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폐암 판정이 시초였다. 폐암 2기 판정을 받고 수술을 앞둔 아버지는 생전 처음 내게 먼저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물었다. 잘 지내냐? 내일 수술이라 그런지 기분이 이상하네. 아버지가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는 건 처음이어서 신기하기도 하고 걱정도 됐다. 애만 셋인 딸아이에게는 감정을 마음껏 드러내지만, 못난 장남에게는 냉담하던 분이다. 아버지는 어땠는지 모르지만, 그날 나는 잠을 좀 설쳤다. 다행히 아버지는 암세포가 퍼진 폐의 일부분을 잘라내며 건강을 회복했다. 물론 젊었을 때와 비교할 수는 없겠고, 아직도 재발 방지를 위해 조심해야 하지만 굳건히 살아내고 있는 것만으로도 감동적이다.
아버지 이전에 할아버지가 있었다. 내가 초등학생일 무렵 폐암으로 돌아가신 할아버지는 담배 하루 2~3갑은 기본이고 잘 때도 담배를 물고 주무시던 분이다. 할아버지가 운영하던 복덕방에 놀러 가면 항상 100원짜리 동전을 “10원!”이라며 주시고는 했다. 가족에게 폐암 내력이 있는 만큼 조심해야 했지만 나는 군 시절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20년가량 담배를 태웠다. 연초에서 전자담배로 갈아탔던 나는 고민 끝에 금연을 선언했다. 흡연 욕구를 이겨내기란 쉽지 않았고, 그때 내가 선택한 위안거리는 껌이다. 편의점에서 파는 자일리톨 껌과 약국에서 판매하는 금연껌 2종을 항상 구비하고 다닌다.
담배 중독을 이겨내고 나니 금연껌 중독이 기다리고 있더라, 라는 말처럼 나는 금연껌 중독에 시달렸다. 금연껌 역시 점차 줄여나가야 하지만 생각만큼 쉽지는 않았다. 특히 일이 밀리거나 스트레스가 쌓일 때면 담배를 찾던 습관은 고스란히 금연껌을 찾는 일로 옮겨갔다. 심심한 입 안에 금연껌 한 알을 넣어놓고 웅얼거리고 있으면 어느새 평화가 찾아왔다. 씹지 않고 30분 동안 웅얼거린 적도 있다. 금연껌에도 소량의 니코틴 성분이 포함돼 있으니 분명 끊어야 한다고 생각은 하지만 생각처럼 쉽게 실천하기는 어렵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건 금연껌의 니코틴은 담배의 유해물질보다는 덜 해롭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금연껌을 연실 씹어대며 일하는 스스로가 미워질 때면, 니코틴 외 유해물질이 섞이지 않아 담배보다는 낫다는 의견을 검색해서 읽고는 위안을 찾는다. 그래도 연초와 전자담배 모두를 끊은 건 대단한 일이잖아. 내게도 칭찬받아야 할 점이 하나는 있다.
지하철역에서 나와 직장 사무실로 가는 길에 약국이 있어서 으레 일주일에 1~2번은 들러 금연껌을 산다. 여러 종류가 있다지만 니코레트 제품을 주로 이용하고 있는데, 당분이 타 제품과 비교해 강하게 느껴지는 데다 씹히는 질감도 좋은 편이다. 단골이다 보니 약사분들이 날 보면 먼저 웃는다. 그러고는 그들의 눈은 금연껌이 비치된 쪽으로 향한다. 다 알고 있어. 그거 사러 왔지? 군대 이등병 시절, 고된 얼차려를 받은 후에는 으레 함께 고생한 동지들끼리 모여 10분간 휴식시간을 가졌다. 그때 처음 담배를 배웠다. 담배는 내게 쓰디쓴 세상의 맛을 잊게 해주는 보약 같았다. 하지만 그건 착각이었나 보다. 보약이 아니라 마약 같아서 나를 더 비루한 삶으로 이끌었다. 담배가 없으면 글을 한 줄도 쓰지 못하던 시절도 있었다. 담배는 나를 구원해주기보다는, ‘구원’이라고 쓰인 구렁텅이로 이끌었다.
지금의 내 삶은 내가 여태껏 쌓고 만들어온 과정의 결과물, 이라는 말을 누군가에게 들었다. 누구 탓하고 싶지 않았다. 내게 시련이나 고난을 안겨준 사람은 있을 수 있겠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결국 나는 내가 판단하고 결정해 여기까지 왔다. 내가 만든 삶이니 내가 끌어안고 가야겠다. 아픈 것도, 고민하는 것도, 복잡다단한 감정에 사로잡히는 것도 온전히 내 몫이니까. 내일은 금연껌 개수를 줄여보겠다고 다짐하며 이렇게 또 금연껌을 꺼내 입 안에 털어 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