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삶은 지난 밤 뒷산에 쌓인 눈처럼 두꺼웠다. 어떻게 정리하고 치워야 할지 가늠이 되지 않는 숙제 같았다. 집요하고 들여다봐도 답이 안 보였다. 왜 나는 이유 없이 괴롭힘을 당해야 했나. 왜 그토록 맞아야 했을까.
엉킨 매듭을 한동안 풀지 못했다. 더 나아지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흐를수록 더 단단하게 조여지는 것 같았다. 눈을 감으면 그때 일들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어쩌면 그들에게는 특별한 악의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어리기 때문에 쉽게 생각했는지도 모르고. 하지만 그 악의 없는 장난 때문에 이 삶은 엉망진창이 됐다. 왜 하필 나였을까. 시간이 지나 그들 중 일부를 만난 적 있다. 중학교 때 나를 괴롭혔던 누군가, 군대에서 나를 죽도록 때리던 일원 중 한 명. 시간이 흘러 어른이 된 그들의 눈빛은 한없이 선해 보였다. 누군가는 결혼해 애 아빠가 됐고, 누군가는 성실한 직장인이 됐다. 대놓고 말하지는 않았으나 그때는 정말 미안했다고 말하는 듯 친절했다. 그들의 친절함이 내게 칼처럼 꽂혔다.
지난 설 연휴 동안 남양주 본가에 머물면서 두어 차례 본가의 차를 몰고 드라이브를 했다. 복잡하지 않은 남양주 시골길을 가볍게 돌다가 익숙하지 않은 풍경과 마주했다. 뒤집힌 채 죽어 있는 고양이였다. 도로 중앙선에 아슬하게 걸쳐 있던 고양이의 머리는 지나가는 차량과 부딪쳐 깨진 것 같았다. 지나치면서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뒤에 차가 없어서 다행이었다. 한참이 지나 그 지점을 되돌아왔을 때도 녀석은 같은 자세로 누워 있었다.
녀석은 왜 그곳에서 배를 내민 채, 네 다리를 하늘로 향한 채로 죽어 있었을까. 배우자나 아이들은 있었을까. 아무리 궁리해봐도 녀석의 사연을 떠올릴 수 없었다. 아무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죽음이었다. 나도 사실상 그 아이처럼 오랫동안 죽은 듯 지냈다. 답을 찾을 수 없는 상태로 오랫동안.
운전을 마치고 본가에 돌아온 나는 한참이나 그 고양이의 모습을 지우려고 하다가, 다시 떠올리기를 반복했다. 잔혹한 죽음은 끔찍했으나 온전히 지워지지는 않았다. 당연했다. 강렬하게 박힌 영상은 지우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더 선명하게 떠오르는 법이니까. 생각해보면 산다는 건 특별할 게 없었다. 그런데도 나는 내 지난 기억을 지우려고 애썼고, 그럴수록 그것들은 더 선명하게 내 눈앞에 나타났다. 그게 날 괴롭혔다. 당시 나는 도로 한가운데 누워 다른 세계의 부름을 기다리는 고양이 같았다. 살아 있다고 볼 수 없는 상태에서 아슬아슬하게 중심을 잡으며 버텨왔다. 지금의 나는 살아 있을까, 죽어 있을까. 그걸 깨닫지 못하는 동안 한참의 시간이 흘러갔다.
때로는 그냥 내버려 둬도 괜찮지 않을까. 이렇든 저렇든 그 시간 안에는 고투하며 버텨낸 내가 있으니까. 불처럼 뜨겁게 분노하고 투쟁하며 기어이 살아남은 내가 있으니까. 그 밖에 잘한 것은 딱히 없는 것 같지만.
고양이를 지워내기보다는, 그 아이를 기억하며 애도하기로 했다. 너의 삶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어쩌면 길에서 헤맸을 그 많은 시간을 다른 세계에서는 반드시 보상받을 수 있을 거라고 애도했다. 너는 이제 행복해도 괜찮다고, 이제 다시 눈을 부릅뜨고 한 걸음씩 걸어보라고 나직이 속삭였다. 네가 마주할 새로운 세계에서는. 춤추지 못한 많은 날이 있었다. 지레 겁먹고 살았던 많은 날이 나를 좀먹었다. 이제는 내 스텝과 템포대로 춤을 추면 되잖아. 그러니 이렇게 생각해본다. 불처럼 타오르는 시간아, 이제는 내 뜻대로 나와 춤을 추자고.
* 글 제목은 2006년 발매한 밴드 코코어(Cocore)의 연주곡 제목에서 가져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