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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입니다 Nov 29. 2024

영감과 논리를 잇는 다재다능한 퍼포머, Y




Y는 나의 연인이다. 그것도 4살 연하. 그를 처음 만난 건 2022년 12월, 우리가 속한 노래 모임의 번개에서였다. (아직도 기억난다. 신림 리춘시장.) 그날은 그가 처음으로 모임에 나온 날이었다. 처음엔 짧은 만남이었고, 그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지 못했다. 하지만 몇 번의 모임을 함께하며 알게 되었다. 그는 노래와 춤을 잘할 뿐만 아니라, 거기에 진심을 다하는 ‘흥부자’였고, 무엇이든 해낼 수 있는 다재다능함을 지닌 전형적인 ENFP의 대명사였다.


2023년 연말 공연을 준비하면서 우리는 자연스레 가까워졌다. 크리스마스이브를 기점으로 연인이 되었고, 나는 그의 모든 순간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 있었다. 디자이너에서 개발자로 전향하고 첫 직장에 들어가기까지, 그는 흔들림 없이 자신의 길을 걸어갔다. 그 과정을 곁에서 지켜보며 나는 깨달았다. 그가 단순히 재능 많은 사람이 아닌, 건강하고 단단한 내면을 지닌 사람이라는 것을.


어쩌면 나는 그런 모습에 이끌렸는지도 모른다. 나에게 없는 내면의 강인함과 끊임없는 노력, 그리고 누구보다 진지하게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태도에. 그래서 나는 그의 이야기를 써보고 싶었다. 흥 많고 다재다능한 면모뿐 아니라, 그 안에 숨겨진 단단한 내면과 성장의 이야기를.


내가 사랑하게 된 이 사람을, 그리고 그가 걸어온 길을 기록하고 싶었다.






Q. 지난여름에 이사를 하면서 Y는 마치 ‘수납의 달인’처럼 공간 활용과 인테리어에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잖아요. 최근에도 가구 배치를 다시 했고, 이런 변화 속에서 Y에게 ‘공간’과 ‘집’은 어떤 의미로 다가오나요?

A. 사실 저는 공간이나 인테리어에 특별히 관심이 많다기보다는, 요즘 “어떻게 하면 깔끔하게 살 수 있을까?”를 더 많이 고민하게 됐어요. 자취를 하면서 이런 생각이 깊어진 것 같고요. 살다 보니 물건을 제자리에 잘 두고, 필요할 때 바로 꺼내 쓰는 게 정말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어요.


최근에 가구 재배치를 하면서 스스로 생각해도 어이없는 일이 있었는데, 칼과 가위를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는 거예요. 분명 있었는데. 그러다 결국 포기하고 새로 샀어요. 이런 일을 겪을 때마다 물건은 제자리에 있어야 한다는 걸 다시 한번 느끼게 돼요.


여기서 말하는 ‘제자리’란 단순히 정해둔 장소가 아니에요. 제가 쓰기에 편하고, 사용한 후 다시 놓기도 쉬운 그런 자리예요. 그래서 더 편리하게 정리하고 깔끔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을 계속 찾고 있어요.


Q. 앞서 이야기한 ‘깔끔함’의 기준은 어떻게 되나요?

A. 깔끔함이라는 건, 말 그대로 ‘거슬리는 게 없는 상태’ 예요. 제 기준에서 거슬린다는 건, 물건이 널브러져 있거나 정리되지 않은 상태를 말해요. 물건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으면 자연스럽게 눈에 걸리잖아요. 그런 게 바로 거슬리는 거죠.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디자인적으로도 선이 너무 많거나 복잡하게 얽혀 있는 모습이 저한테는 정돈되지 않은 느낌으로 다가와요. 선이 단순하고 깔끔해야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 같아요.


그래서 어떻게 하면 이런 ‘거슬리는 요소’들을 없앨 수 있을까를 계속 고민하게 돼요. 물건들을 눈에 띄지 않게 정리하거나, 복잡한 선들을 단순화하는 방식으로요. 결국 이런 작은 디테일들이 쌓여서 ‘깔끔한 상태’를 만드는 것 같아요.


Q. 그럼 Y에게 ‘집’이란 결국 어떤 공간인가요? 편안함이나 효율성을 좀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A. 저에게 ‘집’이란 단순히 물건을 두고 휴식을 취하는 공간을 넘어서, ‘내가 나답게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장소’ 예요. 그런 면에서 공간을 어떻게 쓰고 유지하느냐가 제 일상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 같아요.


보통 집을 ‘편안하게 쉴 수 있는 곳’이라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저에게 집은 그 이상의 의미를 지녀요. 단순히 휴식을 취하는 공간이 아니라, 제 일상을 지원하는 실질적인 기반인 거죠. 왜, 사람마다 꼭 필요한 물건들이 있잖아요. 옷부터 책상, 의자, 펜, 요리 도구까지. 이런 것들을 잘 보관하고, 필요할 때 바로 쓸 수 있게 정리하는 것. 그게 바로 제가 생각하는 집의 진정한 역할이에요.

결국 제 집은 ‘내가 편하고, 실용적이고, 효율적으로 지낼 수 있는 공간’이고, 제가 가진 모든 것들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사용하는 기반인 거죠.


Q. 집의 개념에 대해서는 얘기를 나눴으니, 이번에는 외부 활동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어요.

Y는 외부에서 활동하면서 한 번도 “기를 뺏겼다.”라고 느껴본 적이 없다고 했잖아요. 그게 정말 한 번도 없는 건지, 왜 그렇게 느끼는지 궁금해요.

A. 일단 “기를 뺏긴다.”라는 표현 자체가 좀 흥미롭죠. 이건 사실 주관적인 감각을 표현한 거라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매운 걸 먹으면 우리가 ‘맵다’고 느끼잖아요. 그런데 그건 실제로 통각적인 고통일 뿐이고, 우리가 ‘맵다’고 정의를 내리는 건 심리적인 거죠.


저는 제 에너지를 100으로 봤을 때, 외부에 나가서 80을 쓰고 20이 남았다고 해도 “기를 뺏겼다.”라고 느끼지 않아요. 같은 상황이라도 저는 그런 감각을 다르게 해석해요. 그래서 살면서 그 기분을 딱히 느껴본 적이 없어요. 물론 제가 그 상황을 겪지 않은 건 아닐 거예요. 하지만 그런 경험이 있어도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뿐이에요. 그래서 제게는 그런 관점이 여전히 낯설게 느껴져요.


Q. 저는 오히려 외부 활동을 하면 기를 많이 뺏기는 편이어서 그런 관점이 신기하네요. 그럼 Y는 외부 활동을 통해 “에너지를 얻는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나요?

A. 사실 그런 감각에 대해 생각해 보니, 특정 상황에서는 분명 에너지를 얻는 느낌이 있어요. 가령 좋아하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거나, 흥미로운 공간에 있을 때 무언가 채워지는 느낌이 들죠.


다만 그걸 “에너지를 얻었다.”라고 직접적으로 표현하지는 않아요. 외부 활동 자체에 대해 특별히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거든요. 제게는 그냥 모든 게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과정 같아요.


그냥 외부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든, 저 자신은 흐름 속에서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편이에요. 특별히 에너지를 쌓거나 뺏기는 걸 의식하지 않으니까, 외부 활동도 제게는 일상의 자연스러운 일부일 뿐이에요.


Q. 외부 활동을 자연스러운 일상으로 받아들인다고 했는데, 혼자 있고 싶은 순간도 분명 있을 거예요. 사람들을 마주하고 싶지 않은 그 순간들, 혹시 일정한 주기가 있나요? 아니면 상황에 따라 달라지나요?

A. 음, 정해진 주기가 있는 건 아니에요. 그냥 제가 피곤하다고 느껴질 때 자연스럽게 그런 상태가 되는 것 같아요. 특별히 무슨 일이 있어서라기보다는, 몸이나 마음이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혼자 있고 싶어지는 거죠.


그럴 땐 사람을 만나서 대화하는 것도 귀찮아지고, 뭘 해야 한다는 생각 자체가 부담스럽게 느껴져요. 그런데 그게 어떤 계기로 시작되는 건지는 사실 저도 정확히는 모르겠어요. 그냥 계획 없이 찾아오는 것 같아요. 피곤함이 누적되면 더 그런 상태가 되는 경향이 있긴 하지만요.


Y가 자주 그리는 자신을 형상화한 캐릭터 © Y


Q. 맞아요, 사실 혼자 있고 싶은 순간이나 사람을 마주하기 싫을 때가 누구에게나 오고는 하죠. 그럼에도 우리는 사회생활을 해야 하잖아요.

커리어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고자 하는데, Y는 꽤 이른 나이부터 사회생활을 시작했어요. 만 27년을 살아오면서 삶에 영향을 준 사람들이 있었나요?

A. 맞아요, 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사회생활을 시작했어요. 꽤 어린 나이에 시작했죠. 돌이켜보면, 제게 영향을 준 사람들은 상황에 따라 늘 달랐던 것 같아요.


20살에 처음 디자이너로 커리어를 시작했는데, 그 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분은 당시 회사의 과장님이에요. 사실 처음부터 디자이너를 꿈꿨던 건 아니었어요. 그때는 단순히 “일단 되는 대로 취업하자”는 마음으로 경영지원팀에 지원했거든요. 그런데 면접에서 “디자인 전공이라면 작업해 둔 게 있나요?”라고 물으시더라고요. 준비해 갔던 과제물을 보여드렸더니, 뜻밖에도 “합격시켜 줄게요. 대신 디자이너로 일해보는 건 어때요?”라는 제안을 받았어요. 깊이 고민할 새도 없이 “네, 할게요!”라고 바로 대답했죠.


그렇게 디자이너로 일을 시작하면서 과장님께 정말 많은 걸 배울 수 있었어요. 처음엔 제가 계획했던 방향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그때의 경험이 제 삶의 전환점이 됐고, 지금의 커리어에도 아주 큰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해요.


Q. 그렇게 디자이너로 시작한 거군요. 처음부터 디자이너를 목표로 하셨던 건 아니라고 했는데, 당시 생각해 둔 다른 진로나 꿈이 있었나요?

A. 네, 사실 처음에는 방송 작가처럼 기획하고,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일을 하고 싶었어요. 그런 일에 흥미가 있어서 영상고에 진학했는데, 막상 원하는 기회를 얻기가 쉽지 않았어요. 그러다 우연히 디자이너로 첫발을 떼게 됐죠.


처음엔 정말 힘들었어요. 저는 준비된 디자이너가 아니었으니까요. 하지만 앞서 말씀드린 과장님께 많은 영향을 받았고, 디자이너로서의 기본자세와 사고방식을 배우는 데 큰 도움이 됐어요.


한 번은 제가 SNS 콘텐츠 디자인과 이벤트 페이지 작업을 맡았는데, 과장님께서 “이 선은 왜 넣었어요?”라고 물으셨어요. 그때 저는 “이렇게 하면 예뻐 보일 것 같아서요.”라고 솔직히 말하지 못하고, 얼버무리며 “그냥요.”라고 대답했죠.


그러자 과장님께서 강하게 말씀하셨어요. “디자인에 ‘그냥’이라는 건 있을 수 없어요. 모든 요소에는 분명한 의도가 있어야 해요. 지금 Y는 디자이너로서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여요. 책상에 디자인 책 하나도 없잖아요.” 그 말을 듣고 너무 부끄러웠어요. 그래서 바로 디자인 책을 사서 책상에 두었죠. 지금 생각해 보면 책상에 책을 둔다고 디자이너가 되는 건 아니었지만, 그때의 경험이 제게는 큰 교훈이 됐어요.


그 일을 계기로 제 작업에 대해 더 깊이 고민하게 되었고, 디자이너로서 성장할 수 있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고 생각해요. 이후로는 작업에 담긴 의도와 이유를 끊임없이 점검하는 습관을 갖게 되었어요.


Q. 그렇다면 직업적인 면에서는 영향을 준 분이 있지만, 전체적인 삶에서는 어때요?

A. 음, 제 삶을 돌아보면, 딱히 한 사람이 제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줬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것 같아요. 제 선택으로 살아온 부분이 크다고 생각하거든요. 물론 그 과정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조금씩 영향을 받았죠. 하지만 “이 사람이 내 삶을 바꿨어요.”라고 할 정도로 한 사람을 꼽기는 어려워요.


결국 제 삶은 제 선택의 결과라는 생각이 들어요. 다만, 디자이너로서 첫 직장에서 배웠던 것처럼, 순간순간 중요한 가르침을 준 사람들이 주변에 늘 있었다는 건 분명해요. 그런 분들이 제 삶의 방향을 조금씩 다듬어주었다고 생각해요.


Q. 디자인을 우연히 시작했다고 했는데, 이후 대학에 진학하고 군대를 다녀오면서 진로에 대해 다시 고민했다고 했잖아요. 그럼 그 과정에서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A. 처음 디자인을 시작한 건 정말 우연이었어요.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는데, 정신적으로 많이 지쳐 있었거든요. 회사에 다니면서 힘든 시간을 보냈어요. 주변 친구들은 “너 요즘 많이 예민해진 것 같아.”라고 말할 정도였고, 집에서는 가족들에게 짜증을 내며 반항적인 모습을 보였어요. 그러다 보니 점점 제가 제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나도 대학에 가서 조금은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죠.


하지만 현실적으로 실기를 준비하거나 수능을 다시 보는 건 어려웠어요. 그래서 고등학교 내신 성적으로 갈 수 있는 대학을 찾았고, 집에서 가까운 대학교의 디자인과에 입학했어요. 입학하고 나서 1년 동안은 정말 신나게 놀았어요. 수업이 크게 어렵지 않았거든요. 이미 툴을 다룰 줄 알고 있어서 과제도 쉽게 해낼 수 있었고요.


그러다 군대에 가게 되었는데, 그 시간이 제게 또 한 번의 전환점이 되었어요. 부사관으로 복무하며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제 진로에 대해 깊이 고민할 기회를 얻었죠.


Q. 그럼 진로에 대해 어떤 고민이나 결정을 하게 됐나요?

A. 군대에 있는 동안 진로에 대해 정말 많은 고민을 했어요. 디자인을 계속할지, 아니면 완전히 다른 길을 찾아야 할지 혼란스러웠죠. “디자인을 그렇게 잘하는 것도 아닌데, 내가 이 길을 계속 가도 될까?”라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어요. 부사관 복무를 선택한 것도 시간을 벌어서 이런 고민을 더 깊이 해보기 위해서였어요.


규칙적인 생활을 통해 스스로에 대해 많은 걸 배우긴 했지만, 군대 생활이 제게 맞는 환경은 아니었어요. 거기서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는 건 어렵다는 걸 깨달았죠. 그래서 전역을 선택했고, 다시 학교로 복학했어요. 그 시점부터 진로에 대해 더 현실적으로 고민하게 됐던 것 같아요. 디자이너로서의 경험을 넘어, 새로운 가능성을 찾고 싶다는 마음이 점점 더 커졌죠.


Q. 복학 후에는 어떤 경험을 하게 됐나요?

A. 복학 후에는 학교 생활에 더 열심히 임했어요. 수업뿐만 아니라 다양한 일을 병행하며 경험을 쌓으려고 노력했죠. 특히 한 교수님의 제안을 받아 함께 일하게 되었는데, 브랜드 기획과 상품 판매 같은 실무적인 기회를 주셨던 게 큰 도움이 됐어요. 그때는 단순히 디자인 작업에만 그치지 않고, MD 기획, 클라이언트 미팅, 실제 생산 공정 같은 다양한 과정들을 배우게 됐어요.


하지만 그렇게 많은 경험을 쌓으면서도 제 안에는 여전히 확신이 없었어요. 디자인이 제게 맞는 길인지 계속 의문이 들었죠. 그러다 “이제는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때가 됐다”는 생각이 강해지면서 직무 전환을 결심하게 됐어요.


Q. 직무 전환의 결정적인 계기는 뭐였어요?

A. 가장 큰 계기는 “늦지 않게 새로운 길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었어요. 디자인 작업이 흥미롭긴 했지만, 그 분야에서 제가 원하는 만큼 성장하거나 주도적인 위치에 설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거든요. 한계가 느껴지면서 더 넓은 가능성을 가진 분야를 찾기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프런트엔드 개발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제가 가진 디자인 경험과도 잘 맞는다고 판단했죠. 지금은 그 선택이 옳았다는 확신이 들고,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사실 제가 해보고 싶었던 일을 더 늦기 전에 시도해 봐야겠다는 생각도 크게 작용했어요. 당시 교수님께서 저를 제품 생산 관리 쪽에 적합하다고 보신 게 계기가 됐죠. 제가 디자인 작업뿐만 아니라 다른 부분에서도 꼼꼼하게 체크하고 디테일한 부분까지 집착하는 스타일이었거든요. 교수님도 그런 점에서 제가 디자이너보다는 관리나 주도적인 역할에 더 잘 맞을 거라고 말씀하셨어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뭐지?”라는 고민을 깊게 하게 됐어요.


결국, 지금 하지 않으면 더 늦을 것 같다는 결론에 도달했고, 직무 전환을 결심하면서 프런트엔드 개발이라는 새로운 길을 선택하게 됐어요.


Q. 직무 전환을 결심한 뒤, 디자이너에서 개발자로 전환하게 된 이유가 궁금해요. 어떤 계기로 개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나요?

A. 디자이너에서 개발자로 전환한 건 제가 처음 디자이너를 선택했던 이유와도 연결돼 있어요. 저는 창의적으로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그것을 통해 사람들과 소통하는 일을 좋아했어요. 하지만 디자이너로 일하면서 점점 깨달았죠. 최종적으로 그 결과물을 실현하고 움직이게 만드는 사람은 개발자라는 사실을요.


고등학교 때 잠깐 웹 개발을 배우면서 컴퓨터와 친숙해진 경험이 있었는데, 회사에서 실제로 개발자들이 작업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들의 역할이 정말 대단하다고 느껴졌어요. 제가 PSD로 작업한 디자인이 실제로 작동하게 되고, 사용자가 경험할 수 있는 형태로 구현되는 걸 보면서 “이건 마법 같은 일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런 모습을 보면서 “개발을 배우면 내가 원하는 대로 결과물을 더 주도적으로 만들고 관리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개발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디자인과 기획을 더 전문적이고 창의적인 방식으로 확장할 수 있는 영역이라고 느껴졌고요. 그런 확신이 생기면서 프런트엔드 개발로 전환하게 됐어요.


Q. 지금의 ‘개발자’라는 일은 Y가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 그리고 해보고 싶었던 것이 결합된 결과처럼 보이네요.

A. 네, 그렇게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좋아했고, 해보고 싶었고, 또 제가 잘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던 일들을 하나로 결합한 선택이었죠. 물론 아직 배워야 할 것도 많고, 가야 할 길도 남아 있지만, 지금까지의 선택에 대해서는 후회가 없어요. 앞으로도 남은 20대에는 다양한 시도를 통해 더 많은 가능성을 열어가려고 해요. ‘개발’이라는 분야가 그런 시도와 성장을 가능하게 해 준다는 점에서 만족하고 있어요.


Q. 그렇게 개발자로서 근무 중인 요즘 야근을 정말 많이 하잖아요. 디자이너로 일할 때도 몰입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몰랐다고 했는데, Y에게는 일이 단순한 업무를 넘어서 삶의 일부처럼 느껴지기도 하네요. 어떻게 생각해요?

A. 삶이 곧 일이냐고 물으면, 저는 아니라고 답할 거예요. 하지만 일이 제 삶의 큰 부분이라는 건 부정할 수 없어요. 일이 삶에 깊이 스며든 거죠.


이런 관점은 첫 회사에서의 경험이 큰 영향을 준 것 같아요. 그때는 정말 매일같이 야근을 했어요. 하루 세끼 먹는 것처럼 야근도 당연한 일상이었고, 그렇게 1년 내내 관성처럼 반복되는 생활을 하다 보니, 지금도 일이 자연스럽게 제 삶의 일부로 자리 잡은 셈이에요.


물론 지금은 그때처럼 힘들게만 느껴지진 않아요. 일이 벅찰 때도 있지만, 그 안에서 몰입하고 즐거움을 느끼는 순간들이 많아졌거든요. 그래서 일이 단순한 의무가 아니라, 삶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로 느껴지는 것 같아요.


Q. 디자이너로서도, 지금 프런트엔드 개발자로서도 클라이언트나 소비자가 눈에 보이는 결과물을 만드는 역할을 하고 있잖아요. 그런 결과물을 만들 때, 아이디어나 영감은 주로 어디에서 얻나요? 일상에서 떠오르기도 하고, 일을 하면서 떠오르기도 할 텐데요.

A. 우선 개발자로 일할 때는 코드를 짜거나 구조를 설계하면서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경우가 많아요. 똑같은 기능을 구현하더라도 방식은 정말 다양하거든요. 코드를 짜다 보면 “이건 깔끔하다”는 느낌이 드는 구조가 있어요. 그런 구조를 찾아가면서 영감을 얻는 경우가 많아요.


개발에서는 공식 문서나 레퍼런스를 참고하는 일이 많아요. 그 과정에서 “이렇게 하면 내가 원하는 결과가 나오겠다”는 확신이 들 때가 있죠.


반면, 디자인은 좀 달라요. 디자인할 때는 머릿속에 떠오른 이미지를 바로 2D로 표현하거나 설명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아요. 예를 들어, 화려하지만 심플한 디자인 같은 모호한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가 있거든요. 이런 경우에는 핀터레스트 같은 레퍼런스 사이트를 많이 참고해요.


레퍼런스를 보다가 “이 그래픽이 내가 생각했던 것과 비슷하다.” 싶은 걸 발견하면, 거기에 제 아이디어를 더해서 구체화해요. 그렇게 조금씩 수정하고 다듬는 과정에서 결과물이 완성되죠.


Q. 결국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걸 어떻게 표현할지 고민하는 과정이 더 중요한 것 같네요.

A. 맞아요. 영감은 처음 떠오를 때 가장 강렬하게 느껴지는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그걸 실제로 표현하고 구현하는 과정이 훨씬 더 어렵고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제 경험상, 영감을 구체화하고 표현할 방법을 찾아내어 적용했을 때 비로소 만족스러운 결과물이 나왔던 것 같아요.


Q. 지금까지의 경험을 종합해 보면, 결국 인풋이 있으면 아웃풋이 나오는 과정이잖아요. Y는 배움에 있어서 이론적인 면보다 실전 경험과 감각에 더 의존하는 편인가요?

A. 디자인에서는 확실히 실전 경험과 감각이 더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 같아요. 디자인은 제 머릿속 아이디어를 구현하고, 그 과정에서 감각적으로 “이게 맞다.”라고 느껴지는 방향으로 발전시키는 일이 많았거든요.


하지만 개발은 조금 다르다고 느껴요. 개발에서는 이론적인 부분이 훨씬 더 중요해요. 앞서 말했던 것처럼, 저는 공식 문서에서 영감을 많이 얻어요. 개발은 다뤄야 할 정보의 양이 방대하고, 공식 문서를 볼 때마다 새롭게 배우는 게 많아요. 그런 면에서 개발은 마치 마르지 않는 샘 같아요. 계속해서 공부하고, 새로운 걸 찾아내야 하는 분야죠.


Q. 만약 지금까지 쌓아온 경험과 지식, 기술을 모두 잃어버린다면 어떨 것 같아요?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요?

A. 상상하기 힘든 상황이긴 하지만, 다시 시작해야겠죠. 완전히 다른 직업, 예를 들면 헬스 트레이너 같은 걸 할 것 같진 않아요. 아마 제가 잘할 수 있는 분야에서 다시 도전할 것 같아요.


솔직히 그때 어떤 감정이 들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상황이 달라지더라도 방법을 찾아 다시 쌓아가려고 할 거예요. 결국엔 나아가야 한다는 마음이 가장 중요할 테니까요.


Q. 그렇다면 앞으로 어떤 개발자가 되고 싶나요?

A. 이 질문을 받으면 흔히 ‘발전하는 개발자’ 같은 면접용 답변이 떠오르는데, 솔직히 말하자면 저는 총괄적인 책임을 질 수 있는 개발자가 되고 싶어요.


예를 들어, PM(프로덕트 매니저)처럼 전체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디자인하고, 개발까지 이끌어갈 수 있는 역할을 하고 싶어요. 결정권자로서 방향을 정하고, 그 결정을 끝까지 밀고 나가면서 결과를 만들어내는 사람이 요.


책임이 두렵지 않냐고 묻는다면, 그렇지 않아요. 만약 제가 잘못된 결정을 내려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면, 상황에 맞는 최선의 선택을 하고 끝까지 노력해야죠. 그 과정이 제 인생 전체를 좌우하진 않을 거라 생각해요.


결국 저는 온전히 책임질 각오로 프로젝트를 이끌어가는 개발자가 되고 싶어요. 지금도 프로젝트를 하다 보면 “내가 기획하고 디자인까지 했더라면 더 나은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왜냐하면 저는 기획부터 디자인, 개발까지 모든 과정을 경험해 봤기 때문이에요. 이런 통찰을 활용해 더 나은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는 개발자가 되기를 바라보아요.


Y의 고정 미모티콘


Q. 그럼 이제 일을 떠나서 취미 이야기를 해볼게요.

노래와 춤이 주된 취미인데, 저번에 춤은 약간 ‘타고난 재능’이라고 했죠. 왜 그렇게 생각했나요? 단순히 안무를 잘 따라 하기 때문만은 아닐 것 같은데요.

A. 의외로 그 이유가 맞아요. 저는 남들보다 안무를 빠르게 따라 하고 익히는 걸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거든요. 처음 배우는 동작인데도 금방 몸에 익숙해지는 걸 느낄 때가 많았어요. 단순히 연습만으로 되는 게 아니라, 이런 부분은 어느 정도 타고난 감각도 있지 않을까 싶더라고요.


Q. 남들보다 빠르게 따라 한다는 기준이 뭔가요? 예를 들어, 1분 30초 더 빨리 익힌다든가 하는 구체적인 시간 차이를 말하는 건가요?

A. 그런 식의 구체적인 시간 기준은 아니에요. 제가 살아오면서 저보다 안무를 빨리 익히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는 게 제 기준이에요. 안무를 보면 바로 “어떻게 해야 할지” 감각적으로 알게 되는 것 같아요.


Q. 그럼 춤에 대한 감각은 주로 직관에서 나온다고 보나요?

A. 네, 그런 것 같아요. 안무는 영상을 보면서 따라 하잖아요. 그냥 보이는 대로 따라 하면 되는 거니까요. 제 몸이 거울을 볼 수는 없지만, “이 동작을 할 때 내 몸이 이 정도 각도로 움직이면 비슷하겠다”는 감각이 있어요. 그런 점에서 제 몸이 동작을 자연스럽게 이해하고 반응하는 것 같아요.


노래도 비슷한 맥락이에요. 사람들이 제가 노래를 따라 부를 때, 원곡을 본능적으로 재현하려 한다고 하더라고요. 우리가 듣는 음원은 잘 정제된 소리잖아요. 저는 “이렇게 소리를 내면 비슷하게 들리겠다.”라고 느끼면서 자연스럽게 접근하는 것 같아요.


Q. 본인이 노래를 잘한다는 건 자각하고 있죠?

A. 많은 분들이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감사한 마음으로 “조금은 잘하고 있나?” 하고 스스로를 돌아보게 될 때가 있긴 해요.


Q. 그럼 스스로 탁월하다고 생각하나요?

A. 탁월하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솔직히 말해 잘해 보겠다고 죽도록 노력한 적은 없지만, 그렇다고 전혀 노력하지 않은 건 아니에요. 노래를 좋아했고, 혼자 마음껏 노래할 수 있는 환경이 자연스럽게 연습으로 이어진 것 같아요. 그렇게 나름대로 집중하고 꾸준히 노력했던 순간들이 지금의 결과를 만들어 준 게 아닐까 생각해요.


Q. 노래에 대한 재능은 환경 때문이라고 보나요, 아니면 선천적인 부분이 있다고 보나요?

A. 선천적인 재능도 어느 정도는 있는 것 같아요. 저희 직계 가족 중에는 노래와 관련된 분이 없지만, 둘째 큰아버지가 한때 가수를 꿈꾸셨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그리고 사촌들 중에도 노래를 잘하는 사람이 꽤 있어요.


그래도 제가 노래를 즐기고 꾸준히 해온 환경이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해요. 선천적인 감각과 후천적인 환경이 함께 작용해서 지금의 결과가 나온 게 아닌가 싶어요.


Q. 노래 모임에서 버스킹이나 가요제에도 꾸준히 참여하잖아요. 어떤 마음으로 임하나요?

A. 큰 목표나 뜻이 있어서 참여하는 건 아니에요. 그냥 노래하는 게 즐겁고 재미있어서 해요. 무대에 서는 순간이 좋고, 사람들이 환호해 주면 더 즐거워요. 노래 자체가 제게는 큰 즐거움이에요.


Q. Y에게 ‘인생 음악’이라고 할 만한 곡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A. 노래를 하나 고르는 건 굉장히 어렵지만, 굳이 선택해야 한다면 ‘2NE1’의 <FIRE>를 선택할게요. 그전에도 노래를 좋아하긴 했지만, 이 곡은 저에게 정말 강렬하고 충격적으로 다가온 음악이에요.


Q. 왜 그렇게 특별하게 느꼈나요?

A. <FIRE>는 단순한 노래가 아니라, 저에게 강렬한 경험으로 남아 있어요. 아직도 인기가요 첫 방송 장면이 생생히 기억나거든요.


어릴 때, 집에 있는 TV 화면이 꽤 컸어요. 그 큰 화면으로 봤던 그 장면이 잊히질 않아요. 사실 저는 그전까지 ‘2NE1’에 대해 잘 몰랐어요. ‘여자 빅뱅’이라는 키워드가 붙어 있다는 정도만 알고 있었죠. 그런데 우연히 TV를 보다가 그 방송을 보게 됐어요.


멤버들이 한 명씩 댄스 퍼포먼스를 하고, 철창 엘리베이터가 올라가면서 노래가 시작되는데, 그 사운드와 무대 연출이 정말 압도적이었어요. 특히 그 음악 스타일은 당시 제게 너무 신선했어요. 약간 인도풍 느낌의 사운드와 레게 힙합 같은 독특한 분위기는 그 시기에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던 스타일이었거든요. 그 곡과 무대는 제게 청춘의 흥과 에너지 그 자체로 다가왔어요.


Q. 그런 무대를 보고 나서 가수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나요?

A. 아니요. 저는 가수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어요. 심지어 YG에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도 안 했고요. 그 무대가 멋지다고 느꼈지만, 제가 그런 걸 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어요.


어릴 때는 “가수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긴 했어요. 하지만 점점 크면서 스스로 “난 그런 걸 할 만한 사람은 아니다.”라고 느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 무대를 봤을 때도 단순히 “와, 대단하다.”라는 감탄으로 끝났어요.


2NE1 - Fire @ SBS Inkigayo 인기가요 090517


Q. 노래와 춤 말고, 객관적으로 “내가 남들보다 잘한다.”라고 생각하는 게 또 뭐가 있을까요? 예를 들어, 운동일 수도 있고, 아니면 분위기를 잘 캐치하는 능력 같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일 수도 있겠네요.

A. 제가 남들보다 잘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자신 있는 건 의견을 주고받을 때 핵심을 빠르게 짚어내는 능력이라고 생각해요.


상대방이 무언가를 말하면 그 논리나 포인트를 빠르게 캐치해서 “이걸 이렇게 받아쳐야겠다”는 생각이 바로 떠올라요. 반론을 준비하거나 논점을 파악하는 데 강한 편인 것 같아요. 그 과정에서 머리가 팍팍 돌아간다는 느낌이 들어요.


Q. 상대방의 말을 빠르게 분석하고, 거기에 맞춰 대응하는 능력이라는 거군요. 그런데 본인을 ‘나답게’ 만드는 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A. 저를 저답게 만드는 건 결국 제가 ‘입 밖으로 내뱉는 말’이라고 생각해요.


사람들은 마음속에 담아두는 말도 많지만, 저는 그걸 내 진짜 모습이라고 보지 않아요.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잖아요. 결국 다른 사람들이 보는 내가 ‘나’를 정의하게 되니까요.


사람들이 말하는 나의 모습과 내가 의도한 나의 모습이 일치할 때, 그게 ‘가장 나다운 상태’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제가 입 밖으로 내뱉는 말과 행동이 중요하다고 봐요. 그것들이 다른 사람들이 나를 정의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주니까요.


Q. 그렇다면 자신을 잘 아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하나요?

A. 당연히 자신을 잘 아는 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더 중요한 건 ‘자신을 아는 이유’라고 봐요. 내가 왜 나를 잘 알아야 하는지, 그 목적이 중요하다는 거죠.


결국, 자신을 잘 아는 이유는 내가 의도한 나의 모습과 사람들이 보는 나의 모습이 일치하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내가 입 밖으로 내뱉는 말’이 나를 가장 나답게 만드는 핵심이라고 봐요. 내 말이 내 의도와 맞아떨어질 때, 그게 진짜 나의 모습이 되는 거니까요.


Q. Y는 메타인지가 꽤 잘 되어 있는 것 같아요. 스스로 그렇게 느끼나요?

A. 네, 메타인지가 잘 되어 있는 편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저는 무언가를 단정 짓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야.”라고 확정 짓는 게 잘 맞지 않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떡볶이를 생각해 보면 만약 온 세상 떡볶이가 매웠다면 저는 떡볶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을 거예요. 하지만 떡볶이에도 매운 것부터 덜 매운 것까지 다양한 종류가 있잖아요. 이런 다양성을 생각하면 “이건 내가 좋아하고, 저건 내가 싫어한다.”라고 단언하기가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어떤 식으로 스트레스를 풀어?”와 같은 질문을 받으면 쉽게 대답하기 힘들어요. 꼭 그 방법이 모든 상황에 적용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상황에 따라 다를 수 있다는 걸 항상 염두에 두기 때문에, 그런 질문에 답할 때는 늘 고민이 돼요.


Q. 그렇다면 바꾸지 않는 신념 같은 건 있나요?

A. 신념이라기보다는, 쉽게 바뀌지 않을 태도나 사고방식은 있는 편이에요. 저는 좋은 건 좋은 대로 흘러가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다른 사람들이 어떤 선택을 하거나 특정 방향으로 나아갈 때, 제가 다른 선택을 한다고 해서 그게 잘못됐다고 보진 않아요. 예를 들어, 다들 매운 떡볶이를 먹겠다고 해도 제가 덜 매운 떡볶이를 먹겠다고 하는 걸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하지만 만약 제 선택이 스스로 보기에도 어긋나거나 부적절하다면, 그 선택을 고집하지는 않아요. 결국 물 흐르듯 사는 게 중요하다고 봐요. 나 자신에게 충실하면서도 불필요하게 다른 사람들과 충돌하지 않는 태도가 저한테는 더 맞는 방향이에요.


Q. 결국 자신에게 충실하면서도 주변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하는 걸 중요하게 여기는 편인가요?

A. 맞아요. 저는 제 행동이나 말이 스스로 납득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사람들이 보는 나와 내가 의도한 모습이 어긋나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느껴요. 그래서 제 선택에 대해 지나치게 확정 짓기보다는, 상황에 따라 열려 있는 태도를 유지하려고 해요.


Q. 그럼 그런 관점에서 어렸을 때의 Y와 지금의 Y는 어떻게 달라졌나요?

A. 어렸을 때의 저는 지금과 꽤 달랐어요. 제가 기억하는 어린 시절의 저는 말수가 적고, 내성적이라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거든요. 말을 아꼈다고 해서 아예 표현을 못 하지는 않았지만, 원하는 게 있으면 그걸 직접적으로 행동에 옮기기보다는 저절로 이루어지길 바랐던 것 같아요. 특히 초등학교 저학년 때는 그런 모습이 더 두드러졌고요.


하지만 중학생이 되면서 점차 제 방식대로 표현하는 법을 배웠어요. 스스로 표현할 수 있는 것만 입 밖으로 내뱉으면서, 겉으로 보이는 모습도 조금씩 변했죠.


Q. 사람은 환경에 따라 변한다고 보나요? 아니면 본능적인 기질은 바뀌기 어렵다고 생각하나요?

A. 저는 사람의 행동이나 태도는 환경에 따라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본능적인 기질은 바뀌기 어렵다고 봐요. 사람은 기본적으로 자신이 살아가야 하는 동물이기 때문에, 본질적인 부분은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환경에 따라 행동 방식이나 생각은 달라질 수 있죠.


예를 들어, 우리가 흔히 “지금 생각해 보면 왜 그랬을까?”라고 말하잖아요. 그 당시에는 죽도록 싫었던 일이 시간이 지나고 나면 “왜 그렇게까지 반응했을까?” 하고 돌아보게 되는 경우가 있죠. 저는 그게 본질적인 기질이 변한 게 아니라, 환경과 경험을 통해 생각이 넓어지고 시야가 확장된 결과라고 봐요.


Q. 그러면 그런 생각의 확장도 변화라고 보지 않는 건가요?

A. 네, 저는 그걸 변화라고 보진 않아요. 본질은 그대로인데, 단지 생각의 폭이 넓어진 거라고 생각해요. 결국 사람은 자신이 처한 환경과 상황 속에서 살아가야 하니까요. 행동 방식이나 사고의 방향은 달라질 수 있지만, 본능적이고 본질적인 기질은 바뀌지 않는다고 믿어요.


Q. 삶에서 특정한 가치를 정해두고 살아가지는 않는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이게 무조건 맞다”는 확신 같은 건 없나요?

A. 네, 그런 확신은 없어요. 특히 제 삶의 방식에 대해서는 언제든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세상에 고정된 건 없으니까요. 그래서 무조건적인 옳음이나 고정된 가치를 정해두고 살진 않아요.


Q. 결국 모두가 죽음을 맞이하잖아요. 죽음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해요? 혹시 사후세계 같은 것에 대해 고민해 본 적이 있어요?

A. 제가 주도적으로 죽음이나 사후세계를 상상하거나 깊게 생각해 본 적은 없어요. 보통 그런 이야기를 누군가 하는 걸 보거나 들으면서 가볍게 생각해 보는 정도죠.


예를 들어, “내가 만약 귀신이 된다면 어떤 능력이 있으면 좋을까?”와 같은 상상을 한다고 하면,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가끔은 저를 괴롭혔던 사람을 골탕 먹이는 능력이 있으면 재미있겠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반대로 정말 고마운 사람을 위험에서 지켜줄 수 있는 능력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요. 누군가 가스불을 켜놓고 잤을 때 제가 귀신으로 가스불을 꺼주는 거죠.


그렇다고 사후세계를 진지하게 믿거나, 죽음 이후에 대한 고정된 생각을 가진 건 아니에요. 정말 말 그대로 가벼운 상상 정도예요.


Q. 만약 환생할 수 있다면, 어떤 생명체로 태어나고 싶어요?

A. 지금 제가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으니, 다시 환생할 수 있다면 또 사람으로 태어나고 싶어요.


사람은 사회적으로 가장 발달한 동물이고, 우리가 아는 한 가장 다양한 경험과 선택을 할 수 있는 존재잖아요. 물론 다른 생명체로 살아가는 삶도 흥미롭고 새로운 경험일 수 있겠지만, 그것에 대해선 제가 아는 바가 없으니 쉽게 상상하기 어렵더라고요.


하지만 나중에 생각이 바뀔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요. 새로운 시각이 생기면 다른 답을 할지도 모르죠.


Q. 중간중간 느꼈는데, Y는 무언가를 설명할 때 비유를 자주 사용하더라고요. 이런 습관은 언제부터 시작된 걸까요? 원래부터 그런 스타일이었나요?

A. 어릴 때부터 비유법을 많이 쓰는 편이었던 것 같아요. 제가 대화를 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내 생각이 상대방에게 온전히 전달되는 거거든요.


예를 들어, 우리가 표현이 풍부한 한국어를 쓰면서도 오해가 생길 때가 있잖아요. 그래서 처음에는 손짓이나 몸짓 같은 바디랭귀지를 많이 썼어요. 거기서 더 나아가 비유를 활용하는 방법을 자연스럽게 익혔고요.


비유는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정보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풀어가기 때문에 더욱 쉽게 전달되더라고요. 제가 자주 사용하는 *‘고속도로 이론’이나 **‘변기 커버 이론’ 같은 게 대표적이에요. 이는 공식적인 이론이라기보다는 저만의 비유인데, 복잡한 개념을 간단하게 풀어내어 대화하면 오해를 줄이는 데 효과적이라고 생각해요.


*고속도로 이론: 인도에서 걷는다면 차량에 치일 위험은 극히 나아지지만, 완전히 0%가 되진 않는다. 그러나 그 사실(완벽한 안전이 없다는 것)을 이유로 더 큰 위험(고속도로를 맨발로 뛰는 것)을 감수해선 안 된다.

→ 즉, 완벽하지 않아도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는 선택을 해야 한다.
**변기 커버 이론: 변기커버를 닫는 행위는 사람마다 다르게 받아들여진다. 어떤 사람에겐 필수적 행동이지만, 다른 사람에겐 고려의 대상이 아닐 수 있다. 이로 인해 변기커버를 닫으라고 요구하는 쪽만 짜증이 쌓이는 상황이 발생한다.

→ 즉, 모든 사람이 동일한 기준이나 행동 방식을 가지리라 기대하지 않는다.
두 이론 모두 공식적인 이론이 아닌 Y만의 비유법으로, 인간관계에서 당연한 것은 없으며, 상대의 관점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Q. 그럼 상대방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설득이 안 될 때는 어떻게 해요?

A. 그런 상황에서는 정말 깊이 고민하면서 물음표를 던지는 것 같아요. 단순한 질문이 아니라, “왜 그렇게 생각했을까?”를 진지하게 생각해 보는 거죠.


물론, 그러다가 “그냥 그렇게 하자.”며 끝낼 때도 있어요. 하지만 제가 상대방의 의도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면 마음이 답답하거든요. 그래서 상대방의 생각을 최대한 파악하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Q. 그런 접근 방식은 스스로에 대한 신뢰에서 비롯된 걸까요? 아니면 상대방을 더 깊이 이해하려는 노력의 일환일까요?

A. 두 가지 모두 작용한다고 생각해요. 스스로 합리적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믿기 때문에 상대방의 생각과 행동이 다를 때 “왜 그렇게 생각했을까?”를 고민하는 거죠. 그 과정에서 제 기준이 옳다고 여기는 마음이 깔려 있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동시에, 상대방을 더 깊이 이해하려는 노력도 있어요. 상대방의 관점이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면 답답함이 크거든요. 그래서 서로 다름을 좁히고 이해를 높이기 위해 이런 방식으로 접근하려고 해요.


241003 Y와 함께 글램핑 갔을 때, 따뜻한 불멍을 바라보며 느꼈던 그 순간


Q. 이제 고정 질문을 할게요. Y가 디자이너로서, 개발자로서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해 왔고, 앞으로도 성공적인 결과를 이루고 싶을 텐데요. 만약 Y의 인생 자체가 하나의 프로젝트라면, 어떤 결과물로 남기고 싶어요?

A. 궁극적으로는 편안하게 마무리되는 프로젝트였으면 좋겠어요.


인생에서 엄청난 성공이나 대단한 성취를 이루겠다는 것보다는, 큰 탈 없이 안정적이고 평온한 흐름을 유지하는 프로젝트가 되길 바라요. 화려한 명예나 부를 목표로 삼기보다는, 잔잔하게 흘러가며 자연스럽게 끝을 맞이하는 그런 프로젝트요.


Q. 그럼 지금까지 다양한 역할을 해왔는데, 그런 Y를 표현할 수 있는 하나의 ‘콘셉트’나 ‘아이덴티티’를 꼽는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해요?

A. 저는 ‘퍼포머(Performer)’라는 단어가 저를 잘 표현한다고 생각해요.


사람은 살아가면서 누군가에게 계속 보이게 되잖아요. 저는 제 내면만으로 “나는 이런 사람이다.”라고 규정하기보다는, 다양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정의하고 싶어요. 그런 유연함이 저에게 더 잘 맞는 것 같아요.


Q. 마지막 질문이에요. Y에게 저(N)는 어떤 존재인가요?

A. ‘동반자’요. 제 삶에서 모든 순간을 함께하는 존재가 바로 N이라고 생각해요.


N은 제가 해온 일들과 앞으로 해나갈 모든 일에 늘 함께하는 존재예요. 그래서 N은 저와 동반하지 않는 게 없는, 언제나 곁에 있는 존재라고 느껴요.


Q. 은유적인 표현을 하기도 하네요.

A. 오히려 저는 직관적인 단어라고 생각해요. 그게 더 익숙한 표현이기도 하고요. 요즘은 은유적인 표현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어요. 아무래도 컴퓨터 언어로 대화하는 시간이 많아져서 그런 것 같아요.(웃음)


Q. 여담으로, 제가 4살 연상이잖아요. 연상을 만나는 느낌은 어때요?

A. 솔직히 말해서 나이 차이 자체가 큰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상대방이 4살 연상이든 아니든, 관계에서 중요한 건 결국 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대하고, 함께 있을 때 어떤 모습을 보여주느냐라고 생각해요.


연상이라는 이유로 상대방에게 더 성숙하거나 책임감 있는 모습을 기대하는 것도 맞지 않다고 봐요. 마찬가지로, “아직 어려서 그래.”라는 말을 듣거나 하는 것도 별로 좋아하지 않거든요. 결국 나이라는 건 숫자일 뿐이고, 사람 자체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관계에서 서로를 존중하고 진정성 있게 대하는 게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봐요.






Y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의 성장 여정이 새삼 특별하게 다가왔다. 노래와 춤에 진심인 ENFP라는 첫인상 너머로, 디자이너에서 개발자로의 전환은 단순한 커리어 체인지가 아니었다. 디자이너로서 쌓은 창의성과 문제 해결 능력을 토대로 개발자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 나가는 모습에서 그의 유연함과 단단함이 동시에 느껴졌다.


그를 가까이서 지켜보며 깨달은 것은 Y의 내면이 내가 처음 마주했던 것보다 훨씬 더 강인하다는 점이다. 그는 외부 환경에 흔들리지 않고, 스스로 선택한 길을 묵묵히 걸어간다. 새로운 도전 앞에서도, 일상의 세세한 부분을 가꾸며 더 나은 삶을 만들어갈 때도 그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꾸준히 한 걸음씩 나아간다.


이는 우리의 관계에서도 분명히 드러난다. Y를 통해 건강한 관계를 가꾸는 법을 배우고 있다. 그의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접근은 내가 놓치기 쉬운 부분들을 돌아보게 한다. 일상에서 영감을 발견하는 방식, 도전을 마주하는 담대함, 그리고 삶을 하나의 여정으로 바라보는 시선은 내게 새로운 관점을 선물했다.


앞으로도 그의 여정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응원하고 싶다. Y의 단단함과 다재다능한 재능이 어디까지 펼쳐질지 지켜보는 것은 나에게도 큰 영감이 될 것이다. Y처럼, 나도 내 자리에서 더욱 단단히 뿌리내리며 나아가길.


240305 공원에서 함께 러닝 한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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