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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QWER Jul 07. 2020

알 수 없는 방향 #목동의 이야기

너무나 꼬여버린, 그리고 잃어버린 사람들


어느 여름과는 달리, 봄과 닮은 온화한 태양을 가진 여름이 찾아온 어느 날

누더기 양털 옷을 입은 목동은 길을 잃었다. 동 서 남 북 어디로 가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목동은 주위를 멍하니 둘러본다. 왼쪽으로 한 걸음, 오른쪽으로 한 걸음, 뒷걸음도 쳐보고

앞으로도 걸음을 내디뎌 본다. 그래도 방향은 잘 잡히지 않는다.


목동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초록색 물감을 입은 듯한 짧은 잔디들을 바라본다.

주변은 온통 잔디밭이다. 왼쪽으로는 지평선, 오른쪽으로도 지평선, 앞 뒤도 마찬가지다.

밤을 되어야 길을 알까. 목동은 마지막 남은 길잡이인 북극성을 떠올린다.


양들은 그런 목동을 곁에 두고 계속해서 풀을 뜯는다. 토실토실 살이 오른 뱃살에

새 하얀 눈 같은 실뭉치들로 온몸을 둘러싼 채, 풀을 뜯는 것에 온통 정신이 팔려 있다.

목동은 생각한다.

저 놈들을 차르에 도착하는 순간, 털을 벗겨버려야겠다고 말이다.

그 순간, 양들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한 걸음 한 걸음 방금 목동이 했던 것처럼

앞을 보고 뒤를 보고 좌우를 살핀다. 그리고 킁킁거린다.

양도 킁킁거릴 수 있었던가?


목동은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아무렴 어때,

양들은 아마도 집을 찾아가는 본능이 있을 것이다.

목동이 너무 어려서, 걸음마도 떼지 못할 때부터 이 길에서 풀을 먹던

대왕 양들이 이 무리에는 즐비했다.

목동은 양은 동물이니깐, 동물은 길을 잘 찾고, 냄새를 잘 맡으니깐

분명 집을 알 것이다고 생각한다.


목동은 만약 양이 집을 모른다면, 자신은 밤이 될 때까지 꼼짝 않고,

북두칠성이 어두운 밤하늘에 드리울 때까지 기다려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생각을 하는 한편, 목동은 이내 마음을 놓는다.

양은 동물이잖아 하고 생각한다.


느릿느릿, 양은 시간은 오래 걸리지만 조금씩 발을 떼어간다.

길을 걸어간다. 목동은 자신의 키보다 더 클 것만 같은 회초리를 든 채

그 길을 따라나선다.


1시간, 2시간쯤 걸었을 까.

저 멀리서 빨간색 덮개의 차르가 보이기 시작한다.

목동은 도착했구나 생각한다.


달그닥 달그닥, 갑자기 말 달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저 멀리서, 한 무리의 알 수 없는 사람들이 긴 창을 든 채, 차르 쪽으로 점점 다가간다.

달그닥 달그닥, 언덕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말발굽 소리가 잔디밭을 아우른다.


챙, 창, 푸식,

긴 창들이 목동의 아버지 어머니, 동생, 사촌들을 찌르기 시작한다.

목동은 놀래서 차르를 향해 달리려 한다.

그 순간 양이 목동을 먹기 시작한다.

마치 새파랗게 싹이 오른 새싹을 먹으려는 듯이, 목동의 왼쪽 누더기 끄트머리를 먹기 시작한다.

그 힘이 어찌나 강한지, 목동은 달리려던 두 발이 땅바닥에 올곧게 곤두선다.

목동은 양을 바라본다.


우두머리 양이 고개를 가로 짓는다.

떼가 탄 듯 누런 뿔이 좌우로 흔들린다.

목동의 눈동자에 양 똥 같은 눈물이 맺히기 시작한다.

양은 다시 한번 고개를 젓는다.


목동은 주저앉아, 새하얀 양들의 무리 속에 몸을 숨긴다.

목동이 숨은 건지, 양들이 숨겨준 건지 알 수 없다.

목동의 가족들은 그 미지의 무리들에게 도륙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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