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부터 외출을 거의 하지 않는다. 영화 한 편을 보더라도 극장에서 봐야 하고, 필터 커피 한 잔을 마셔도 각자 다른 취향과 스타일로 내린 커피를 맛보고자 카페를 순회하며, 책 한 권을 선택하려면 서점에서 수도 없이 길을 잃다가 몇 권 사이에서 주저해야 한다고 생각한 때도 있었다. 그때의 ‘나’는 퍽 괜찮은 사람처럼 보였다. 잔잔하게 흐르면서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재즈 음악의 피아노 연주 같았다. 주어진 한소끔 만큼의 삶이 짧았다. 혼자여도 좋았다. 난 혼자서도 어디든 잘 돌아다니는 사람이었으니까.
삶은 지루하게 흐르는 것 같다가도 어느 순간 푹 꺼지고 다시 떠오른다. 한동안 푹 꺼진 것처럼 숨죽여 살았다. 영화는 OTT 앱이나 유료 다운로드를 이용했고, 커피 원두는 온라인으로 구매해 집에서 내렸으며, 책은 거의 보지 않거나 설령 볼 책이 생기더라도 온라인 서점을 통해 구매 버튼을 눌렀다. 한동안 ‘나’는 쓸모없는 옷가지 같았다. 한구석에 오래 처박혀 있다가 버려지거나 걸레 대용으로 사용될 운명처럼. 바깥의 모든 것이 무섭고 두려웠다. 나보다 키 큰 사람(들), 멋져 보이는 사람(들),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 그 밖에 내 열등감을 부추기는 모든 이가 싫거나 두려웠다. 난 어차피 컨베이어 벨트에서 낙오한 물건일 뿐이니까. 스스로가 재화가 되기도 전에 탈락한 물건처럼 느껴졌으니.
마흔 무렵이다. 그러니까, 그 무렵 내 인생의 가능성은 대부분 사라졌다. 사라졌다, 고 느꼈다. 그러니까 또래 동창은 이미 결혼해서 잘 살기도 하고, 누군가는 빌딩의 주인이 됐고, 아이를 키운다는데. 난 아직도 혼자이고 작은 기획사에 다니며 월급날만 기다리는 직장인이다. 살아온 날만큼 살아갈 수 있을까. 어쩌면 이미 반환점은 돈 것이 아닐까. 부모님은 갈수록 쇠약해지고 시간은 흐르고 세상은 갈수록 달라지는데, 사람들도 바쁘게 몸을 굴리는데 나 혼자서 두 다리를 멈춘 사람 같았다.
그러니까 오늘 내가 백아트 갤러리에서 본 한영수 작가의 사진들에는, 나처럼 굳게 멈춘 사람들로 가득했다. 주로 1956년~1963년 서울의 여성들이다. 비 오는 날 어두운색의 원피스를 입고 우산을 쓴 채 무언가를 기다리는 여자, 여자 앞을 지나가는 차에서 밝게 웃으며 차장 너머를 내다보는 까까머리 꼬마, 광화문 돌담길을 걷는 숙녀, 선이 거의 지워진 횡단보도를 건너는 여자, 밝게 웃던 여자의 옆모습, 목 폴라와 면 바지를 입고 쪼리 신발을 신은 채 세련된 나무 재질의 핸드백을 들고 있는 어떤 여자(옆에 선 남자와 어떤 대화를 나누고 있었을까), 값비싸 보이는 모피 코트를 입고 명동을 활보하는 하이힐 여인, 비 오는 날 사람들 틈새에서 꽃 화분을 정리하는 여인, 한강에서 망중한을 즐기는 수영복 여인 둘, 신문을 유심히 들여다보는 여인, 화사한 꽃무늬 원피스를 입고 한강을 바라보는 여인의 뒷모습…….
전쟁 이후 서울의 거리에서 우울함을 걷어내고 각자의 방식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흑백 사진 안에 갇혀 있었다. 선명한 흑백 사진 안에 담긴 사람들과 풍경에 사로잡혀 갤러리를 몇 번이나 반복해서 돌아다녔다. 지금 대부분은 늙었거나 내가 딛고 있는 이 땅에는 존재하지 않을 사람들. 나와 같은 세상에 살아본 적이 없을 확률이 큰 그 사람들의 생생한 표정과 몸짓이 느껴졌다. 갖고 싶었다. 어두운색의 원피스를 입은 여자 옆에 서 있었다면 나는 그 앞 까까머리 꼬마를 더 가까이서 볼 수 있었겠지. 목 폴라를 입은 여자는 어떤 일을 하고 어떤 생각을 하고 사는 사람이었을까. 그녀가 차분하게 들고 있던 핸드백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었을까. 화사한 꽃무늬 원피스를 입고 바라보는 한강은 어떤 모습일까, 지금과는 얼마나 다를까.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한동안은 나와 같은 공간에서 같은 공기를 들이마시고 있는 것처럼. 당신(들)은 무엇을 위해 걷고 달리던 사람이었습니까. 무엇을 위해 일하고 무엇을 꿈꾸었나요? 언제 웃고 울었나요? 지금 그곳에서는 행복한가요? 지난 몇 년간 존재하면서도 스스로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느끼며 살아왔다. 읽고 싶지도, 보고 싶지도, 느끼고 싶지도 않았다. 더 이상 상처받고 싶지 않았으므로 갈수록 더 구석으로 숨어들었다. 좁은 방 이불 속은 더없이 따뜻하고 아늑했다. 이불 속에 내가 꿈꾸는 우주가 모두 담겨 있다고 믿었다. 그럴 거라고, 그래야 한다고.
한영수 작가의 사진전 <When the Spring Wind Blows>에서 내가 확인한 얼굴, 표정, 몸짓, 풍경 들은 모두 내 이불 밖에 머물던 것들이다. 나를 둘러싼 원 밖에서 조심스럽게, 그리고 끈질기게 날 기다리던 것들이다. 문을 두드릴까 말까 고민하다가 결국 포기한 채 밤하늘만 쳐다보던 것들이다. 봄바람처럼 따뜻하게 내 마음에 걸어들어온 것들이다. 그 많은 존재가 조심스럽게 걸어들어와 내 머리를 붙잡고, 팔과 가슴, 두 다리를 붙잡는다. 두 다리가 한결 부드럽고 가벼워진 나는 주변 눈치를 보고는 슬쩍 이불 밖으로 한 걸음을 내딛을까 말까 고민한다. 나도 언젠가 저 사진 속 사람들처럼 ‘하나의 풍경’으로 남을 때가 올까. 난 누군가에게 어떤 느낌, 어떤 사람으로 영감을 줄까. 나도 하나의 이야기가 될 수 있을까. 당신이 그러하듯, 나도 하나의 이야기가 되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