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에 입학하지도 않았던 꼬마 시절, 명절이면 내가 살던 서울 성북구 종암동에 서커스단이 왔다. 공터에 자리를 잡고 천막 치던 단원 사람들을 동경하는 눈으로 바라봤었다. 명절이나 신년이면 텔레비전에서 방영하던 서커스 실황은 가장 사랑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줄 위에서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잡고, 불로 휩싸인 원 안을 가볍게 통과하는 곡예사들의 모습이야말로 내가 생각하는 프로페셔널의 정석이었으니.
나와 비슷한 연배의 사진작가 오진령 씨가 2004년에 펴낸 포토에세이 <곡마단 사람들>은 심심할 때마다 들춰보는 책이다. 작가는 동춘서커스를 육 년 동안, 한 달에 한 번 꼴로 찾아가 열흘씩 머물며 그들과 함께 먹고 자면서 사진을 찍었다. 그 사진들은 볼 때마다 마음을 흔든다. 관객이라고는 노인 한 명뿐인 천막 안 서커스 공연장, 서커스 단원들과 동행하다 화제 때 화상을 입어 생을 마감해 박제된 코끼리, 십 대가량으로 보이는 소녀 곡예사들의 밝은 웃음… 그 사진들은 오랜 시간 내 마음을 지배했다.
거기서 내가 발견한 건 뿌리 없는 삶에 대한 조건 없는 동경이다. 페데리코 펠리니의 고전 흑백영화 <길>이나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의 컬트영화 <성스러운 피>를 좋아한 것도 그 때문일 거다. 특히 떠돌이 마초 잠파노, 돈 몇 푼에 가족을 떠나 잠파노와 길을 떠돌던 젤소미나처럼 언제나 나는 모험가, 떠돌이가 되고 싶어 했다.
나는 내가 어디든 쉽게 떠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안다. 겁 많고 고민 많고 쉽게 불안해 하는 나 같은 사람이 그렇게 모험을 할 수는 없을걸. 그럴수록 떠도는 삶은 나를 더 강하게 유혹했다. 어서 내게 와보라는 듯, 이곳에는 네가 모르는 새로운 세계가 있다는 듯.
정말 그럴지도 몰랐다. 나는 항상 책과 영화, 그리고 서커스에 대한 이미지를 보면서 새로운 세계를 꿈꿨다. 현실은 언제나 지옥 같았으니까. 서커스단이 유람하는 곳, 잠파노와 젤소미나가 떠도는 곳에는 무엇이 있을까. 내가 사는 이곳보다 더 나은 세상이 있지 않을까. 하지만 현실은 상상보다 무겁다. 동춘서커스가 불황을 거듭해 쇠락해가듯, 잠파노가 끝끝내 젤소미나를 잃고 울부짖듯, <성스러운 피>의 주인공 소년 피닉스가 결국 현실의 고통과 마주하게 되듯,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감당할 수 없는 일들이 쏟아지면 머릿속으로 항상 곡예하는 사람들을 떠올린다. 한 손에는 가벼운 배낭, 다른 한 손에는 나침반을 들고는 그들의 뒤를 따른다. 발 닿는 대로 어디든 걷다가 먹고 그러다가 다시 걷고. 밤하늘에서 땅으로 쏟아져 내릴 듯한 별들을 바라보다가 그 자리에서 잠든다. 그런 생각을 하고 나면 한결 마음이 가벼워진다. 한 번도 가본 적 없지만, 한 번도 가본 적 없기에 꿈꿀 수 있는 길 위의 삶. 내가 꿈꾸는 그 세계에서 젤소미나는 죽지 않고 여전히 엉뚱한 표정으로 트럼펫을 불고, 동춘서커스 단원들은 많은 관객 앞에서 즐겁게 곡예를 한다. 피닉스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곡예사가 된다. 때때로, 헛된 공상이 나를 숨 쉬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