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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선 Jul 19. 2021

일찍 일어나는 내가
더 많은 커피를 마신다.

「효원」 130호

‘일찍 일어나는 새가~’ 귀가 닳도록 들은 말이다. 25살이 된 오늘날까지도 말이다. 누나들은 아침의 내가 꼭 벌레 같다고 했다. 이불속에 똬리를 틀고 겨울잠을 자는 굼벵이. 이제 굼벵이는 없다. 그런 벌레를 잡아먹는, 새가 될 것이라고 다짐했기 때문이다. 그게 참새가 될지, 독수리가 될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 매일 아침 8시에 눈을 뜨는 신인류가 될 테다  


어두운 방 천장을 끔벅이며 쳐다보는 중. 유튜브로 틀어놓은 노래 플레이리스트도 끝이 났다. 백예린으로 시작해 검정치마로, 휴대폰에서는 아무런 잡음도 흘러나오지 않는다. 그러자 어김없이 떠오르는 생각이 있다. “지금 자면 몇 시간이나 잘 수 있을까?” 와! 자그마치 7시간! 기쁘다! 아무리 고민해도 그 7시간이 늘어나지는 않는다. 쓸데없는 고민은 수면의 질을 떨어뜨릴 뿐. 고민 하나를 처리하니 새로운 고민이 떠오른다. “어떻게 하면 더 꿀잠을 잘 수 있을까” 창밖에서 들려오는 서글픈 풀벌레 소리와 함께, <조민선(25) - 고졸>의 밤은 깊어만 간다.  



하지만 어찌하랴. 이미 약속을 해버렸는데, 애써 마음을 다잡아본다. 모든 효원 독자분들이 나를 지켜보고 있다고. 그 모두의 기대를 저버릴 생각이냐고. 이봐 조민선! 너를 향한 기대가 이만큼이나 크다고-! 그러자 마음이 편해졌다. 그렇다. 나는 [효원]의 편집위원. 이따위 [짐]쯤은 얼마든지 극복하고 그 시간에 더 성장해나가겠다. ‘이런 나… 조금은 멋있을지도?’  


# 삐빅… 신인류 탄생… ID는… ‘조민선’…  


설정해놓은 수많은 알람들. 휴대폰은 장장 30분을 몸을 떨어가며 소리를 질러댔다. 마치 그러려고 만들어지기라도 한 듯. 저 모든 알람들이 제 기능을 했다는 말이다. 굳이 처음 울리는 알람을 듣고 깨기에는, 뒤의 알람을 설정해 놓은 나의 노력이 너무 아깝지 않은가. 다들 알듯이, 기상 시간 30분 전의 알람과 5분 전의 것은 느낌이 많이 다른 법이다. 그 모두의 맛을 느끼며 눈을 뜨는 것이 또 하나의 묘미가 아닐까. 어쨌든 1일 차 도전에 성공했다.  


펄-럭 두꺼운 이불을 힘차게 제친다. 그러자 눈에 들어오는 방문. 굳게 닫혀있다. 비장하게 문을 연다. 소설 데미안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새는 신에게 날아간다…’ 그래 나는 껍질을 깨고 나온 새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는 신을 맞이하겠지. 첫날의 투쟁을 성공적으로 끝맺은 기쁨에 몸을 떨고 있을 때, 신이 내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다소 이상한 표정을 하고서.  



그래, 이상하게 쳐다볼 만도 하지. 매일 아침 함께 살을 맞대고 늘어져라 늦잠을 자던 존재가 이렇게나 일찍이 몸을 일으키다니. 신기한 것이 당연하다. 동생아, 이게 너와 나의 차이다. 넌 아직도 멀었다. 이 몸은… 성장 중이다.


그때 이런 망상을 깨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머니의 살가운 응대. 그리고 나를 뿌듯하게 바라보는 어머니의 시선. 전날 밤. 한 선언이 이루어졌더랬다. 이제 매일 아침 8시에 일어나겠다고, 달라진 삶을 살겠다고. 훗날 조씨 가문은 이 엄중한 선언이 천하에 공표된 날을 기려 1.8선언이라고 칭했다나 어쨌다나. 그때 따라온 어머니의 눈빛을 잊을 수나 있을까. 그 순간 부로 나는 대한민국 효자 열전의 한 장을 장식했음에 틀림이 없다.      


# ??? : 아니 이러시는 이유가 있을 거 아니에요  


이쯤 되면 굳이 왜 이런 짓을 하게 되었는지 설명을 안 할 수가 없다. 방학이 오면, 매번 메이플 아일랜드와 소환사의 협곡만 들락날락하던 과거의 나날들. 친구와 통화를 하며 밤늦게까지 같이 게임을 하다가 잠자리에 드는 생활이 반복되었더랬다. 눈을 붙이기 전의 마지막 게임이 [승리]가 아닌 [패배]인 것을 용납할 수 없었던 나는 이길 때까지 도전했고. 마침내 승리를 쟁취할 수 있었으나 다음 날의 아침 해는 바라보지 못했다.  



그러니 방학 때의 나에게 있어 하루의 시작은 항상 정오가 넘은 시점이었다. 성과 없는 나날들의 반복, 나는 언제까지 이렇게 살 것인가. ‘늦은 취침, 늦은 기상이라는 악순환에서 벗어나고 싶다’ 그렇게 다짐하게 되었다, 일찍 일어나는 습관을 만들어 보자고. 효원 기획안 회의 때 가볍게 아이디어 던져봤다가 가오 떨어질까봐 거절 못 한 것이 절대 아니란 말이다.


아래부터는 처음 마음을 먹은 시점부터의 3주간의 행적이다. 3주 동안 이루어진 도전, 여러분 곁의 소중한 이웃 한 명이 피땀 눈물을 흘린 기록. 한번 읽어봐 주시겠나.      



# 1주 차


1주 차는 꽤나 순조롭게 흘러갔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산새들의 지저귐 소리가 나를 반긴다. 굳이 유튜브에서 노래를 틀 필요조차 없다. 이것이 안빈낙도인가 싶다. 내가 아침 8시에 몸을 일으킨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너무나 뿌듯하다. 하루가 길어졌다. 당연히 할 수 있는 것도 많아졌다. 그런데 갑자기 많은 여유시간이 주어지면서 조금 당황했던 것도 사실이다. 일찍 일어난 것까진 좋았는데, 하는 거라곤 깨끗한 아침 공기를 더러운 이산화탄소로 걸러내는 것뿐…. 일찍 일어나는 내 모습을 신기하게 바라보던 강아지의 눈빛도 점차 한심함으로 바뀌었다.  



그래서 뭐라도 하자는 심정으로 책을 읽기로 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취하는 독서란 너무나 달콤한 것. 내가 좋아하는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말했다. “시간은 어쩌면 모두에게 공평하지 않을 수도 있다. 누군가에게는 천천히 흘러가고, 다른 이들에게는 빠르게 흘러갈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지금 나에게 주어진 시간의 농도는 어떠할까.  



침대에서 내려오면 찹찹한 바닥이 맨발을 반긴다. 짜리릿하며 잠이 깨는 기분. 창문을 열어 방에 고인 ‘남자’의 냄새를 세상 밖으로 풀어놓는다. 조금은 식은 아침 공기에 한 줌의 입김이 서린다. 남자의 한숨이다. 아침밥은 간단하게 씨리얼. 난 도시 남자니까. 그 후 따뜻한 커피를 한잔 내린다. 핸드드립이랄까… 바리스타가 따로 없군. 책을 한 권 집어 든다. 자! 떠나보자! 무라카미 하루키의 세계로!


아무런 생각 없이 일찍 일어나고 봤던 1주 차. 무사히 성공했다고 하기는 조금의 무리가 있었다. 기상만 8시에 했을 뿐, 하루 종일을 아무것도 하지 않고 흘려보낸 날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느 정도 알려진 지표를 따라가고자 정보를 찾아보았다. 그것은 바로 ‘미라클 모닝’


‘미라클 모닝’이란 어떠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일찍 일어나는 습관을 들이기로 마음먹은 사람들의 챌린지를 말한다. 무작정 일찍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일어나서 ‘무엇을 할지’에 더 초점을 맞춘 것으로 보면 되겠다. 본 챌린지는 새벽 4~5시에 깨어나는 사람들의 경우가 많으나, 나는 본래 8시 기상을 고수하기로 하고, 방향성 정도만 참고하기로 했다. 그렇지 않은가, 사람이 갑자기 많이 바뀌어도 위험하다. 여기서 더 치명적이게 되면 위험하달까..?


요즘에는 요리 잘하는 남자가 1등 신랑감이라던데, 그런 의미에서 요리를 해볼까 생각해보았다. 다음 주에는 아침밥을 직접 만들어 보는 것이다.

(어이! 도대체 어디까지 완벽해지려는 거냐! 퍽!!)      


# 2주 차


어머니께서 해주시는 아침밥은 따끈하다. 단지 갓 지은 밥이어서가 아니다. 어머니의 사랑이 담겨있기 때문. 그렇다면 열정으로 가득한 ‘조민선’이 만드는 밥은 얼마나 뜨거울까.  


미라클 모닝의 취지에 따라, 처음으로 정한 계획은 아침밥 직접 만들어서 먹기였다. 이제까지 아침은 누가 차려주지 않는다면 씨리얼로 때우거나 거르는 것이 태반이었다. 그렇게 해서야 아침부터 힘을 발휘할 수 있을까? 이봐. 당신은… 그 없나? 무엇을 할 의지가? 아침밥을 거창하게 차려서 먹어보자는 취지가 아니기 때문에, 우선은 간단하게 간장 계란밥을 만들어 보았다. 나름 성공적이다.  



몸속 가득 鷄(계)의 기운을 받아들인 후, 해가 떴음을 알리는 닭의 역할에 나선다. 그것은 바로 아직 꿈나라를 헤매는 가족들을 깨우는 것. 지금이 벌써 아침 9시가 되었거늘, 아직도 일어나지 않았다니. 그대들은 정녕 ‘미라클 모닝’을 모르는가? 에잉… 츳츳.


물론 귀 밝은 코코는 예외. 우리 집에선 아침밥을 먹는 사람이 강아지 아침밥을 챙겨주는 것이 관례인데, 이제 내가 코코와 아침을 함께 먹게 되었다. 오도독오도독 맛있게도 먹는다. 13년 동안 사료만 먹었는데 질리지도 않을까. 피부병 때문에 다른 간식을 줄 수 없다는 사실이 참 슬프다.      


순식간에 자기 밥을 해치우고 내 맞은편에 자리한 코코. 내가 아침을 먹는 내내 식탁 반대편에서 떠나지 않는다. 덕분에 아침 시간이 휑하지 않다. 물론 그 의도가 순수한 것은 아니고, 단순히 먹을 것에 눈이 멀어 나를 조르는 것이긴 하지만. 그래도 예뻐 보이기는 마찬가지. 그런 김에 다음 주에는 이 녀석과 아침 산책을 나서기로 마음먹었다.  



# 3주 차


아침 햇살을 맞으며 강아지와 산책을 한다. 아침 공기는 차가운 법. 나는 잠옷 바지에 겉옷만 걸치고 나갈지언정 우리 집 강아지가 추운 꼴은 보지 못한다. 호환 마마보다 무서운 것이 코코 어르신이 편찮은 것이다. 예쁘고 따닷한 패딩을 꺼내 입힌다.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아침부터 산책이라니. 코코가 꼬리를 흔들다 못해 트월킹을 춘다. 어디 가서 기분 좋은 티 너무 잘 내면 호구 잡히기 십상인데….      

나를 앞질러 쫄랑쫄랑 뛰어가는 코코 뒤를 밟는다. 나무 한 그루 한 그루의 냄새를 모두 맡아대는 코코 덕에 생각할 시간이 많다. 집에 가면 얘 발을 먼저 씻기고, 커피도 한 잔 만들어야 한다. 읽던 책도 마저 읽고 싶다. 그러고 보니 게임을 안 한 지도 조금 오래됐다. 간만에 그쪽으로 마음이 동한다. 들어가서 맛만 보고 올까. 그때는 몰랐다. 그 맛이 가히 명인이 심혈 기울여 우려낸 사골 국물 맛일지는.


약 2주 만에 찾은 메이플 월드는 생각보다 더 심각한 상황이었다. 검은 마법사의 횡포가 이렇게나 극심했다니. 아뿔싸. 내가 현생에 가한 변화에 이런 나비효과가 찾아왔을 줄이야. 나는 메이플 월드를 수호하는 용사. 조민선에서 로그 오프하고 조굳건(Lv.216)으로 로그인한다.      


그리고, 나는 성공했다. 하나의 세계를 구원하는 것을.  


하지만 현실 세계에서는 실패했다. 내 정신이 아직 비몽사몽일 때, 내 이불을 비집고 들어와 자리하는 한 따뜻한 생명체. 나는 걔를 끌어안지 말았어야 했다. 그 포근한 털에 코를 묻었으면 안 됐다. 내가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을 때는 아침의 향기가 거센 햇빛에 증발해버렸을 때였다.  


어떻게든 몸을 일으켜보려고도 했다. 10초 셀 때까지 이불을 치우지 못한다면 나는 더 이상 ‘남자’이기를 포기한다고도 생각했다. 지난 2주간의 노력이 모두 물거품이 되는 것이라고 소리도 질러봤다. ‘정녕 내가 알던 찐따 같던 조민선이 맞냐? 그는 전설이다…’ 이 소리를 친구에게서 듣게 된 지가 고작 3일 전이라는 사실도 떠올랐다. 그리고는 깨달았다. 나는 찐따가 맞다는 것을….  


# 멋진 사람은 떠나간 자리가 깨끗한 법  


그렇게 3주간 지속된 나의 도전은 막을 내렸다. 힘겹지만 보람찬 날들이었다. 그렇게 많은 아침 공기를 들이마셨던 날들은 처음이었고, 달걀을 이렇게 많이 먹은 때도 이제껏 없었다. 그중에서 가장 와 닿았던 것은. 그 어느 때보다 풍성한 사랑을 어머니로부터 받았다는 사실이다. 아마도 이제껏 가장 많은 고기반찬을 먹은 시절로 기억되지 않을까 싶다,  


누군가가 지난 1월은 어떤 한 달이었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답할 것이다. “1월은 Fun하고 Cool하고 Sexy한 한 달이었다, 그것이… [약속]이니까… 음! (끄덕)”  


아래 표는 3주간에 내가 이뤄낸 것들을 보기 쉽게 나타낸 표이다. 원펀맨이 강해지기 위해 매일 팔굽혀펴기 100회, 윗몸일으키기 100회, 스쿼트 100회를 한 후 10km를 뛰었듯이. 내가 3주간에 한 노력이 객관화된 지표로 봐주면 될 것 같다.  


도전이 한번 끝난 시점에서, 나는 새로이 시작하는 것은 하지 않기로 했다. 옛말에도 그런 말이 있지 않은가. 박수칠 때 떠나라고. 난 충분히 박수를 받았다고 생각한다. 아무튼 받았다.  


멋진 사람은 떠나간 자리가 깨끗한 법이다. 3주간의 미라클 모닝에서 깔끔하게 손 털고 일어날 때가 되었다고 느낀다. 다음 타자는 편집위원(진) 허광영이다. 그럼, 이만.  


        



조민선

어질어질..하다 그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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