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낫 백 투 더 퓨쳐 후드티

by 초생달


후드티는 몸을 숨기기 좋은 도구였다. 얇은 팔뚝과 볼록 나온 배, 얇은 종아리의 ET 체형이었던 내게 여름은 고역 그 자체였다. 반 팔을 입고 지하철 손잡이를 잡고 있으면 얇은 팔뚝이 고스란히 그 자태를 드러냈다.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지만, 창피하고 부끄러웠다. 그럴때면 두꺼운 팔뚝의 소유자들이 영웅 혹은 적으로 느껴졌다. 그때부터 홈트레이닝을 시작했다. 피트니스 센터에서 볼품없는 몸을 드러내긴 싫었다. 유산소 운동을 통해 배는 약간 들어갔고, 하체 운동을 하니 하체는 비교적 단단해졌다. 하지만 상체의 두께를 키우는 일은 무척 어려웠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찾게 된 옷이 후드티였다. 펑퍼짐한 옷 특성 덕에 볼품없는 몸을 가릴 수 있는 데다 ‘힙한’ 느낌까지 줄 수 있으니 그보다 더 좋을 수는 없었다. 커버낫 백 투 더 퓨처 후드티는 2020년에 처음 만났다. 인생 영화 리스트에 꼭 들어갈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의 1985년 작품 <백 투더 퓨 쳐 Part 1>은 키는 작지만 재주 많고 당찬 고등학생 마티 맥플라이가 시간여행을 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경쾌하면서도 디테일을 놓치지 않는 섬세한 각본, 마이클 J 폭스의 청춘 연기가 일품이다. 그러니 이 작품의 이미지가 등장하는 후드티를 보고 반하지 않을 수 없었다. 드로리안(박사가 시간여행용으로 개조한 차량)의 멋진 모습과 ‘백 투 더 퓨쳐’ 레터링은 내게 ‘청춘’ 그 자체였다. 그 옷을 입고 있으면 마치 ‘힙한 청춘’이 될 것 같았다. 검정색 바탕도 멋져 보일 뿐이었다.


상체, 그중 이두근과 삼두근 운동을 하지만 좀처럼 벌크업이 되지 않았다. 아마 전문가의 도움 없이 혼자서 해결하려니 잘 안되는 건지도 몰랐다. 해도 안 되는 게 있다고 절망할 때마다 날 위로해주는 건 바로 커버낫 백 투 더 퓨쳐 후드티였으니, 숨기고 싶은 모습이 있을 때마다, 업무가 마음대로 되지 않아 괴로울 때마다 백 투더 퓨쳐 후드티를 찾았다. 다리가 무거운 퇴근길이면 후드티에 달린 모자를 뒤집어쓴 채 터벅터벅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그럴 때면 옷에 새겨진 드로리안이 든든한 방패막이 돼줬다. 마치 아직은 세상이 살 만하다고, 힘든 일이 있으면 내 품에서 얼마든지 울어도 된다고 말해주는 듯했다. 그 후드티에 의지해 몇 번이고 힘든 고비를 넘기고 버텨냈다.

사는 일은 정말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여전히 실패와 실수를 반복한다. 이 나이쯤 되면 누구나 존경하는 어른이 될 줄 알았는데. 그 녀석은 괴로운 심정을 술로 달랠까 고민하는 나를 다시 돌려세운다. 그러고는 말없이 안아준다. 조건 없이 날 이해하고 사랑하고 아껴주는 존재는, 이 세상에서는 적어도 그 후드티뿐이다. 대부분은 각자의 삶에 충실할 뿐이지. 그러다 누군가 죽어나가면 기껏해야 애도나 추모 정도 해줄 테고. 그렇지만 그런 죽음 따위는 쉽게 잊고 다시금 앞만 보고 걸어갈 거다. 그게 현대 사회이지. 그러니까, 내가 믿을 거라고는 만난 지 3년이 되는 커버낫 백 투더 퓨쳐 후드티뿐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어쩌면, 그런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