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동료는 묘한 관계다. 평일에는 매일 만나지만 친구처럼 가깝지는 않다. 완벽한 타인처럼 멀디먼 존재도 아니다. 평일 대부분을 함께하는데도 친하다거나 가깝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내가 다니는 사무실은 그게 특히 더한 편이다. 개인 생일을 챙기지도 않고, 개인의 삶이나 변화에 딱히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니다. 매주 한 번은 다 함께 모여 밥을 먹는데, 그럴 때마다 나누는 대화들은 기계적으로 정해져 있다. 캠핑 이야기, 요즘 유행이나 드라마 이야기. 자신들이 왜 꺼내는지 이유를 알 수 없는 말들이다.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말들. 어떨 때는 똑같은 말들이 매주 반복되기도 한다. 서로에 대해 딱히 관심도 없고 가깝지도 않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지. 그런 관계가 지겨워 나는 언젠가부터 입을 다물었다. 입 밖에 흘러나오면 방향을 잃고 흔들리며 부유하는 말들이 가여웠다.
물론 사무실 사람들이 모인 식사 자리에서 입 다물고 있는 나는 분명 이상한 사람이다. 그렇다고 그들의 말에 끼어들기는 어렵다. 난 요즘 유행도 잘 모르고, 캠핑에도 관심이 없는 사람이니까. 서로에게 관심 없는 사람들이 민망함과 침묵을 해소하고자 꺼내는 말들이 관계를 깊게 해주거나, 전환하는 데 도움이 된다면 좋을 거다. 애석하게도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말은 흘리고 소비될 뿐이다.
내가 너무 옛날 사람인 걸까. 직장에서는 그저 돈만 벌면 그만인가. 적당히 가면을 쓰고 ‘친한 척’, ‘살가운 척’, ‘관심 있는 척’을 하다가 근무 시간이 끝나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돌아가면 그만일까. 그것도 좋은 방법이지만. 나도 그래야 할까. 잘 모르겠다. 요즘 직장에서는 카카오톡 단체방을 통해 업무나 기본 소통이 이루어진다. 그리고 대부분의 카카오톡에는 친구의 생일을 미리 알려주는 기능이 있다. 적어도 내 생각으로는 직급이 어떻게 됐든 생일이거나 의미 있는 날을 맞이하는 사람이라면 응당 축하해주는 게 맞다. 의무도 아니고 허울뿐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때로는 그런 허울이 우리 관계에 좋은 윤활유가 되기도 한다. 내가 어디엔가 소속돼 있다는 느낌, 그러니까 나는 ‘우리’에 속해 있다는 느낌 말이다.
나는 오랜 시간 그 ‘우리’라는 감각을 갈망했다. 명확하게 시야에 드러나는 것은 아니지만, 어떤 감각으로 느껴지는 그 살가운 관계가 필요했다. 적어도 내게는 그게 필요했다. 난 어차피 홀로 떠 있는 섬이지. ‘우리’라는 감각이 실제의 ‘우리’가 될 수 없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그건 허울일 뿐이다. 그래도 내게는 그 허울뿐인 관계가 필요했다. 난 오랜 시간 ‘우리’를 꿈꾸었기 때문에.
낯을 많이 가리는 나는 세 명 이상의 자리가 모인 곳에서는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어릴 때부터 그랬고, 아마 앞으로도 쉽게 고쳐질 것 같지 않다. 머릿속으로는 수없이 많은 말이 오가지만 결국 입 밖에 나오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다. 관계에 항상 수동적이었으므로 먼저 누가 말 걸어주길 바랐는지 모른다. 오지랖 넓은 누군가 나타나 내게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말 걸어주길 바랐다. 내가 오랜 기간 인연을 맺고 있는 사무실 동료들은 대부분 내게 먼저 말을 걸어준 사람들이다.
코로나19 이후 유대감을 가질 수 있는 고리들이 사라졌다. 이제는 그런 걸 요구했다가는 ‘꼰대’나 ‘옛날 사람’이라고 매도당할 게 뻔하다. 남은 것은 오로지 돈을 버는 곳이라는 생존 현장뿐이다. 너는 너고 나는 나다. 직장에서 우리는 업무에 필요한 말만 하면 되고, 굳이 대화가 필요하다면 버려져도 좋은 그저 그런 말들만 나누면 된다. 요즘 유행이 어떻고, 누가 예쁘고, 누가 이혼했고.
어릴 때부터 ‘유대감’과 ‘집단’에 대한 열망이 컸던 나는 항상 함께할 수 있는 ‘우리’를 찾았다. 때로는 나쁜 말을 주고받고, 싸울 때도 있지만 결국 우리는 함께였고 술 한잔이면 기분 좋게 화해할 수 있었다. 문득 한 출판사의 회식이 떠올랐다. 월급도 적었고 복지도 열악한 문학 계열의 출판사였지만, 무엇보다 끈끈했다. 나는 아직도 그들을 ‘우리’로 기억한다. 편집장과 내 에디터 사수는 왜 그토록 늦게까지 술을 마셔댔을까. 1차 고깃집, 2차 호프집을 지나 3~4차 술자리면 대개 새벽 무렵이었다. 대여섯 명이 남아 누가 졸지 않고 오래 버티는지 시합하듯 눈을 부릅뜨고는 아무 말이나 주고받았다. 노동이 어떻고, 정치나 사회가 어떻고, 어떤 소설가가 어떻고. 그때 아무 말은 아무 말이 아니었다. 그 아무 말들은 우리를 감싸주고 있었다. 이제야 그걸 알겠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겠고, 돌아와서도 안 되겠지만, 우리를 감싸던 그 따뜻한 기운과 관심은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을 마련해줬다. 생각해보면 그런 시간을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다는 것은 꽤 멋진 일이다.
당시 우리는 누가 책을 한 권 마치면 다 같이 기뻐하며 축하해줬다. 축하해, 책 너무 멋진데요, 한잔 사셔야죠, 필자는 이제 꼬장을 안 부리나요. 누가 취재를 다녀오면 모두 눈을 마주치며 인사를 나누었고, 누가 책을 포장해야 할 일이 생기면 모두 힘을 합쳐 순식간에 일을 마무리했더랬다. 원래 이런 잡무가 시간 때우기에는 좋지. 내가 할 일을 도와주며 싱긋 웃던 편집장의 얼굴을 아직 기억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우리는 정말 ‘우리’였다. 거나하게 술을 걸치고 새벽 다섯 시 무렵 집으로 돌아가야 할 때면 젊은 대표나 편집장은 각자의 집 위치에 맞는 택시비를 쥐여주었다. OO 씨는 집이 머니까 3만 원! 감사합니다. 돈을 받아 들고는 90도 인사를 하고는 택시에 탄다. 백 킬로가 넘는 속도로 밤거리를 질주하는 택시는 언제나 날렵하고 아늑했다. 창문을 열면 시원한 바람이 새어 들어왔다. 그 바람이 내 얼굴로 파고들면 난 정신을 번쩍 차리고는 했다. 그러면 난 금세 다시 몇 시간 후 출근해 마주칠 얼굴들을 생각하며 설레고는 했다. 그러니까 이것은 일종의 고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