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QWER Sep 17. 2020

어느 가을의 메마른 기억

누군가의 기억

  


깊은 슬픔이 내게 다가온다. 그 슬픔이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란 것을 안다.

하지만 그 깊고 진한 슬픔이 나를 때때로 찾아온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따뜻한 커피 한 잔과 담배 한 개비로 씻은 듯이 날아가기도, 혹은 맥주 한 캔에 사라지기도 한다. 마치 처음부터 찾아오지 않았다는 듯이 말이다. 하지만 그러지 않을 때도 있다. 깊고 깊은 마음의 밑바닥에서 올라오는 그 그림자는 쉬이 떨어지지 않기도 한다. 그럴 때면 답은 시간뿐이다. 그저 기다릴 뿐이다. 이 감정이 메마르기를, 며칠 씩 퍼붓던 빗줄기가 오후의 따스한 태양 속에서 메마르듯이 그저 사라지기를 기다려야만 한다.


그 밤들은 나를 지배한다.

숨 쉬는 것조차 힘든 그 순간을 나는 경험하고, 기억한다.


한숨을 두 번 조용히 내쉰다. 조금 있으면, 그 순간이 끝난 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배웠지만 고통은 달라지지 않는다. 눈물을 쥐어짜 내는 것도 한두 번.

그 다음은 그것으로 충분치 않다.

더 많은 대가를, 더 많은 고통을 필요로 한다.

나는 그러한 순간과 몇 년을 함께 한 뒤에서야, 그것이 삶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를 기억한다. 지금보다 조금 더, 어리숙하고 어린 시절이었다.

그녀도 그런 순간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말하고 싶었다.

같이 함께 그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그리고 묻고 싶었다. 괜찮냐고.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인정하기 싫은 슬픔을 가진 그녀와 그런 이야기를 나눈 다는 것은, 너무도 큰 바람이었다.

시간은 흘렀고, 그녀를 다시 마주했을 때 그녀는 세상을 제법 잘 살아 가고 있었다.

사랑하는 이를 만났고, 친구들을 만났다.

물론 그녀의 슬픔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순 없었을 것이다. 그 슬픔은 여러 의미로 오직 그녀만의 것이었다.


몇 년 뒤, 그녀를 다시 마주했다.

그곳은 그녀의 장례식장이었다.

하얀 꽃들이 그녀의 사진을 둘러싸고 있었다.

술을 한두 잔 마셔가던 이들은 큰 소리로 한 마디씩 마음에 담긴 말들을 꺼내어 놓기 시작했다.

‘그녀의 선택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도 안 돼’


나는 그 곳에서 그녀를 온전히, 아니 그 반의 반이라도 이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녀의 슬픔은 자신 말고는 이해할 수도 도울 수도 없는 일이었다.


나는 아주 가끔 그녀를 생각한다.

그녀가 어디에서라도 행복하기를 기원하곤 한다.


그리고 혼자서 중얼거리곤 한다.

그 누군가의 슬픔에, 저주에게 말이다.


‘거기까지만 하라고, 충분하지 않냐고…..’



그녀를 저버린 것도 결국

너희의 그 오만한 잣대였으며

함부로 말한 당신의 입술이었 다는 것을

결코 당신들이 죽을 때까지

죽고 나서도 잊지 않았으면 한다.

평생의 알 수 없는 짐 처럼

당신의 어깨를 짓눌르기를

내가 21살의 그 계절에

그 무게를 지탱하기를 맹세하며

평생을 짊어지려 한 그 무게를

당신이 행복에 겨워 어쩔 수 없어 하는

어느 한순간의 시점에서

당신을 짓누기를 바라고 바란다.

작가의 이전글 알 수 없는 방향 #목동의 이야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