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보면 중학생 때부터 난 혼자였다. 중학생 때 라디오를 껴안고 살던 나는 고등학생이 되면서 PC를 안고 살았다. 대학 시절에는 영화관에 가 영화 보는 재미에 빠졌으나 그때도 혼자였고.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난 마찬가지였다. 일은 함께하더라도 끝나고 나면 터벅터벅 혼자서 집으로 걸어가는 날이 많았다. 머릿속으로는 ‘함께’와 ‘우리’를 소망했지만 한 번도 시도해본 적은 없다. 게으르고 겁이 많았다.
난 내가 혼자서 살아도 되는 사람인 줄 알았다. 원래부터 그랬으니까. 익숙하니까 괜찮아. 그런데 아니었다. 혼자 살면서 내 외로움은 짙어졌고 이따금 공황 장애가 의심되는 증상이 나타났다. 지난 시간이 후회스러웠다. 하지만 오랜 시간 혼자서 사는 데 익숙했던 내 몸과 마음은 타인을 향해 쉽게 움직이지 않았다. 차갑거나 지나치게 뜨거웠다. 중간이 없었으므로 가끔 나는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았다. 그럴수록 더 내 안으로 파고들었다. 혼자서 음악을 찾아 듣고 영화를 보고 책을 읽거나 글을 쓰고, 또 혼자서 운동하고 요리해서 밥을 먹고 혼자서 잠이 들고.
남들이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을 보고 친구들과 대화를 나눌 시간에 나는 혼자서 멍하니 있거나 무언가를 생각했다. 그러니 대화가 통할 리 만무했다. 나는 숫기 없고 언제나 조용히 자기 할 일을 하는 직장인 중 하나가 됐다. 이미 너무 멀리 와버렸어.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적당한 때에 발길을 돌렸어야 하는데. 아무도 없는 길을 한참 걷다가 보니 길을 잃었고, 그러고 나서도 길을 되찾으려 하기보다는 내 앞의 길에 몸과 마음을 맡겼다.
살아 있는 사람과 친구가 되지 못하니 자꾸 다른 친구를 찾았다. 책이나 영화 속 인물, 집 안의 물건(비누, 블루투스 스피커, 마우스, 선풍기 등)에게 말을 걸었다. 그리고 그들과의 대화를 구성하며 이야기를 짰다. 그것도 나름 의미 있는 스토리텔링이었으나 아무에게도 보여주지는 않았다. 창피하고 부끄러웠다. 무엇보다 그들마저 사라질까 두려웠다. 나는 점점 말을 잃어갔고 직장이든 어느 모임에서든 해야 할 말을 찾지 못했다. 어제 우영우 보셨어요? 나는 솔로에서 누가 고백했는데요 어쩌고저쩌고. 넓은 바다 위에 홀로 뜬 섬 같았다. 주변 섬이나 친구라고는 보이지 않는 외딴 섬 말이다. 소리 내어 보아도 들어주는 이 없었다.
가끔은 일찍 떠난 할머니를 그리워했다. 나를 위로해주던 정은임 아나운서의 목소리도. 그들과 함께할 때 나는 두려울 게 없었지. 그때는 몰랐다. 그때가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절이었다는 걸. 항상 떠난 뒤에야 그들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빈자리를 마냥 쳐다보며 남은 일생을 혼자서 어떻게 버티고 견뎌야 하는지 생각하는 날이 많았다. 쓸쓸한 밤이면 죽은 이들의 소리가 내 마음을 건드린다. 냇킹콜의 목소리와 빌 에반스의 피아노 연주, 혹은 왕가위의 영화음악.
이 이야기를 어떻게 매조져야 하는지 구상하지 못했다. 내 인생의 소설은 망망대해에 떠 있는 배 한 척이다. 방향을 잃었다. 앞으로, 뒤로, 옆으로, 근데 어딘가로 간다는 게 의미가 있기는 한 걸까. 가는 것과 가지 않는 것은 어떻게 다를까, 나와 내가 아닌 것은 구분할 수 있나, 이곳은 어디이고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럴 때마다 독백한다. 답은 모르지만 일단 혼자서 어디든 내디뎌보는 거야. 어디든 걷다 보면 누군가 만날 수 있지 않을까. 간다는 게 의미가 없다 하더라도 일단 가지 않는 것보다는 조금은 낫지 않을까.
고민하며 불안해한다. 발을 앞으로 내딛으면서도 확신할 수 없다. 하지만 죽기 전까지 나는 걸을 수밖에 없는 걸. 어딘가에는 내 마음의 신호를 이해하고 들어주는 사람이 있겠지. 나와 주파수가 맞는 사람이 있겠지. 그러자면 조금이라도 더듬이를 높이 들어 신호를 보내야겠어. 내 글의 ‘조사’를 보고서도 내 마음을 알아채고 이해해주는 사람이 있을 수 있으니까. 일말의 희망으로 조금씩 글을 쓴다. 내가 살아 있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내 별이 아직 밤하늘에서 희미하게나마 빛을 낸다고 말하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