 난 여태껏 누군가에게 관심받기를 바라면서 살았다. 그러니까 누군가에게 관심을 느꼈지, 받는 사람은 아니었다. 사랑받는 건 어떤 기분일까. 나도 그런 게 가능하긴 할까. 열등감과 자책으로 가득했던 날들 동안 내가 배운 것은 ‘나는 스스로 구원받아야 한다’는 거였다. 나를 구원할 건 나 자신뿐이야. 아무도 내게 관심이 없으니까.
내가 쓴 글 하나하나에 귀 기울이고 응답했다. 그때 비로소 나는 내가 써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를 찾았다. ‘내가 자신을 구원하기 위해서’가 첫 번째 이유라면, ‘내가 이 세상에서 구원받을 수 있다’는 희망이 두 번째 이유였다. 따지고 보면 나는 항상 함께이기를 원했지. 대학교 때 유치하고 시청률이 낮았던 대학 드라마 <광끼>에 열광했던 것도 별 볼 일 없는 ‘독수리 오형제’ 다섯 친구들 덕분이다. 매번 경쟁에서 낙오하고 실패하는 전문대 광고창작과 2학년 학생들이 ‘함께’ 고군분투하는 모습은 내게 동경의 대상이었다. 실패 같은 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다. 함께 고민하고 울고 웃을 사람이 있다는 것만큼 행복한 일은 없지 않을까. 난 한 번도 그런 사람을 가져본 적이 없으니까.
대다수는 적절한 거리를 유지했다. 난 너를 존중하니까, 너는 너고 나는 나니까 너에게 깊이 관여하지는 않겠어. 걱정하지 마. 그래도 난 너를 응원하니까. 겉으로는 참 좋은 말 같지만, 나는 그런 말들이 전혀 좋지 않았다. 적절한 거리를 유지한다는 건 결국 내 마음 깊은 곳을 들여다보지 않겠다는 선언 같았다. 그러니까 우린 각자 살고 있지만 느슨한 연대로 이어져 있어. 그 느슨한 끈이 우리를 이어줄 거야. 난 그 끈이 바투 당겨지길 원했다. 하지만 누구도 그 끈을 당기지 않았다. 느슨하게 이어지다 끊기고, 다시 이어지고 끊기기를 반복했다.
재일교포를 다룬 일본 영화 <고(Go)>에서 재일교포 주인공 스기하라(쿠보즈카 요스케)의 아버지는 주인공이 어릴 적 이렇게 말했다. “왼손을 곧게 뻗고 그 상태로 한 바퀴 돌아. 그 원의 크기가 너라는 인간의 크기다. 복싱은 그 원을 네가 뚫어서 밖의 것을 쟁취해 오는 것이다.” 스기하라는 그 원 밖을 두려워했다. 그래서 원 밖의 모두를 밀어내느라 바빴다. 피아를 식별할 수 없는 세상이 두려웠다. 하지만 여자친구 사쿠라이(시바사키 코우)에게 이렇게 말한다. “원 밖에는 적들이 우글거려. 그까짓 것 부숴버리겠어.” 그리고 마침내 손을 원 밖으로 내밀어 사쿠라이를 잡아채 끌어안는다. 스기하라는 비소로 권투를, 삶을, 이 세계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된 걸까. 그러니까 그 영화는 정말 그의 연애 이야기였다. 권투를, 삶을, 이 세계를, 그리고 한 여자를 사랑하는 연애 이야기.
그러니까 내가 원하는 건 결국 내 원을 뚫고 손에 잡힐 수 있는 누군가였다. 내 더러운 면을 봐줘. 깨끗하고 밝은 면만 보지 말고 더럽고 정리 안 된 부분도 봐줘. 차라리 나를 해부해도 좋아. 리사를 알고 나서 그걸 깨달았다. 나는 나를 해부해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구나. 걱정과 불안은 사라지지 않았다. 아마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거다. 내 성격이 어디 가겠어. 사람은 잘 변하지 않는 법이니까. 하지만 나눈다면, 함께 고민하고 답을 찾는다면 조금은 가벼워질 수도 있지 않을까. 무엇이 정답인지는 잘 모르지만.
시꺼먼 밤은 아득하게 퍼지고, 새하얀 달은 머리 위에서 날 가만히 내려다보고. 내 고민이나 불안 따위와는 상관없이 나누는 헛된 대화들이 좋았다. 그 헛된 말과 시간들이 고즈넉하게 날 지켜주고 있었다. 그것들이 쌓일수록 나는 점점 가벼워졌다. 어쩌면 나는 혼자가 아닐 거라고, 조심스럽게 혼잣말을 했다. 어렴풋한 이야기들이 하나둘 쌓여가고. 그 별것 아닌 이야기들이 쌓일수록 내게 이어진 끈은 점점 바투 당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