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함을 믿기에, 늘 최선을 다하는 것이 제 방식이었습니다.
유정 님과 처음 인연을 맺게 된 건 <노무 부트 캠프> 과정이었다. 당시엔 함께 교육을 듣는 구성원으로서 인사를 나누는 정도였지만,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나누게 된 건 이후 참여한 <HR 커리어 브랜딩> 교육 과정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첫 회차 때 우연히 바로 옆자리에 앉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대화를 시작하게 되었는데, 그때 나눴던 고민이 내가 당시 깊게 붙잡고 있던 고민과 크게 겹쳐서 유난히 기억에 남았다.
늘 교육이 끝난 후 바로 회사로 복귀하시는 모습 또한 또렷했다. 업무 일정이 빡빡한 가운데서도 교육 시간 동안만큼은 집중해서 임하고, 배운 내용을 놓치지 않으려는 태도에서 평소 일하시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그려졌다. 그 모습이 단순한 성향적 책임감이라기보다는 자기 일에 대한 애착과 명확한 주관에서 비롯된 것처럼 느껴졌다.
종화 님으로부터 유정 님이 ‘전형적인 ESTJ’라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내가 알고 있던 ESTJ의 전형적인 이미지만으로는 그를 설명할 수 없었다. 빠르고 명확한 의사결정력과 높은 실행력이라는 면도 물론 있으셨지만, 그보다 더 인상 깊었던 건 상황을 섬세하게 읽고, 관계 속에서 말의 결을 세심하게 조율하는 태도였다.
그 인상은 교육이 거듭될수록 자연스럽게 쌓여갔다. 과정 중간중간 나눴던 짧은 대화나 사례 공유에서도, 단순한 업무 역량이나 스킬 이상의 결이 묻어났다. 조직 내에서 일어나는 복합적인 맥락을 깊이 고민하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나 감정을 민감하게 읽어내는 감각이 느껴졌다. 단순히 ‘일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자신의 기준과 철학을 끊임없이 되짚어보는 사람이란 인상이 점점 또렷해졌다.
이후 트레바리 모임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독후감과 토론을 통해 개인적인 경험과 생각을 풀어내는 과정에서, 내가 경험하지 못했던 영역들까지 자연스럽게 엿볼 수 있었다. 흔히 경험하기 어려운 HRM의 여러 영역까지 직접 담당해 본 경험이 있으신 만큼, 본인의 언어로 풀어내는 사례나 관점이 단순한 독서 소감 이상의 밀도를 가지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이 분이 현장 경험을 어떻게 체화해 왔는지’, ‘일이라는 맥락을 개인의 태도로 어떻게 소화해 왔는지’가 더 깊이 궁금해지기도 했다.
짧은 대화와 교육, 그리고 이후의 자리들 속에서 형성된 인상은 분명했다. 단단한 책임감과 자기 일에 대한 애정, 관계를 섬세하게 살피는 감각, 그리고 배운 것을 자신의 방식으로 녹여내는 태도. 그래서일까, 앞으로 더 이야기를 듣고 싶어지는 분이었다.
N: 저희도 트레바리를 통해서 주기적으로 만나고 있지만, 이렇게 직접적인 대화를 나누는 건 또 오랜만이에요.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Y: 요즘은 몸이 좀 안 좋았던 시기가 있었어요. 과로로 꽤 아팠는데, 그 시간을 보내면서 처음에 이 질문지를 받았을 때와는 생각이 조금 달라진 것 같아요. ‘무엇이 나답게 만드는가?’, ‘나는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같은 질문을 병가 내고 일주일 쉬는 동안 더 깊게 고민하게 됐거든요. 그래서 오늘은 그냥 지금 시점에서 자연스럽게 말씀드려 볼게요.
N: 아프셨던 시간 동안 그런 고민이 많으셨군요. 어떤 생각들이 좀 정리되셨나요?
Y: 일단 저는 선한 사람이고 싶고, 봉사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 사람이에요. 근데 왜 제가 그런 사람이 되고 싶은지, 아직은 솔직히 잘 모르겠더라고요. 그걸 직업관으로도 요즘 많이 생각하고 있어요. 예전에는 그냥 사람을 좋아했고, 관계나 이런 쪽에 강점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솔직함', '진실됨', '진심', '섬세함', '긍정'… 이런 키워드들이 저한테 좀 많은 편이거든요. 그러다 보니 인사 일을 시작한 지도 벌써 8~9년, 거의 10년 가까이 되어가는데, 요즘은 자꾸 ‘내가 그렇게 사람을 좋아했던 이유가 뭘까?’ 이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저는 결혼은 했지만 아이는 생각이 없어요. 나중에 진짜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에게 봉사하고 싶은 마음이 커서요. 그래서 입양 같은 것도 한 번쯤 생각해 본 적이 있고요. 근데 이런 이야기는 친구들도 잘 모르거든요. 그냥 저 혼자 그런 생각을 해보고 있는 부분들이 좀 있어요.
N: 아까 ‘내가 사람을 좋아했던 이유가 뭘까?’ 고민하신다고 하셨잖아요. 그러면서 본인을 돌아보셨을 때, 주변에서는 어떤 모습으로 많이 봐주는 것 같으세요?
Y: 그래서 내가 어떤 사람일까, 주변에서는 나를 어떻게 볼까 고민을 좀 해봤어요. 이번에 질문 보고 지인들한테도 슬쩍 물어봤는데, 다들 저를 그냥 한마디로 ‘인싸’라고 하더라고요. 메타인지는 좋은 편이고, 긍정적인 사람이라는 건 저도 인정하는 부분인데, '내가 정말 인싸인가?' 싶기도 했고요.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저는 사람들한테 정말 진심으로 대했던 것 같아요. 그런 모습들이 자연스럽게 인맥으로 이어졌던 것 같고, 그래서 사람들이 저를 그렇게 보는 게 아닐까 싶어요. 그리고 요즘은 또 일에 대해서 계속 고민 중이에요.
N: 그럼 처음 질문지를 받았을 때와 지금 생각이 좀 달라졌다고 하셨는데, 요즘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궁금해요.
Y: 사실 질문지 보고 미리 써둔 것도 있었는데요, ‘신념이나 확신’에 대한 질문이 있었잖아요. 생각해 보니까 저는 예전부터 ‘뭐든지, 관계든 일이든 진심 없이 오래 할 수는 없다.’라는 게 저만의 신념처럼 자리 잡았어요.
10대, 20대 때부터 지금까지 쭉 그랬던 것 같은데요. HR 일을 하면서도 그런 마음으로 해왔던 것 같아요. 선배들이 가끔 ‘우리 HR의 미래’라고 장난스럽게 말하면, 저는 "저 그만둘 건데요?"라고 웃으며 말하기도 했거든요. 왜 그랬을까 생각해 보니, 결국 일이든 관계든 진심을 다하지 않으면 오래 버티기 어렵다는 마음이 있었어요.
'죽음'이라는 것도 저한테는 가까운 경험이었어요. 중학교 때 친한 친구가 사고로 세상을 떠났고, 어머니도 제가 아주 어릴 때부터 암 투병을 하셨어요. 다행히 지금은 완치가 되셨지만, 당시에는 위암 말기라서 "혹시 잘못되면 언니랑 둘이서 살아야 한다.", "혼자서도 살 수 있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라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라왔어요. 그때부터 ‘나는 당장 내일 죽을 수도 있는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던 것 같아요.
그런 경험들이 쌓이다 보니 죽음이라는 게 저한테는 무덤덤한 감각으로 남아 있고, ‘내일 죽어도 괜찮을 만큼 오늘 하루를 최선을 다하자.’, ‘후회 없는 하루를 살자.’는 마음으로 살아왔던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일에도, 관계에도 자연스럽게 진심을 많이 쏟게 됐고요. 그래서 주변에 사람이 많아지고, 인정도 받게 되었던 것 같아요.
N: 어릴 때부터 죽음에 대해 가까이 느끼셨다고 하셨고, 그래서 하루하루를 후회 없이, 진심을 다해서 살아오셨다고 했잖아요. 그렇게 지내다 보면 몸과 마음이 지칠 때도 많았을 것 같은데, 최근에도 그런 고민이 좀 드셨나요?
Y: 맞아요. 이번에 크게 아프기도 했고요. 요즘은 정신과도 다니고 있어요. 공황 증상이 생기고, 강박도 심해져서 밥 먹는 것조차 점점 힘들어졌어요. 남편이 권유해서 상담을 받게 됐는데, 상담 중에도 자연스럽게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어요.
그런데 그게 막 우울한 감정 때문은 아니었어요. 저는 늘 ‘오늘 하루 최선을 다해서 살자, 내일 죽어도 후회 없다.’라는 마음으로 살아왔거든요. 아마 그 마음이 쌓이다 보니 어느새 일에 좀 미쳐서 살고, 관계에도 진심을 다 쏟는 식으로 흘러왔던 것 같아요.
그래서 관계에서도 늘 앞뒤 재지 않고, 좋아하면 그냥 표현하는 편이에요. 예를 들면, 제가 니키 님이 좋다 싶으면 그냥 "좋다."라고 말하는 식이에요. 그러다 보니 주변에서는 저를 ‘인싸’라고들 하고, 자연스럽게 사람이 많이 모이는 분위기가 됐던 것 같아요. 누군가는 그게 조금 부담스러울 수도 있었겠지만, 또 누군가는 ‘나도 친해지고 싶었는데 먼저 표현해 주네.’ 하고 더 가까워지는 경우도 많았고요.
그렇게 진심을 다하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조금씩 강박처럼 변해갔던 것 같아요. 이번에 아프면서 쉬는 동안 그런 생각을 많이 했어요. ‘나는 죽음에 대해 덤덤한 사람이구나.’, ‘모든 관계와 일에 정말 너무 최선을 다해왔구나.’, ‘결국 아프게 된 것도 그 때문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리고 그동안 ‘나는 긍정적인 사람이야.’라고만 생각했는데, 요즘은 ‘꼭 그 신념을 끝까지 지키며 살아야 하나?’, ‘정말 이렇게까지 최선을 다해야만 하나?’ 하는 의문이 생겼어요. ‘사람들이 다 그렇게 후회 없이 사는 것도 아닐 텐데, 나만 이렇게 강박처럼 살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요.
저는 원래 에너지가 남는 걸 못 견디는 성격이에요. 종화 님도 제게 "유정 님은 에너지가 남으면 못 참는 사람 같아요."라고 하셨었는데요. 새벽 4~5시에 깨면 그냥 다시 자는 대신, ‘이 시간을 어떻게 써야 하지?’부터 고민하게 돼요. 러닝을 하거나 뭘 하든, 뭔가를 해야만 직성이 풀리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몸을 계속 혹사하게 됐고, 그러면서도 ‘오늘도 하루를 꽉 채워서 살아야겠다.’, ‘잠자는 시간 빼고는 미친 사람처럼 살아야겠다.’라는 식으로 달려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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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결국 크게 아프게 됐고, 이제는 ‘삶의 의미를 조금 더 작은 것에서부터 찾아야겠다.’, ‘조금씩 덜어내는 것도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N: 그렇게 ‘조금씩 덜어내는 것도 필요하겠다.’고 생각하시면서, 그동안 완벽하게 해내려는 태도 같은 것도 다시 돌아보게 되셨을 것 같아요.
Y: 네, 저 스스로도 완벽주의자였다는 걸 이번에 더 많이 느끼게 됐어요. 일할 때도 그렇고, 친구들도 저한테 "넌 화내는 걸 한 번도 못 봤다."라고 할 정도거든요. 초중고 친구들도 그렇고요. 저도 "나 성격 더러운 편인데?" 하고 웃긴 했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정말 사람한테 화를 잘 안 내요.
왜 그런가 생각해 보면, 그냥 ‘굳이 화를 낼 필요가 있을까?’, ‘내가 마음에 여유가 없어서 그런 건 아닐까?’ 싶더라고요. 남편이랑 연애하면서도 7년 동안 한 번도 싸운 적이 없었고요. 제가 예민한 편인데도 짜증을 거의 안 내요. 아마 그런 부분들이 저 스스로 완벽하게 감정을 통제하려 했던 모습이 아니었나 싶어요.
그래서 요즘은 ‘나는 너무 완벽하게 살려했던 건 아닐까?’, ‘삶의 의미는 뭘까?’ 그런 고민을 더 많이 하게 돼요. 그러면서도 ‘그래도 지금까지 살아온 나를 미워하진 말자.’, ‘조금 더 나를 사랑해 줘야지.’ 그런 마음도 생기고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가 요즘 가장 큰 고민이에요.
N: 정말 모든 면에서 진심이라는 게 계속 느껴졌어요. 저도 요즘 정신과를 다니고 있어서, 말씀하신 내용이 더 공감되기도 했고요. 가만히 있는 시간이 생기면 불안해지는 편이라서, 뭔가라도 계속 움직이게 되더라고요. 생각이 많다 보니, 오히려 그걸 줄이려고 또 다른 방식으로 저를 혹사시키는 부분도 있는 것 같아요.
그럼에도 결국 삶이라는 게 어쩌면 그런 고민과 회의감의 연속인 인 듯해요. 미래를 알 수 없는 만큼,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계속 생각하게 되고요. 그런 과정 속에서도 유정 님이 진심을 다해 살아오신 모습이 참 인상 깊었어요. 그렇게 조금씩 덜어내고, 균형을 잡아가려는 과정에서 요즘 느끼는 변화들이나, 앞으로 더 시도해 보고 싶은 부분이 있을까요?
Y: '직업'과 관련된 질문이 있었잖아요. 그 질문을 처음 받았을 땐, '제대로 하고 싶고, 잘하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었거든요. 근데 요즘은 크게 아프고 난 직후여서인지 몰라도 '일 때문에 내가 망가지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나는 어떤 가치를 두고 살아야 할까?' 하는 고민까지 가더라고요. 내가 태어난 이유가 뚜렷한 것도 아니고, 그냥 살아가는 거라면, 결국 스스로 어떤 가치를 두고 살아가느냐가 중요한 것 같았어요. 저한테는 결국 '선함'이라는 가치가 남더라고요. 봉사하는 것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편이고, 남을 돕는 걸 불편해하지 않으니까요.
그러면서도 '그동안 남을 돕느라 나는 나를 잘 못 돌본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래도 이 일을 잘하고 싶은 마음은 여전한데, 나를 혹사하지 않은 선에서 어떤 밸런스를 가져야 할지, 나만의 무게 중심을 어떻게 잡아야 할지가 요즘 가장 큰 고민이에요. 예전에는 '최선을 다해서 살자, 내일 죽어도 여한 없이 살자'는 마음으로 살았는데, 그렇게 살다 보니 몸이 너무 아프더라고요. 그래서 요즘은 조금 더 덜어내는 쪽으로, 그리고 약간은 이기적으로 생각해 보려고 하고 있어요.
이번 주 쉬면서 그런 걸 더 많이 느꼈어요. 관계도 많이 덜어내고 있고, '할까 말까' 싶으면 요즘은 '안 한다' 쪽이에요. 예전에는 뭐든 무조건 'Do'였거든요. 'Don't'가 아니고 'Do, Do'였는데요. 이제는 '굳이 해야 하나?', '가고 싶지 않으면 안 가도 되지.' 그런 식으로 생각하게 됐어요. 관계도 마찬가지고요.
그래서 요즘은 그냥 쉬고 싶은 마음이 커요.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쉬고 싶은 거예요.
N: 그런 과정이 정말 필요한 것 같아요. 그동안 말씀하신 것처럼 너무 열심히 해오셨으니까, 오히려 지금은 실질적으로 나를 위한 시간이 될 수도 있겠구나 싶었어요.
말씀하신 것처럼, 삶과 일 사이에서 나만의 균형을 잘 잡는다는 게 참 쉽지 않은 일이잖아요. 그래도 일상에서부터 그런 시도를 해나가는 게 중요한데, 저는 지금 충분히 잘하고 계시다고 생각해요.
Y: 네, 그러다 보니 요즘은 오히려 과거 생각도 많이 하게 되더라고요. '회고'라는 말이 맞나 싶긴 한데, 그동안은 그냥 '나는 최선을 다해 살았으니까 후회는 없어.'라고만 생각했었거든요.
원래는 십몇 년 동안 매일 일기를 쓰던 사람이었는데, 결혼하고 바빠지면서 자연스럽게 안 쓰게 됐어요. 그러다 이번 병가 기간 동안 돌아보게 됐는데, '나 되게 자만하게 살았던 건 아닐까?' 싶더라고요. 최선을 다했다고 해서 늘 최고의 선택은 아니었는데, 그땐 그렇게까지 생각하지 못했으니까요.
그러면서 요즘은 '신념을 너무 갖지 말자.'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신념이 강하면 오히려 타인을 그 틀 안에 가두게 되는 것 같아서요. 그냥 뇌를 빼고 살자, 덜 생각하자 하는 마음이에요. "나 너 싫어." 하면 "아, 싫구나.", "밥 안 먹어." 하면 "안 먹는구나.", 그냥 그렇게 받아들이려고요.
그런 마음이 더 커진 데는, HR 일을 하면서 많이 느끼는 것도 있어요. 아무리 사람을 좋아해도, 결국 인간은 선하지 않고, 이기적이고, 개인주의적이라는 걸 자꾸 보게 되니까요. 그래서 이제는 그냥 나를 좋게 봐주는 사람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만 편하게 응원해 주자는 생각이에요.
결혼도 제 생각이 바뀌는 데에 영향을 많이 줬어요. 남편이 저랑 워낙 반대 성향이라서요. 저는 치열하게 사는 편인데, 남편은 '안 돼도 괜찮지 않아?' 이런 마인드거든요. 같이 살다 보니 저도 어느 정도 내려놓게 되는 부분이 생기더라고요.
그런데 또 이번에 몸을 너무 혹사하다 보니 면역력이 떨어져서 알레르기가 심해지고, 호흡기로까지 왔거든요. 병원에서 '잘못 방치하면 죽을 수도 있다'는 얘기까지 듣고 나니까, 갑자기 '내가 왜 이렇게까지 열심히 살았지?', '무엇을 위해 이렇게 살아왔지?' 하는 생각이 계속 들었어요.
반복되는 듯하지만 요즘은 정말 '나는 무슨 가치를 가져야 할까?', '신념을 조금 내려놓아야겠다.' 하는 고민을 많이 하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 오히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가져보려고도 하고 있어요.
N: 그런 시간, 정말 잘 선택하신 것 같아요. 삶에 있어서 잠깐 쉬어가고, 나를 돌아보는 시간은 꼭 필요하죠.
Y: 무엇보다 요즘 제 인생에서 제일 재미있는 게 '아무것도 안 해보기'예요. 진짜 한 번 아무것도 안 해볼까 싶어서, 하루를 그냥 비워두고 아무것도 안 해보는 날로 정해 보고 있어요. 핸드폰도 아예 안 보고, 일 생각도 아예 안 하고요.
근데 또 웃긴 점이, 그러면서도 ‘명상해 볼까?’, ‘책 읽어볼까?’ 자꾸 또 'Do' 쪽으로 가게 되더라고요. 이건 아니다, 정말 아무것도 안 해보자 싶어서 요즘은 그냥 누워만 있어요.
제가 워낙 스케줄을 빡빡하게 채우는 스타일이라서, 아무것도 안 하는 걸 해본 적이 거의 없거든요. 그런데 막상 아무것도 안 해도, 아무 일도 안 일어나더라고요.
N: 맞아요, 저도 평소에 뭔가 늘 계획대로 움직이려는 편이라서, 가끔 이렇게 빈 시간을 보내면 생각보다 훨씬 괜찮더라고요. 그래서 그런 시간들이 더 많이 필요하단 생각이 들어요.
N: 몇 개월 전에 이직하셨잖아요. 이직하신 곳은 어떠세요?
Y: 예전에는 IT 쪽에 있었는데, 이번엔 제조, 건강기능식품, 화장품 D2C 업계 쪽으로 오게 됐어요. 지금은 마음이 꽤 편한 편이에요.
아무래도 최근에 좀 쉬면서 그런 것도 있지만, 이번엔 그냥 '내 일만 잘하고, 괜히 신경 쓰지 말자'는 마음으로 다니고 있거든요. 입사한 지 두세 달밖에 안 됐으니 모르는 것도, 못하는 것도 당연하잖아요. 그런데 아무도 뭐라고 하는 사람도 없는데 제가 괜히 지레 겁먹을 필요는 없겠다 싶더라고요. 다들 잘하고 있다고 인정해 주고 있는데, 괜히 제가 불안해할 필요는 없겠다 싶어요.
그리고 요즘엔 그런 생각도 들어요. '어디든 일할 곳은 있겠지. 꼭 회사가 아니더라도 아르바이트라도 하면 돈은 벌 수 있겠지.' 어차피 지금 당장 빚이 있거나 급하게 돈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요. 괜히 조급해할 필요는 없겠더라고요. 그래서 그런지 지금은 회사 스트레스가 거의 0에 가까운 것 같아요. 저한텐 이런 상태가 처음이에요.
N: 일단 할 수 있을 만큼만 딱 해놓고, 나머지는 좀 쉬는 타이밍을 가지는 연습을 하고 계신 건가요? 이전에 리드 경험도 있으셨잖아요.
Y: 네, 예전에는 리드를 맡은 적도 많았고, 책임감이 강한 편이었어요. '일을 잘한다는 평판을 받고 싶다.', '제대로 해야 한다.' 이런 생각이 되게 컸던 것 같아요.
그런데 요즘은 감정도 많이 정리하게 되면서, '내가 다 책임질 필요는 없잖아.', '내가 아니어도 회사가 망하지는 않겠지.' 이런 생각을 해요. 뇌를 좀 비우는 연습도 하고 있고요. 생각을 비워보려고 노력 중이에요. 그래서 누가 "그 회사 일 엄청 많다던데?", "야근 많지 않아?" 이렇게 물어보면, 그냥 "별생각 없어.", "괜찮아." 이렇게 대답하게 되더라고요. 예전 같으면 엄청 신경 썼을 텐데요.
그런 제가 좀 낯선지, 요즘 제 주변에서는 "너 힘든 거 아니야?" 이렇게 물어보는데, 저는 오히려 "나 완전 나이스하다." 이렇게 말해요.
N: 그게 진짜 쉽지 않은 건데, 정말 잘하고 계신 것 같아요. 요즘 그런 마음가짐으로 지내보니, 스스로 느껴지는 변화도 좀 있으세요?
Y: 지금은 회사에서 아무 판단도 안 하고, 신경도 크게 안 쓰려고 해요.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도 중요하지 않고요. '그냥 살아보자.' 싶은데, 막상 해보면 또 쉽진 않더라고요. 그래서 '아무것도 안 해보자'면서 조금씩 쉬는 연습도 하고 있어요.
그래도 막상 일할 때는 또 신경이 쓰이긴 해요. 남편이 "그래도 그런 말 하는 건 이미 다 해놓고 그러는 거 아니냐?"라고 하는데, 맞는 말이죠. 이제는 신경 써서라도 길게 가고 싶으니 딱 80% 정도만 하려고 해요. 더 낮추고 싶긴 한데 아직은 80이 최선이에요. 나중엔 60%까지도 낮춰보고 싶어요.
예전에는 회사를 너무 열심히 다니고, 책임도 과하게 지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다 보니 건강이 확 나빠졌었거든요. 그게 쌓이고 쌓이다가 이번에 확 터진 것 같아요. 그래서 요즘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데는 이유가 있겠지.’, 진짜 생각을 덜어내려고 해요. 근데 그게 정말 어렵더라고요. '뇌 빼고 생각하기'라는 게.
N: 맞아요. 어쨌든 그런 과정에서 본의 아니게 내 주관이 먼저 나오게 되니까, '아, 이러면 안 되지.' 싶다가도 뇌를 빼고 생각하기가 정말 쉽지가 않더라고요.
Y: 그래서 저 모니터 밑에 '아무것도 안 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문구를 적어놨어요. 근데 좀 작게 적어놨어요. 남들이 보면 안 되니까요. (웃음) 그냥 작은 포스트잇에 프린트해서 붙여놨어요. '아무것도 하지 말기.' 이런 것도 써놓고요. 그러다 보면 좀 괜찮아지지 않을까 싶어요.
N: 약간 자기 암시 같은 것도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저도 핸드폰 케이스 뒤에 문구 하나 붙여놨거든요. 보이시나요? '그래도 해야지, 어떡해.' 이렇게 적혀 있어요.
저도 작년 하반기부터 비슷한 감정을 많이 느껴서, 그때부터 조금씩 덜어내는 연습을 하고 있거든요. 너무 깊이 생각하면 오히려 제가 힘들더라고요. 어쨌든 주어진 일은 해야 하기도 하고요. 그래서 그냥 '그래도 해야지, 어떡해.' 하면서 마음을 정리하고 넘기려고 해요. 말씀하신 것도 그런 맥락에서 비슷한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Y: 뭔지 알 것 같아요. 지금도 해결이 안 되는데 해야 하는 일들은 계속 많잖아요. 생각을 덜어내는 것도 그렇고, 쉬는 것도 진짜 '쉴 줄 아는 사람이 쉬는 거다.'라는 말처럼, 그런 것도 좀 연습이 필요한 것 같아요.
그리고 제가 최근에 들었던 말 중에 인상 깊었던 게 있었어요. 누가 저한테 그러더라고요. "너는 계속 걷고 있는데, 꼭 뛰어야지만 앞으로 나간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 그 말이 되게 와닿았어요. 사실 안 멈추고 계속 걷고 있는 것도 대단한 건데, 나는 자꾸 뛰려고만 했던 것 같더라고요. 제가 예전에 육상 선수였어서 그런가 그래서 자꾸 그렇게 뛰는 건가 싶기도 했어요.
운전으로 비유하면, 후진만 아니면 다 전진인데, 나는 꼭 액셀을 밟아야지만 가는 줄 알았던 것 같아요. 그냥 가만히 있어도 앞으로 가고 있는데, 계속 더 빨리 가야지, 더 빨리 가야지 하다가 결국 나를 혹사시키게 된 게 아닌가 싶어요. 사실 성격상 파킹까지는 못 할 것 같고, 후진도 절대 못 할 것 같은데, 그래도 중립까진 한번 가봐야겠다, 운전으로 치면 그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싶어요. 어쩌면 후진도 괜찮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들고요.
그리고 이 얘기는 거의 처음 하는 건데, 최근에 제가 세운 작은 계획 중 하나가 있어요. 지금 만으로 서른둘인데, 2~3년 안에 어학연수를 한번 다녀오려고 생각 중이에요.
N: 오, 어학연수라니! 그런 계획 세우신 거 정말 멋있는 것 같아요. 약간 그런 건 때가 있는 것 같더라고요. 누군가는 자리 잡을 만큼 잡아놓고도 또 갑자기 새로운 도전을 하기도 하고요. 저도 좀 경험주의자라서, 안 해보면 모르는 거잖아요. 물론 '아무것도 안 하면 아무 일도 안 일어난다.'라는 것도 맞지만, 그래도 저는 뭔가 안 하고 후회하는 것보다 해보고 후회하자는 쪽이에요. 그래서 어학연수 가는 것도 되게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해요.
Y: 너무 뜬금없는 얘기일 수도 있지만, 평생 후회할 것 같은 게 딱 그거 하나인 것 같더라고요. 근데 어학연수가 35살까지 가능하더라고요. 저는 그걸 몰랐어요. ‘어? 나 벌써 못 가는 줄 알았는데?’ 이랬거든요. 30살까지만 되는 나라들도 있지만, 그래도 대학 프로그램 쪽은 35살까지 된다고 해요.
그러다 보니 요즘 고민이 많아요. 지금 회사가 정말 편하고 좋은데, 그걸 포기하고 가야 하나? 또 한편으로는, 30대 중반쯤에 한 번쯤 다른 선택을 해보는 것도 의미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그래서 진짜 많이 알아보고 있어요. 호주 쪽으로 한 2년 정도 생각하고 있고요. 남편은 조금 어리둥절해했지만, "뭐, 하고 싶은 건 다 해."라고 해줘서 더 고민 중이에요.
제 삶에서 참 뜬금없는 시기 같긴 한데, 그래서 더 재밌어요. (웃음)
N: 맞아요. 저도 최근에 어떤 이야기 하나를 읽는데, 제목이 '인생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였거든요. 어떤 사람의 친구가 뉴욕에서 2년 동안 바리스타 공부를 하다가 한국으로 돌아온 후 추어탕 집을 차렸대요. 흐름은 같은 요식업이지만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 거죠.
Y: 아니, 그게 무슨 흐름이에요. (웃음)
N: 그러니까요! 그리고 제 이야기를 조금 드려보자면, 저도 사실 HR을 시작하게 된 건 정말 생각지도 못했던 거였어요. 대학교 졸업하고 1년 정도 해외 연수를 다녀온 뒤에 편입을 준비했거든요. 근데 그게 안 됐어요.
그래서 '이제 뭐 해 먹고살아야 되지?' 고민하다가 사무직 보조 알바를 시작하게 됐는데, 거기가 외국인 채용 전문 컨설팅 회사였어요. 처음에는 단기 계약직으로 사무 보조만 하다가, 계약 끝날 무렵에 정규직 오퍼를 받았어요. 영어도 할 줄 알고, 회사가 돌아가는 시스템도 어느 정도 아니까 한 번 리크루터를 해보는 게 어떻냐고.
그때 당시엔 뭘 하고 싶은지도 모르겠고, 그냥 '일하면서 영어라도 더 늘려보자.'는 생각으로 시작했거든요. 근데 막상 채용 프로세스 전체를 경험해 보니까 생각보다 너무 재밌는 거예요. 그래서 '이걸 좀 더 깊게 파보자.' 해서 HRM까지 확장하게 됐고, 여기까지 오게 됐죠.
지금도 사실 저도 '뭘 해 먹고살아야 하지?' 싶은 마음이 있어요. 앞으로 어떻게 될지도 모르겠고요. 근데 또 그게 인생인 것 같아요. (웃음)
Y: 저도 어느 날 갑자기 "아무것도 안 할 거야. 일도 안 할 거야. 인간관계도 다 필요 없어. 어학연수나 가야지!" 이렇게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웃음)
현실적으로 생각해 보면 학비나 생활비 등을 계산했을 때 거의 1억 정도는 생각해야 하더라고요. 그래도 '다녀와서 홈리스가 되더라도 괜찮지 않을까?' 싶고요. 또 그 과정에서 어떤 선택지가 생길지, 삶의 방향이 또 어떻게 바뀔지 모르니까요. 그런 도전하는 것도 꽤 좋아하는 성향인 것 같아요.
N: 그래서 약간 유정 님 얘기 들으면서도 비슷한 생각 들었어요. 인생이 정말 계획대로 되는 건 아닌 것 같고, 어느 날 갑자기 방향이 확 바뀌기도 하고요. 저도 이번에 대학원은 아쉽게 안 됐지만 언젠가는 들어가게 되겠지 싶고, 그러다 보면 나중에 전공을 살려서 갑자기 또 '회사 그만두고 상담 센터 차려볼까?' 이런 생각도 들고요. (웃음)
Y: 저도 그래요. 남편한테도 맨날 "죽기야 하겠어?" 이러면서 농담처럼 말하곤 해요. (웃음) 근데 또 현실은 내일 당장 죽을 수도 있는데, 동시에 노후 준비도 해야 하고. '뭐 어쩌라는 거야?' 싶을 때가 많아요. 주변에 응급실에서 근무하는 간호사 친구들도 "너무 열심히 살지 마.", "돈 너무 모으지 마." 이런 얘기 자주 해주고요.
결국은 '돈 아무리 많아도 죽으면 끝인데.', 그렇다고 또 아무 준비 없이 살 수도 없으니까, 애매한 거죠. 저희 또래가 진짜 딱 그 고민하는 시기인 것 같아요.
저는 주변에 결혼 안 한 친구들도 많고, 외로움을 별로 안 타는 친구들도 많거든요. 그러다 보니 ‘굳이 결혼해야 하나?’, ‘인생 자체가 지금도 베팅인데, 또 누군가에게 베팅까지 해야 하나?’ 이런 생각도 들고요. 만나도 "만약 내일 죽으면 뭐 할래?" 막 이런 얘기도 자주 해요. (웃음)
N: 맞아요. 결국 돌고 돌아서 ‘뭐 해 먹고살지?’ 이 고민으로 다시 돌아오는 것 같아요. 제 주변도 마찬가지예요. 저도 남자친구는 있는데 저보다 네 살 어리거든요. 직무 전환한 지 이제 1년 반 정도라서 아직은 커리어에 더 집중할 시기이고, 저도 비슷하다 보니 그런 흐름을 서로 맞춰가고 있는 것 같아요.
Y: 우리 사회가 여전히 정해진 루트가 강한 것 같아요. 결혼을 해야 아이를 낳을 수 있고, 미혼으로 출산은 좀 상상하기 힘들고요. 외국은 그런 게 훨씬 유연하던데, 우리나라는 아직도 너무 오래된 문화가 남아 있는 것 같아요. 그런 것도 조금씩 바뀌면 좋겠어요.
N: 아무래도 오래 걸리겠죠, 바뀌더라도. 요즘 AI 시대가 되면서 기술이 워낙 빠르게 발전하잖아요. 사람들한테 도움이 되는 부분도 많지만, 오히려 스스로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질까 봐 걱정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지금 자라는 아이들이 뭔가 스스로 사고하는 힘이 점점 줄어드는 게 제일 우려된다고 하더라고요. 어릴 때부터 AI가 다 해결해 주는 환경에서 자라니까요.
Y: 진짜 앞으로는 신경 쓸 게 더 많아질 것 같아요. 조직 문화도 결국 그런 흐름에 맞춰서 또 바뀔 거고, 앞으로 세상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겠지만 그런 부분은 좀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요즘은 뭐든 GPT 같은 데 물어보면 답이 나오니까, 틀린 답이라도 내가 생각 못 했던 것까지 제시해 주니까 그냥 그대로 따라가는 경우도 많고요. 앞으로는 이런 경향이 더 심해지지 않을까 싶어요. '이것까지 내가 생각을 해야 되나?' 싶기도 하고, 그래서인지 좀 더 흘러가는 대로 사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들고요.
N: 말씀을 듣다 보니까, 유정 님은 어떤 계기로 HR 일을 시작하셨는지도 궁금해지네요. 처음엔 어떤 일을 하셨던 거예요?
Y: 저는 사실 따로 취업 준비를 하진 않았어요. 운이 좋게 1년 동안 여러 직무를 경험하게 됐거든요. 영업, 대기업 물류팀, 창업진흥원에서 액셀러레이터 관리, 건설 기술 연구원 보조, 관광공사 인턴까지… 정말 이것저것 많이 해봤어요. 그러다 맥도날드에서 리크루팅 업무를 맡으면서 처음으로 사람 관리라는 걸 경험하게 됐는데, 주변에서 "네가 사람 관리 잘하는 것 같다, 인사 쪽이 잘 맞을 것 같다."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그때는 인사팀이라는 게 뭔가 멋있어 보이기도 하고, (웃음) 자연스럽게 관심이 생겨서 시작하게 됐어요. 그러면서 지금까지 9년 정도 HR 일을 하고 있네요. 인사 쪽에서는 HRM 업무 거의 다 해본 것 같아요. 구조조정부터 폐업 신고까지, 정말 다양한 상황들을 경험했어요.
처음엔 이 일에서 의미를 많이 찾으려고 했어요. 조직이 잘 돌아가야 하고, 사람들이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고, 리더가 안정적이어야 하고… 그런 걸 뒷받침하고 싶었거든요. 근데 요즘은 생각이 좀 달라졌어요. 회사라는 공간 자체가 워낙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 곳이잖아요. 요즘은 약간 ‘특수 상황을 가진 학교’ 같다고 생각해요. (웃음)
내가 뭔가를 이해시키거나 바꾸려 하기보다는, 그냥 ‘봉사하는 마음’으로 임하려고 해요. 일과 나를 분리해서, 주어진 일은 하되 그 외적인 의미는 회사 바깥에서 찾자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N: 좋은 마인드인 것 같아요. 최근에 겪은 일들 떠오르면서, 굳이 일의 의미에서 찾지 않겠다는 것도 정말 공감돼요.
Y: 제가 예전에 장애인 채용 사업장을 운영한 경험이 있는데, 그때도 장애인 분들을 관리하면서 '아, 이렇게 마음을 다르게 가져가면 내가 더 편해지겠구나.' 하는 걸 많이 느꼈거든요. 그 생각을 지금 회사에서도 자연스럽게 이어가려고 해요. 그러니까 '내가 하는 일이 누군가를 돕는 일이다.'라고 생각하니까 마음이 훨씬 가벼워지더라고요.
N: 진짜 일과 삶의 의미를 조금 분리해서 바라보는 것도 정말 좋은 것 같아요. 마인드 개선에 정말 많이 도움 되네요!
그럼 이 일 자체는 좋아서 시작하신 걸까요? 돌아보면 잘하는 일 쪽에 더 가까우신 것 같아요.
Y: 맞아요. 저는 아무래도 잘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원래는 좋아하는 일을 잘하게 만들고 싶다는 쪽이었는데, 지금은 그냥 잘해서 하는 것 같아요. 주변에서도 잘한다고 해주고, 큰 에너지를 쓰지 않아도 좋은 평을 들으니까요. 그러면 ‘그냥 내가 잘하는 일이구나.’,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다면 그땐 열심히 해보자.’ 정도의 마음이에요. 근데 이게 평생 직업은 아닐 것 같다는 고민은 늘 있고요. 좋아하는 일은 아직 못 찾은 것 같아요. 솔직히.
초반에 같이 입사했던 인사팀 동기들이랑 지금도 친한데, 그 친구들은 '너는 좋아하는 일을 잘하게 된 사람'이라고 표현해 주더라고요. 저도 어느 정도 동의했던 게, 전 직장에서 직원들 리프레시시켜주려고 ‘지구 오락실’ 같은 게임을 직접 만들어서 MC를 봤었거든요. 사람들이 정말 좋아하니까 그 모습이 되게 뿌듯하고 감동스럽더라고요. ‘내가 이런 걸 좋아하나?’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요즘은 조직문화 쪽이 많이 주목받는 분위기잖아요. 저는 지금 직접 그 업무를 하고 있진 않지만, 이번에 아프기 전에 회사 워크숍에서 또 ‘유정이네 오락실’이라는 이름으로 게임 MC도 봤어요. 그게 또 너무 재밌는 거예요. ‘아, 내가 레크리에이션 강사를 좋아하는 건가?’ 싶기도 하고요. (웃음) ‘그냥, 좋아하는 걸 하고 있나 보다.’, 그런 생각도 요즘은 조금 들었어요.
N: 그러면서 잘하는 일이면서도 어느 정도 좋아하는 부분도 있고, 또 일과 삶의 균형도 계속 찾아가고 계시잖아요. 그럼 직업을 통해 이루고 싶은 목표 같은 건 어떤 게 있을까요?
Y: 저는 그게 있었어요. 소외되는 사람이 없는 조직을 만들고 싶다, 그런 생각이요. (웃음)
어떤 친구는 저한테 "너 잔다르크야?" 이러기도 했는데요. 진짜 심리적 안전감이 있는 조직을 만들어보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예전에 되게 오만했던 시절에 자기소개 제목을 ‘최고의 복지는 인사팀 오유정이다.’ 이렇게 썼던 적도 있었거든요. 근데 그걸 진짜 실천하려고 했던 것 같아요.
조직이라는 게 결국 사람들 관계 속에서 돌아가잖아요. 저는 그 안에서 소외되는 사람이 없도록, 그런 환경을 좀 설계하고 싶은 마음이 여전히 있어요. 주변에서는 "뭘 그렇게 다 안고 가려고 하냐, 버릴 건 버리고 가야지." 하는 얘기도 하는데요. 저한테는 ‘그래도 어떤 건 포기할 수 없다.’라는 마음이 좀 있어서요. (웃음)
그래서 요즘 직업적으로 생각하면 제일 큰 목표는 역시 그런 쪽인 것 같아요.
N: 커리어 브랜딩 1회 차 때 유정 님이 "이 일을 평생 하지는 않을 것 같다."라고 하셨었잖아요. 그때 ‘나만의 사업’도 한 번쯤 생각해 보기로 했었다고 하셨는데, 그건 지금도 비슷한 생각이신가요?
Y: 네, 저만의 브랜딩이나 방향도 계속 생각 중이에요. 그런데 그게 회사 안에서 가능할지, 밖에서 하게 될지는 잘 모르겠어요. 회사에서는 아무래도 주어진 일을 우선으로 해야 하니까요.
제가 이루고 싶은 게 정말 ‘소외되지 않는 사람들을 위한 뭔가’라면, 그게 진짜 봉사 쪽일 수도 있겠다 싶어요. 그래서 요즘은 어학연수도 간호 쪽으로 가볼까 생각하고 있거든요. 평생 쓸 수 있는 기술이기도 하고 배워두면 좋으니까요. 주변에서는 HR 10년 하다가 갑자기 의료 쪽으로? 하고 조금 의아해할 수도 있지만, 저도 스스로 궁금해요. 어떻게 연결될지. 니키 님이 얘기하신 것처럼, 경험해 보고 또 막상 가서 안 맞으면 금방 돌아올 수도 있고, 반대로 ‘나는 왜 이걸 이제 했지?’ 하면서 빠져들 수도 있을 것 같고요. 지금은 그런 흐름인 것 같아요.
요즘 제게는 되게 중요한 시기인 것 같아요.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 시기이기도 하고요. 계속 생각이 바뀌고 있어요. 니키 님은 워낙 생각이 많으셔서 그게 본인의 단점이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저는 한 편으로는 그게 부럽기도 해요. 저 자신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해본 적이 없거든요. 그동안 ‘내가 뭘 좋아하지?’, ‘나는 어떤 사람이지?’ 이런 걸 진지하게 생각해 본 건 정말 얼마 안 됐어요.
그래서 커리어 브랜딩이나 인터뷰 질문지를 보고도 ‘아, 이런 질문은 나한테 참 새롭게 다가온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질문들이었거든요.
N: 지금 말씀 들으니까, 정말 여러 가지 면에서 기로에 놓여 있는 시기 같아요. 어떻게 나눠드릴까요? 제 뇌의 일부라도 이렇게… (웃음)
저도 작년부터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내가 이걸 계속하고 싶은 건가?’ 그 생각을 하다 보니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자꾸 다른 질문으로 이어지게 됐어요. 당시에 단기적으로 활동했던 커뮤니티가 있었는데, 그곳에서 만났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에 대한 확신이 되게 강하신 분들이 많았거든요. ‘어떻게 저렇게 자신에 대해 잘 알지?’ 그런 걸 옆에서 보다 보니까 저한테도 영향을 줬던 것 같아요.
앞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예전엔 저도 캘린더가 빼곡하게 차 있어야 마음이 놓였거든요. 그런데 점점 몸이 너무 힘들더라고요. 정신력으로는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몸이 신호를 보낸다는 건 그만하라는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직은 저도 잘 모르겠지만, 어떻게 보면 꽤 중요한 시간이지 않을까 싶어요.
Y: 그럼요. 무엇보다 건강이 중요해요, 정말. 그리고 다음 트레바리는 좀 다른 주제를 해볼까 고민 중이에요. 문화나 예술 쪽은 제가 잘 몰라서, 오히려 그런 쪽으로 아예 문학 같은 걸 해볼까 싶기도 하고요. 지금까지는 일과 연결된 주제들을 다뤄왔던 것 같아서, 토요일까지 일 관련 인사이트를 얻으려는 나 자신을 보면서 '이래도 되나?' 싶더라고요. 요즘은 오히려 '나 자신을 좀 더 알고 싶다'는 쪽으로 관심이 옮겨간 것 같아요. (웃음)
그리고 니키 님께도 추천드리지만 '아무것도 안 하기 챌린지'도 계속해 보도록 해요, 우리. 제가 틈틈이 리마인드해 드릴게요. (웃음) 모니터에 작게라도 포스트잇으로 가시화해서 적어두면 의외로 효과 있더라고요.
N: 감사해요, 추천해 주신 거 해볼게요! (웃음)
N: 그럼 다음 질문을 드릴게요. 유정 님은 스타트업 쪽에서 오래 계셨잖아요. 요즘은 스타트업도 예전보다 많이 안정적이긴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스타트업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들이 있잖아요. 그럼에도 계속 스타트업 신을 선호하시는 이유가 있을까요?
Y: 그렇죠. 지금은 스타트업 쪽에서 훨씬 오래 있었어요. 예전엔 중견·대기업에서 2~3년 정도 있었고, 스타트업 신에서는 벌써 6년 정도 있으니까… 솔직히 다시 돌아가긴 좀 어려울 것 같아요.
사실 저도 스타트업을 선호한다고까지는 생각하지 않았는데, 되돌아보면 저한테 잘 맞는 면이 있었던 것 같아요. 저는 의견을 내야 직성이 풀리는 스타일인데, 큰 조직에서는 그게 쉽지 않잖아요. 그냥 시키는 대로 해야 하고, ‘왜 이걸 해야 하죠? 정말 이게 최선인가요?’라는 질문을 던지기도 어렵고요. 그런 면에서 스타트업은 확실히 의견을 낼 수 있고, 의사결정에 제 의견이 반영될 여지가 크다 보니 좋았어요. 그런 게 쌓이면서 오히려 이제는 중견이나 대기업 쪽으로는 다시 못 가겠다 싶더라고요.
다만, 요즘엔 또 고민인 게, 저는 이제 좀 수동적인 사람이 되고 싶은데, 주도적으로 해온 삶이 길다 보니 그게 쉽지가 않더라고요. 그리고 솔직히 스타트업 출신이 중견이나 대기업에서 선호도가 높지도 않아서, 이제 직무나 회사 자체를 크게 바꾸긴 어렵겠다는 생각도 들고요. 그래서 지금 회사는 거의 ‘마지막 회사’라는 마음으로 다니고 있어요. 다른 일을 시작하기 전까지는 좀 돈을 모으는 시기로 보고 있고요.
주변에서는 “너 그다음엔 회사 차릴 것 같아” 이런 얘기도 하는데, 저는 대표까지는 하고 싶지 않아요. (웃음) 올해 초까지만 해도 ‘내 브랜딩으로 뭔가 해볼까?’ 생각도 했는데, 요즘은 오히려 ‘한국에서 계속 살아야 하나?’ 이런 생각까지 들어요. 그냥 하고 싶은 거 있으면 해 보자, 너무 깊게 고민하지 말자, 약간 욜로 같은 마음이 생긴 것 같기도 하고요.
N: 누구나 그렇듯이 유정 님도 방향성을 찾아가고 계신 과정이시네요. 저도 주변 친구들 보면 비슷한 고민들을 많이 하는 시기라 그런지 공감이 많이 돼요. 왜, 나이대마다 오는 고민들이 있잖아요, 20대 때랑 30대 때 또 다르고요.
만약에 20억을 받고 20살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어떠실 것 같아요? 기억도 그대로 가지고 가고, 내가 그동안 선택했던 것들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지만, 20억은 생기는 거죠.
Y: 사실 돌아가고 싶은 생각은 크게 없긴 한데, 또 20억이니까 조금 당기긴 하네요. 만약 “20살로 돌아갈래, 그냥 20억 받을래?” 하면 당연히 20억 받을 것 같은데… 20억도 주고 20살로 가라? 그럼 바로 가죠, 당연히! 삶도 달라질 거고요. 게다가 요즘은 몸이 녹아내리는 느낌이라 피부 관리부터 다시 시작할 것 같아요. (웃음)
무엇보다 그동안 정말 좋았던 사람들 다 찾아가서 “우리 친구 하자!"라고 할 거예요. 예를 들어, 니키 님은 저를 모르는데 제가 막 니키 님에게 "니키, 니키. 우리 친구 될 거임!" 이러고 (웃음), 남편한테도 찾아가서 “우리 결혼할 거야, 지금 집 사놔야 돼, 나중에 후회할걸?” 이러면서요. (웃음)
상대방은 이 사람은 뭐지, 싶을 수도 있지만 그런 상상하면 괜히 재밌더라고요. 정말.
N: 생각만 해도 재밌네요. (웃음) 그럼 반대로, 지금 상황에서 유정 님이 그동안 쌓아온 모든 지식과 기술을 다 잃어버린다면 어떠실 것 같아요?
Y: 그건 너무 슬픈데요… 최선을 다해 살아왔는데 그게 다 사라진다고 하면 허무할 것 같아요.
사실 이 질문이 제일 고민됐어요. ‘그걸 잃었다고 생각해야 하는 건가? 그럼 왜 잃게 됐을까?’ 이런 생각도 들고요. 그래도 만약 그 자리에 새로운 걸 채울 수 있는 여유가 있다면 또 긍정적으로 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만큼 뇌가 맑아졌다고 하면 오히려 새로운 분야의 지식을 넣어보고 싶다는 마음도 생길 것 같아요. 예를 들면 IT나 엔지니어링 쪽도 궁금하고, 아예 안 해본 건축이나 건설 쪽도 한번 해보고 싶고요. 그렇게 새로운 지식이 쌓이면 또 나라는 사람도 어떻게 바뀔지 궁금하더라고요.
N: HR은 다시 하실 생각 없으세요?
Y: 없어요. (웃음) 저는 차라리 봉사활동을 하겠어요. 누군가 저에게 인사를 하고 싶다고 하면 꼭 물어봐요, 왜 하고 싶냐고. 그러면 다들 "사람이 좋아서요."라고 하거든요. 근데 저는 말해요. "사람 좋으면 절대 하면 안 돼요. 사람 좋으면 차라리 영업을 하세요."라고요. 오히려 규칙적이고 딱딱 떨어지는 걸 좋아한다면 재무 쪽이 낫고요. 인사는 정말 도를 닦아야 하는 자리인 것 같아요.
N: 스님처럼요? (웃음)
Y: 맞아요. 성선설을 믿는 분이라면 한 번쯤 해볼 만한 일이긴 하죠. (웃음)
N: 왜 이렇게 바로 공감이 될까요…? (웃음) 그럼 유정 님은 살면서 누구에게 가장 영향을 받으셨어요?
Y: 저는 진짜 1순위는 남편이고요. 일적으로는 딱 한 분 계세요. 예전에 제가 ‘오만한 오 대리’ 시절에, 그분이 저한테 이런 얘기를 해주신 적이 있었거든요. "너, 네가 없으면 회사가 안 돌아간다고 생각하지?"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되게 충격적이었어요. 그전까지 저는 나름대로 ‘일 잘한다’는 자부심도 있었고, 스스로를 높게 평가하고 있었거든요. 근데 그분이 아주 담백하게 "네가 지금 좀 오만하다."라고 얘기해 주셨는데, 그게 진짜 메타인지가 되더라고요.
그분이 N사 부사장님이셨는데, 그냥 제 태도나 마음가짐을 정확하게 짚어주신 거예요. ‘본인이 잘나서 일을 하고 있지만, 거기에 취해 있는 상태’라는 식으로요. 그 얘기 듣고 나서 정말 많이 생각하게 됐어요. 그때가 딱 원티드 앰버서더 5년 차 마감 시점이었거든요. 좀 더 바깥세상도 보고 싶어서 커뮤니티 활동도 열심히 했고, OKR 같은 것도 처음 도입해 보라고 챌린지를 주셨는데, ‘이게 뭐지?’ 하면서 헤매기도 했어요. 그래도 그런 경험을 통해 정말 많이 배웠고, 자기 객관화도 많이 하게 됐죠. 그게 저한테는 되게 큰 배움이었던 것 같아요.
결국 ‘일할 때 오만한 모습은 정말 멋이 없다’는 걸 그때 확실히 느꼈어요. 아는 걸 티 내는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행동하는 사람, 허세 없는 사람이 멋있더라고요. 지금 돌아보면, ‘내가 진짜 그렇게 오만했었구나.’ 싶은 순간들이 많아요. (웃음) 그 생각이 아직도 종종 나고요. 그분은 제가 본인 덕분에 그렇게 영향을 받았다는 걸 모르실 거예요. 그냥 스쳐 지나간 멘트였을 텐데, 저한텐 굉장히 큰 울림이었죠.
N: 스쳐 지나가는 한마디였어도 좋은 자원이 되었네요. 그럼 반대로, 유정 님은 나도 모르게 누군가에게 영향을 준 적이 있다고 느꼈던 순간도 있으세요?
Y: 그런 생각을 가끔 해요. 예전에 회사에서 "우리 회사 최고의 복지는 유정 님이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가 있었는데, 그게 제 인생에서 들었던 말 중에 가장 기억에 남아요.
또 예전에 아는 언니가 유학 가기 전에 "올해 내가 제일 잘한 일은 너랑 친구가 된 거야."라고 말해줬을 때도 좀 당황했었어요. ‘왜 그렇게까지 생각할까?’ 싶었는데, 다른 친구들도 비슷하게 "너한테는 자연스럽게 속 얘기를 하게 된다.", "뭘 말해도 다 들어줄 것 같다."라고 해주더라고요. 남편도 가끔 "내 인생에서 유정이는 귀인인 것 같다."라고 하고요. (웃음)
저는 그냥 판단하지 않고, 진심으로 사람을 대하려고 하는 편인데 그런 모습이 주변에 좋은 인상으로 남는 것 같아요. 얼마 전에도 친구가 "나는 원래 오래된 친구가 좋은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너랑은 이제 2년밖에 안 됐지만 더 깊은 얘기를 나누게 됐다."라고 해서 고맙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너무 애쓰지 말고 자연스럽게 살아야겠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웃음)
N: 그 말 들으면서 조금 울컥하셨을 것 같은데요?
Y: 네, 정말 감동받았죠. 막 울지는 않았지만 마음이 되게 찡했어요. '내가 뭘 그렇게 잘했나?' 싶으면서도 너무 고맙고, 그런 말을 들으니까 더 잘 지내야겠다, 좋은 관계로 계속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N: 그러면 지금까지 쭉 말씀해 주셨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관계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는 뭐예요?
Y: 저는 그건 확실히 있어요. 정직함. 그냥 관계에서는 항상 정직하게 대하려고 해요. 누가 내 대화를 몰래 듣더라도 떳떳할 수 있도록요. 거짓말을 못 하기도 하지만, 굳이 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고요.
그리고 저는 누군가의 장점을 잘 보는 편인데, 그걸 그냥 마음으로만 생각하는 게 아니라 꼭 표현하려고 해요. 평소에도 고맙거나 좋았던 건 바로바로 얘기하고, 만나고 나서도 카톡으로 "아까 그거 참 좋았어." 하고 말하는 스타일이에요. 그래서 친구들이 가끔 저보고 '자존감 주사기' 같다고도 하거든요. (웃음) 그렇게 하다 보니 저 스스로도 관계에서 상처를 잘 받지 않는 것 같아요.
나는 최선을 다했고, 정직하게 대했으니까 만약 상대가 나를 오해하거나 멀어지더라도 그건 어쩔 수 없는 거구나, 그런 생각이 들어요. 억지로 붙잡을 필요도 없는 것 같고요. 그냥 내 주변에서 나에게 잘해주는 사람, 좋은 관계를 잘 유지하는 것만 해도 충분히 벅차다고 생각해요. 너무 거기에 매몰되거나 상처받기보다는 흘러가는 대로 두는 게 맞겠더라고요.
N: 그렇죠. 그건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니까요.
평소에 주변 사람들의 장점을 잘 보고, 그걸 배경으로 자연스럽게 칭찬도 많이 해주신다고 하셨잖아요. 그럼 반대로, 지금 이 시점에서 유정 님이 유정 님 자신에게 해주고 싶은 칭찬은 어떤 게 있을까요?
Y: 음… 저는 제가 참 긍정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어떻게 보면 그 덕분에 잘 살아왔던 것 같기도 하고요. 근데 요즘은 '조금은 네거티브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웃음)
제가 자주 쓰는 말 중에 ‘Positive Impact’라는 말이 있어요. 좋은 얘기를 하면 좋은 일이 끌어당겨진다고 하잖아요. 그래서 저는 어차피 똑같이 말을 해야 한다면, 기왕이면 좋은 말을, 듣기 좋은 얘기를 하자고 생각해요. 그게 아부성 멘트가 아니라, 진짜 그 사람이 가진 좋은 부분을 정확히 보고 말해주는 거죠. 그리고 솔직히… 세상이 좀 더 그렇게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뀌면 좋겠어요. 물론, 한국 사회가 그렇게 녹록지 않다는 것도 알지만요.
그래서 적어도 내 손이 닿는 범위 안에 있는 사람들한테는 좋은 영향을 주는 사람이고 싶다는 마음은 분명히 있어요. "유정아, 너 덕분에 힘이 나.", "너한테 위로받았다.", 이런 얘기들을 들을 때마다 아, 내가 정말 나름대로 긍정적인 영향을 주면서 살아왔구나 싶었어요.
그걸 예전엔 잘 몰랐는데, 요즘 들어 조금씩 인식하게 됐어요. 그래서 제 자신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생각보다 잘 살아왔어. 잘해왔어!’ 이 말인 것 같아요.
N: 정말 최고의 칭찬이라고 생각해요. 후회만 가득한 사람들도 많은데, 물론 아쉬운 순간들은 있었겠지만, 그래도 내가 누구보다 최선을 다해왔다는 걸 스스로 인정하고 토닥여주는 것, 그게 정말 중요하죠.
Y: 그렇죠, 맞아요. 그래서 요즘은 적당히 하자, 조금 템포를 늦춰보자는 게 올해부터 제 기조예요. 근데 또 그게… 진짜 템포를 낮추고 싶긴 한데, 체력이 예전 같지가 않아서… (웃음) 체력이 떨어지니까 자연스럽게 템포가 좀 느려지긴 하는데, 작년까진 그래도 괜찮았는데 올해 들어서 유독 힘들더라고요.
N: 체력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체력 증진을 위함도 있지만, 예전부터 러닝이나 테니스 같은 운동을 쭉 해오지 않으셨어요? 아니면 요즘은 좀 쉬고 계신 건가요?
Y: 맞아요. 운동은 원래 워낙 좋아하는데, 이번에 아파서 병원에서 신체 쓰는 건 조금 쉬라고 하셔서 한 3주 정도 쉬고 있어요. 그래도 운동은 정말 살기 위해서 하는 거라, 아마 다음 주부터는 다시 조금씩 시작할 것 같아요. 근력이 필요하잖아요, 근육이 있어야 하니까.
N: 진짜요. 나이 들수록 근육이 정말 중요하잖아요. (웃음)
그리고 사실 유정 님 블로그도 잘 보고 있어요. 음식점 후기나 호주 여행기 재밌게 읽었는데, 저는 사실 맛에 그렇게 예민한 편이 아니라서요. 맛집 다니시는 게 저한텐 되게 신기하더라고요. ‘호주가 정말 좋았구나.’ 싶기도 했고요.
Y: 아, 블로그요? (웃음) 원래는 예전에 삼성동에 있는 회사 다닐 때 식대 지원을 받았거든요. 근처에 워낙 맛집이 많으니까, '그냥 하나씩만 기록해도 콘텐츠가 되겠는데?' 싶어서 가볍게 시작했어요.
제가 막 미식가 스타일은 아닌데, 딱 좋아하는 감성은 있거든요. 카페는 아기자기한 걸 좋아하고, 음식점은 좀 아재스러운 메뉴들? 선지, 내장 이런 거 좋아해요. (웃음)
그리고 전에 종화 님이 “경험을 기록하는 게 중요하다.”라고 하셨던 말이 자꾸 생각나서, 요즘은 그냥 일상적으로 기록을 이어가고 있어요. 출퇴근 시간이 길다 보니까 그 시간도 좀 의미 있게 써보자 싶어서 시작한 면도 있고요. 대신에 “억지로 쓰지 말고, 쓰고 싶을 때만 쓰자”는 마음이에요. 그냥, 기록을 하나의 루틴처럼 즐기자는 정도로요.
N: 출퇴근 시간도 그렇게 잘 활용하시는 거 보면 진짜 부지런하세요. 호주 얘기도 그렇고, 앞으로 또 어떤 기록들이 올라올지 기대돼요.
Y: 호주는 '내가 직접 가보면 어떤 느낌일까?' 싶어서 떠난 거였는데, 막상 가보니까 돌아오기 싫을 정도로 좋았어요. '어학연수는 진짜 꼭 가야겠다.' 싶더라고요. 호주는 전체적으로 여유롭고 사람들도 친절하고, 제가 늘 엑셀 밟고 살던 사람이니까 거기선 ‘아, 여기선 파킹하면서도 살 수 있겠구나.’ 싶었어요. 그냥 딱 멈춰도 괜찮은 삶이 있다는 걸 처음 체감했던 것 같아요.
N: 맞아요, 한국과는 다른 호주 특유의 바이브가 있죠. 그럼 뉴질랜드도 좋아하실 것 같아요. 도심 분위기 좋아하시면 북부만 돌아보셔도 좋고, 자연 선호하시면 남섬 여행을 더 추천드려요.
Y: 저 완전 자연 쪽이에요. (웃음) 그래서 그냥 '무조건 가야지!' 이 생각밖에 안 들었어요. 요즘엔 진지하게 '이민자로 살아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해보고 있어요. 다만, 호주 대통령이 보수적인 사람으로 바뀌고 나서 이민 정책이 예전보다 까다로워졌다고 하더라고요. 그래도 어학연수는 가자, 안 가고 후회하는 것보단 다녀오는 게 낫겠다 싶어요. 다녀오면, 또 블로그에 열심히 써야죠! (웃음)
N: 그럼 저는 유정 님의 <호주에서 살아남기> 후기도 기다릴게요! (웃음)
N: 이제 두 가지 질문 정도가 남았는데요. 유정 님의 삶을 하나의 문장이나 키워드로 표현한다면 어떤 걸 고르실까요?
Y: 내가 했던 모든 진심은 지금의 나를 만든다.
누군가는 제가 너무 진지하다고도 하고, 누군가는 너무 착하다고도 했는데요. 그래도 저는 늘 최선을 다해왔고, 그게 제 방식이었던 것 같아요. 저는 선함을 믿으니까요!
N: 방금 말씀해 주신 '선함을 믿는다'는 그 말씀이 참 인상 깊었어요. 만약 유정 님의 인생을 하나의 프로젝트로 만든다면, 그 ‘선함’을 어떻게 풀어보고 싶으세요?
Y: 계속 말씀드렸던 것처럼 저는 딱 제 삶을 돌아봤을 때, 결국 선한 영향을 주는 사람이고 싶다는 마음이 정말 큰 것 같아요. 그건 일이든 관계든 다 마찬가지고요. 뭐 잔다르크까지는 아니지만 (웃음), 저는 긍정적인 영향력이 굉장히 크다고 생각해요. 나 혼자라도 최소한 백 명, 이백 명 정도는 바꿀 수 있지 않을까, 그런 마음이 있어요. 그래서 제 프로젝트가 있다면 ‘성난 사람들 선하게 만들기’? (웃음) 약간 그런 느낌이에요.
평소에도 부정적인 이야기가 나오면 바로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꾸려고 하고, 제 주변부터라도 선한 기운을 퍼뜨리고 싶어요. 그래서 제가 말로 표현하는 것도 좀 많고요. ‘선하게 살자.’, ‘긍정적인 영향을 주자.’ 그런 말을 계속 반복하게 되더라고요. 어쩌면 저한테는 그게 일종의 나비효과 같은 거죠. 영화처럼 결말이 좀 안 좋아지진 않았으면 좋겠지만 (웃음), 그래도 제가 하는 작은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누군가에게 좋은 영향을 주면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아직은 혼자서 PM도 하고 오퍼레이션도 하고 있는 프로젝트지만요. (웃음) 그래도 앞으로도 그냥 조금씩, 제가 할 수 있는 만큼 해보려고 해요.
유정 님과 대화를 나누며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선함이라는 가치를 중심에 두고 살아가려는 마음이었다.
선함을 중요하게 여긴다고 말하는 사람은 종종 있지만, 그걸 실제 삶과 일의 태도로까지 자연스럽게 실천하고 있는 모습은 정말 오랜만에 마주했다. 단순히 ‘좋은 사람이 되겠다’, ‘긍정적인 사람이 되겠다’는 선언적인 차원이 아니라, ‘내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있을까’, ‘내 말과 행동이 누군가에게 어떤 기운으로 남을까’를 스스로 끊임없이 되짚어본다는 점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런 마음가짐은 유정 님의 일과 관계 곳곳에서 자연스럽게 묻어났다. ‘소외되는 사람이 없는 조직을 만들고 싶다’, ‘심리적 안전감을 높이는 조직문화를 설계하고 싶다’는 말 역시 단순한 직업적 목표가 아니라, 삶의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란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지인분들이 “회사 최고의 복지”, “너랑 친구가 된 게 올해 제일 잘한 일”이라고 표현했던 마음이 충분히 이해되었다. 그만큼 유정 님이 주변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에너지를 전하고 있다는 사실이 자연스럽게 전해졌다.
개인적으로도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다. ‘에너지가 남으면 못 견디는 성향’, ‘뇌를 빼고 생각하기가 쉽지 않다’, ‘걷고 있는데 굳이 뛰어야만 앞으로 가는 줄 알았다’는 표현들에 나 역시 크게 고개를 끄덕이게 됐다. 비슷한 성향과 습관으로 스스로를 몰아붙였던 경험이 있어서인지, 그 진솔한 이야기들이 유난히 마음에 오래 남았다.
가장 마음 깊이 새겨졌던 건, ‘신념이 너무 강하면 오히려 타인을 그 틀에 가두게 된다’는 말이었다. 강한 신념과 책임감이 어느 순간 나를 소진시키기도 한다는 것을 최근 나 역시 체감하고 있었기에, 유정 님이 조금씩 내려놓고 덜어내는 방식을 배워가는 과정이 더욱 깊이 다가왔다. 그렇게 치열하게 달려왔던 시간들 뒤로, 이제는 자신만의 여유로운 리듬을 찾아가려는 변화가 고스란히 전해졌다.
어학연수 이야기 또한 단순히 커리어를 위한 선택이 아니라, 스스로를 위한 새롭고 낯선 경험을 시도해 보려는 유정 님의 용기가 느껴졌다. 어떤 경험을 하고 돌아오실지, 또 그 경험들이 유정 님의 삶과 커리어에 어떤 새로운 감각을 더해줄지 앞으로가 더 궁금해졌다.
무엇보다, 유정 님이 반복해서 이야기하셨던 것처럼, 결국 스스로 바라는 건 ‘선한 영향력을 주는 사람’이 되는 일이라는 점이 또렷하게 남았다. 그 마음이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기운을 전해왔고, 앞으로도 그러리라 믿는다. 스스로에게 “생각보다 잘 살아왔어. 정말 잘했어.”라는 말을 아낌없이 해주시기를, 그리고 그 말이 더 자주 들리는 시기가 되기를 진심으로 응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