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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소년

by Jacquesenid

중학생 시절 서울 성북구 종암동 시장 안에서 살았다. 1층에는 슈퍼마켓과 비디오 대여점 등 상가가 있는 빌라 3층에 우리 집이 있었다. 학교가 파하면 육교와 국민은행 건물을 거쳐 시장을 관통해 제일 먼저 비디오 대여점으로 갔다. 보고 싶어 하는 신작 영화 테이프는 항상 거꾸로 뒤집힌 채 ‘대여 중’이라는 문구로 나를 희롱했다. 그러면 나는 다른 쪽으로 눈을 돌렸다. 날 넌지시 쳐다보는 가게 아주머니 때문에 성인영화 코너는 언제나 힐긋거릴 뿐이었다. 대개 내가 찾는 건 스티븐 시걸이나 장 클로드 반담 주연의 액션영화, 당시 TV에서 인기가 많았던 애니메이션, WWF 프로레슬링, 코미디언이 주연을 맡은 비디오용 영화들(심형래, 이봉원, 김정식 등이 나온)이었다. 고르기 힘들 때는 비디오 대여점 카운터에 비치돼 있던 비디오 잡지를 들췄다. 그 안에는 신작 리뷰와 함께 다시 보면 좋을 예전 작품 리뷰가 담겨 있어 꽤 유용했다.


그러다 한 번 벽장 구석이나 모서리 부근, 그러니까 웬만해선 사람들 손길이 닿지 않는 청정 지대로 눈길을 돌렸다. 먼지가 가득 쌓인 구석에는 낯선 이름의 영화들이 꽂혀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찰리 채플린, 알프레드 히치콕, 잉그마르 베르히만, 장 뤽 고다르, 에릭 로메르,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등의 영화들이었다. 흑백영화에 호기심이 많았던 나는 감독 이름이나 제목도 확인하지 않은 채 구석에 꽂힌 영화들을 빌렸다.


대개 일반적인 영화 테이프를 VCR에 넣으면 호환마마보다 무서운 게 불법 비디오인 걸 알고 있느냐는(대개 우리는 그 부분에서 코웃음을 쳤다) 공익광고가 나왔고 그다음에 다른 영화들 예고편을 모두 거쳐야만 영화 본편이 시작했다. 하지만 베르히만 형님이나 타르코프스키 형님 영화들 테이프에는 영화 예고편 따위 없었고, 공익광고 후 바로 시작하기 일쑤였다. 영화를 처음 틀 때는 엔딩 크레디트까지 모두 보고 나서 학교 영화클럽 친구(중1 때부터 영화광이었던 친구 몇 명과 모임을 조직해 함께 영화를 보거나 수다를 떨고는 했다)에게 뽐내겠다는 의지로 가득했지만 그건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고매하고 위대하신 유럽 형님들의 영화는 채플린이나 히치콕을 제외하고는 대개 느린 편이었다. ‘여기서 저기까지 걷는데 왜 5분이 걸린단 말인가. 카메라 감독 혹시 밥 먹으러 갔냐?’, ‘컷을 깜빡하고 안 했나?’ 등 별 생각을 다했고 그러다 졸기 일쑤였다. 눈 감은 채 영화를 보는 나의 관람법은 타르코프스키의 영화 <노스탤지아> 때 절정이었다. 종반부 주인공이 촛불을 들고 왔다 갔다 하는 장면은 도통 끝날 줄을 몰랐다. 자기 전에 분명 촛불 들고 있는 주인공을 봤는데 깨고 나서 봐도 여전히 그걸 들고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그렇게 본 영화 관람은 대부분 수박 겉핥기였고, 제대로 영화를 이해하기 위해 나는 추후 20대 이후 다시 찾아 봐야 했다.)


내게는 지적 허세가 많았던 것 같다. 그러니까 남들이 아는 건 나도 알아야 한다는 욕심이 매우 컸다. 영화 클럽 친구가 무슨 영화를 봤다고 하면 어떻게 해서든 구해 보았다. 한 노동 후일담 영화를 보려고 버스로 30분을 간 낯선 지역에서 대여한 기억도 있다.


크쥐시토프 키에슬로프스키 영화들도 그때 만났다. <베로니카의 이중생활>과 삼색 시리즈(블루, 화이트, 레드)도 좋았지만 가장 인상적으로 본 건 테이프가 10개나 됐던 <십계> 시리즈였다. 제목만 보면 종교영화 같지만, 실제로는 현대를 배경으로 인간 본질을 탐구하는 영화들이다. 당시 내가 키에슬로프스키 영화를 좋아하는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우선 타르코프스키나 앙겔로폴로스 영화처럼 느리지 않았으며, 출연 여배우(줄리 델피, 줄리엣 비노쉬, 이렌느 야곱 등)가 예뻤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가던 내 생각은 어느덧 ‘키에슬로프스키’라는 큰 바다에 당도했다. 그의 영화를 찾아보다 <십계> 시리즈 DVD를 값싸게 판다는 정보를 접하고 냅다 질렀다. 성인이 되어 그의 영화를 다시 보면 어린 시절 날 괴롭혔던 지적 허세가 꼭 나쁜 것만은 아니었음을 깨닫는다. 이렇듯 저렇듯 나는 그 허세 덕분에 많은 시네아스트와 만났고 ‘영화’라는 세계가 가늠할 수 없을 만큼 넓고 깊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안에서 행복했다. 그 안에서 나는 먼지보다 작게 보였기에 누구 눈치 볼 필요 없이 자유롭게 탐험할 수 있었다. 작열하는 태양 아래 나침반과 지도 들고 사막 같은 세계를 횡단하는 내가 있었다. 내 기분 따위 고려해주지 않는 사막에서 유일하게 위안이 되는 건 눈 감으면 보이는 영화 속 장면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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