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적당히 해선 안 돼, 알아들었어?

by 초생달

그동안 내 홈트레이닝 루틴은 길고도 지루한 미니시리즈 같았다. 스쿼트를 하고 또 한참 유튜브나 영화를 보며 쉬고, 팔굽혀펴기 1세트 뒤 긴 휴식, 그리고 1세트 더 한 뒤 긴 휴식. 이러니 간단한 운동을 하는 데도 2시간은 족히 걸렸다. 퇴근하고 나면 밥 먹고 설거지하고 청소한 뒤 좀 쉬다가 운동을 했다. 운동하고 나면 이미 자정이 넘어 잘 시간이었다. 그러니까 당연히 글을 쓰거나 책 읽을 시간은 없었다. 내 삶의 불균형은 심각했다.


무언가 ‘시도’한다는 데 만족감을 느꼈던 것 같다. 내 몸을 관리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내게 위로가 됐다. 그 위로에 취해 살았다. 하다가 안 되거나 힘들어도 굳이 다른 방법을 찾지 않았다. 어쨌든 나는 시도하는 사람이니까, 멈추어 있진 않으니까 괜찮아. 내가 운동을 하게 된 이유는 간단히 말해 열등감 때문이다. 다른 복잡한 이유를 수십 개는 댈 수 있으나 결국 ‘열등감’이란 단어로 모인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키가 작은 데다 근력이 약하고 근육량이 적고 팔뚝이 얇았다. 왜소한 동양인 체형의 전형이랄까. 중학생 무렵 당한 집단 따돌림과 군시절 겪은 무차별 폭력은 나를 더 부추겼다. 대중교통을 타고 출근할 때면 온 사람들이 내 몸을 지적하는 것만 같았다. 여름은 더욱 싫을 수밖에. 반팔을 입어야 했고 팔을 들어 손잡이를 잡아야 했으므로 나의 얇은 팔뚝을 드러날 수밖에 없었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손잡이를 든 손에 가방을 쥐어 내 팔뚝을 가렸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데 누군가 날 쳐다보면 괜히 화가 났다. 날 비웃고 있겠지. 그럴수록 난 더욱 더 사람들과 멀어졌다. 대화하는 법도, 교류하는 법도 배우지 않았다. 기회는 있었지만 스스로 더 배우고 깨우치려 노력하지 않았다. 대화하면 할수록 난 더 벌거벗는 듯했다.


열등감에서 시작한 내 운동은 꽤 오랜 기간 지속됐다. 피트니스 센터를 다녔고, 온라인 유료 PT를 결제해 시도하기도 했다. 군살이 없어지고 몸이 조금 날렵해진 기분은 들었지만 내가 원하는 (얇은 티 하나만 입어도 근육질 몸이 그대로 드러나 보이는) 몸은 가질 수 없었다. 당연했다. 실수와 오해를 바로잡으려고 하지 않았으니까. 난 그저 ‘운동하는 기분’에 취하고 싶었을 뿐이다. 생각해보면 글쓰기 역시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글과 문학을 붙잡고 있다, 아직 놓지 않았다는 기분을 느낄 만큼만 책을 읽고, 딱 그만큼만 글을 썼다.


지금에 안주해 거기서 딱 그만큼의 공간에 만족해서 살다가, 오늘 문득 다르게 시도해보기로 했다. 운동 앱을 몇 개 깔고 시간에 맞춰 두 개 프로그램을 실행했다. 상체 근력 프로그램과 이두근 및 삼두근 프로그램이었는데 합쳐서 30분 정도의 짧은 시간이었다. 하지만 운동을 마치고 나니 몸은 땀으로 가득했다. 샤워하기 전에 설거지를 하려고 하니 팔이 잘 들리지 않았다. 그때 알았다. 오늘 비로소 나는 운동다운 운동을 했구나. 나 자신에게 도취하면 안 되겠으나 거의 울 뻔했다. 이제 내가 가야할 길이 조금은 보였다.


<원스>로 유명세를 탄 존 카니 감독의 음악영화 <싱 스트리트>는 10대 소년들의 밴드 도전기를 다룬다. 코너는 첫눈에 반한 라피나를 밴드 뮤직비디오에 출연할 배우로 섭외하는데, 라피나는 수영을 할 줄 모르는데도 바닷속에 뛰어드는 열정을 보인다. 코너가 깜짝 놀라 왜 그랬느냐고 묻자 라피나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 작품을 위해서야. 절대 적당히 해선 안 돼. 알아들었어?” 운동을 마치고 나서 문득 그 영화의 대사가 떠올랐다. 앞길이 보이지 않는 숲을 통과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야생동물의 위협에 대비하는 것도, 어두운 밤을 밝히는 것도 아니다. 자신이 가는 길을 믿고, 최선을 다해 헤쳐 나가는 것. 그게 가장 중요하다. 절대 적당히 해선 안 돼. 알아들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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