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해지스 지갑

by 초생달

오래된 해지스(Hazzys) 지갑을 10년 넘게 쓰고 있다. 작은 출판사 막내 에디터 시절, 나는 편집부보다는 영업부 직원들과 더 친하게 지냈다. 전 대리, 배 과장, 이 부장. 지금은 더 연락하고 지내지 않지만 당시 우리는 사소한 일로도 술자리를 만들어 뭉쳐 다녔다. 전 대리가 월급이 올랐어? 그럼 술 마셔야지. 배 과장은 결혼 날짜를 잡았어? 또 마셔야지. 뭐 그런 식이다.


애당초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업무가 아니었다. 영어 문장 하나 제대로 읽을 줄 모르는 내가 입사한 출판사는 어린이나 청소년 대상의 과학책 영어 원서를 편역해 출간하는 일을 주력으로 삼고 있었다. 줄기세포나 DNA 같은 어려운 내용을 번역해가며 대략 내용을 살피고, 적절한 편역자를 찾았다. DNA 관련 외서는 연세대 생명과학부에 재직 중이던 모 교수님에게 부탁했던 기억이 난다. 편집장은 내게 할 수 있다고 했지만, 그건 말처럼 쉽지 않았다. 우리 말도 마스터하지 못한 내게 전문 용어 가득한 영어 문장들은 까마득하게 솟아오른 봉우리 같았다. 에베레스트 정도였달까. 야근은 기본이고 매일 편집장과 기획실장에게 혼나기 일쑤였다. 아니, 내가 영어를 못하는 걸 알면서 왜 채용하셨나요? 게다가 저는 문예창작 전공이에요. 과학은 문외한이라고요. 이렇게 묻고 싶었지만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어쨌든 그걸 알면서도 그 출판사에 지원한 건 내 의사였으니까. 어떻게든 출판사에 입사하고 싶었던 마음에 아무 곳이나 찔러넣었고, 그중 반응이 온 곳이 바로 그 출판사였다.


힘든 일을 겪고 나면 영업부 직원들을 찾아갔다. 3명으로 구성된 영업부 직원들은 대개 푸근하고 인상이 좋았다. 무엇보다 내게 업무에 대해 가타부타 지적하지 않아서 좋았다. DNA가 뭐라고? 아니, 중학생한테 팔 거라면서 뭔 책이 그리 어려워? 영업부장은 원서를 들추더니 난색을 표하며 술이나 마시러 가자고 했다. 그렇게 넷이 뭉쳐 합정이나 홍대 근처의 술집을 찾아다녔다.


누구의 생일이 되면 나머지 셋이 선물을 준비해 건넸다. 지금 내가 쓰는 해지스 지갑은 당시 배 과장에게 받았던 선물이다. 배 과장은 나보다 한 살 어리지만 책임감도 강하고 어른스러워 존경할 만한 사람이었다. 브랜드 지갑은 처음 가져보는데? 고마워요. 비싼 건 아니에요. 세일이라 싸게 샀으니 부담 안 가지셔도 돼요. 영업부와의 좋은 추억만으로 직장생활을 버틸 수는 없었다. 편집부 선배들은 돌아가며 날 괴롭히고 혼냈다. 윤영 씨, 왜 자꾸 똑같은 실수를 해요? 이제부터 변하겠습니다. 사람이 쉽게 변한다고 생각해요? 윤영 씨가 좀 더 살아보면 알 거예요.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아요.


결국 나는 1년을 채 못 버티고 권고사직 명령을 받았다. 편집부 선배들은 결국 날 포기해버렸다. 권고사직 명령을 받은 후 퇴사하기까지 며칠 동안은 정말 지옥 같았다. 선배들은 내게 아무 일도 시키지 않았고, 나는 종일 내 자리에 앉아서 연예 기사를 검색하거나 내가 좋아하는 책을 필사했다. 정시에 퇴근하고 나면 소주 한두 병을 사다가 집에서 마셨다. 새우깡 같은 과자를 안주 삼아서 말이다. 그렇게 취한 채 잠들 때면, 다시 깨어나지 않기를 바랐다. 하지만 아침이면 거짓말처럼 눈이 다시 뜨였다.


몇 번의 시련을 더 겪으면서 굳은살이 생겼다. 쉽게 결정하지 않고, 쉽게 포기하지 않는 법을 배워가고 있다. 매일 출근 때마다 챙기는 해지스 지갑은 내게 그 시절을 다시 상기시킨다. 즐거웠지만 동시에 고통스러웠던 그 시절은 내게 중요한 사실 하나를 가르쳐주었다. 내가 살아가는 곳은 꿈이나 픽션이 아니라 현실 그 자체라는 것. 무언가 하나를 얻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고민과 실패를 겪어야 하는지, 그리고 그 시련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이다. 실패를 견디고 이겨내야 내가 원하는 나와 만날 수 있다. 아직도 온전치 않지만, 나는 지금도 매일 배워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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