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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노마 Nov 10. 2019

누군가를 위한 나의 하루는,

누군가에게는 한 겨울이 된다.

며칠 전 다녀온 김장봉사활동은 나에게 많은 것을 느끼게 해주었다. 내가 체 하루가 안되게 투자한 하루의 시간이 누군가에게는 이번 겨울을 보낼 수 있는 아주 소중한 시간임을 깨닫게 되었다. 비록 땀에 절어 땀냄새를 풍기며 집에 돌아가게 되었지만, 내 몸에서 땀냄새가 나고 있다는 것을 잊을만큼 너무 뜻깊고 감사한 순간도 있었다. 특히, 직접 어려운 가정에 방문해서 김치를 전달드리는 그 순간에 느낀 감정은 아무래도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매주 토요일이면 늘 전날에 술에 절은 상태로 잠들어 하루종일 잠만자는 의미없는 하루을 보냈다. 김영하 작가가 "우리가 오래 머문 공간에는 상처가 있다"고 말했듯 나 또한 집에 고스란히 머무는 시간이 마냥 좋지는 않았기에, 늘 술에 취해 잠들고 짧은 하루를 보내기 일쑤였다. 매번 이런 주말을 보내는 내가 한심하기도 했고, 이렇게 시간을 보낼바에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시간으로 쓰자는 마음으로 봉사활동을 신청했다. 


어떤 봉사활동을 해야 할까 고민하던 시기에 마침 김장봉사를 하는 곳을 알게 되어 신청을 하게 됐다. 보자마자 덜컥 신청하지 않고 고민을 했다. 솔직한 마음으로, 막상 금요일에 술도 못마시고 늦잠을 잘 수 있는 황금같은 주말에 일찍 일어나 봉사활동을 하러 나서야 한다니 선뜻 신청버튼이 눌리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왜 봉사활동을 하고자 했는 지 다시 한번 마음속으로 되새기고는, 신청버튼을 눌렀다. 운 좋게 선착순 막차를 타게 되어 무리 없이 봉사활동을 신청할 수 있었다.


나는 김장봉사를 신청했는 데, 불우한 가정의 아이를 가르치거나 책을 읽어 녹음해서 시각장애인들에게 전달하는 봉사활동 등 선택지가 다양했지만 내가 제일 잘할 수 있는 것은 몸쓰는 것이기에(힘이 쎄진 않지만, 그것보단 뇌가 덜 쎈 편이다) 김장봉사를 신청했다.  


아침일찍 일어나 더러워져도 괜찮은 신발을 신고, 트레이닝 바지에 등산용 바람막이를 입고 봉사활동을 하러 나섰다. 야외에서 김장이 진행되기에 미세먼지와 온도를 확인했다. 다행히 미세먼지는 없었지만, 여러겹 껴입었음에도 살을 파고드는 매서운 추위에 고생을 좀 하겠다는 생각을 하다보니 어느덧 봉사활동장소에 도착했다. 


하나 둘 신청한 사람들이 모이고 복지사의 주관 하에 오리엔테이션을 진행했다. 처음 와서 잘 몰랐는데 김장을 시작하기 전 늘 장애인 인식 개선교육을 진행했는데, 이번에는 '발달장애인'을 주제로 영상을 보는 교육이 진행되었다. 늘상 주변에서 누군가 장애인의 반대말을 정상인이라고 하는 잘못된 표현을 볼때면 "장애인의 반대말은 정상인이 아니라 비장애인이다."라고 고쳐주는 나였지만 막상 영상을 보다보니 "난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다른 것이 아니라 그냥 국어표현에 조금 더 신경쓰는 사람이었을 뿐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영상을 글 하단에 링크해두었으니 관심있는 독자께서는 꼭 한번쯤 보시는 것을 추천드린다).


인식개선 교육을 마치고 김장에 직접 속을 넣는 김장조부터 포장을 전담하는 포장조, 그리고 절인 배추나 속이 모자랄때마다 채워주는 지원조 등 임무를 분담하고 본격 김장에 나섰다. 


나는 포장조를 맡게 되었는데, 앞서 김장조가 속을 잘 무쳐주면 그 김치를 박스에 넣고 적당한 무게를 잰 다음 케이블타이로 봉지를 잘 묶어 전달하는 역할이었다. 내심 김장봉사이니 만큼 직접 속을 무치고 김치를 만드는 일을 하고 싶었지만 내 힘을 요긴하게 쓸 수 있는 일을 하고자 했기에 무거운 김치통을(약 10kg) 들고 나르는 포장조 역할에 커다란 불만은 없었다.


나는 멀뚱멀뚱 서서 포장을 하고 전달하는 단순한 작업을 했지만, 허리를 숙여 배추에 속을 잘 발라야하는 김장조를 보며 내심 미안한 마음도 있었다. 허리가 아프고, 다리가 부어올만한 힘든 일을 맡게 되었음에도 묵묵히 잘 해내는 김장조분들이 내심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그저 의미없이 보내던 내 시간을 좋은 곳에 투자하고자 봉사활동을 신청하게 된 나와 달리 웃고 떠들며(철저히 마스크, 모자로 이물질이 들어가지 않도록 복장을 했다) 즐거운 분위기에 봉사활동을 해나가는 그들이 대단했다.


오전에 긴 김장시간을 마치고 점심을 먹은 뒤 돌아와 앞서 만들어진 김치를 직접 장애인 가정에 배달하게 되었다. 가정에 직접 방문해 김치박스를 들고 전달하게 되었는데, 앞서 김치를 만들던 순간보다 이 김치를 전달해드리는 그 순간에 느낀 감정이 잊혀지지 않는다.


내가 김치를 전달하게 된 가정은 주로 지체, 뇌병변, 시각 등 그 정도가 심하고 거동이 불편하신 분들이었다. 김치를 잘 받았다는 서명을 부탁드리면 "내가 눈이 잘 안보여서.."라고 말씀하셔서 직접 펜을 손에 쥐어드리고 동그라미를 쳐야 할 곳에 펜끝을 가져다드리는 경우도 있었고, 집안에서 나오지 못할만큼 장애가 심하셔서 요양사분이나 가족분이 김치를 받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한가지 동일한 것은, 한 집 한 집 벨을 누르고 김장을 전달해드릴때마다 연신 '너무 감사하다'고 말씀해주셨다는 것이다.


그런 감사함을 들으며 기분이 이상했다. 물론 김장조 분들께서 잘 만들어 맛있게 담궜겟지만, 집에서 담구는 김치만큼 잘 절여지지도 않았을 것이고 김치속이 능숙하게 발라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심지어 11월 초라는 다소 이른 시기이기에 김치를 담궈 한 겨울이 되면 너무 푹 익어 맛있게 먹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런 김치가 내가 먹는 반찬이었다면 불만을 가질만도 했을텐데, 이분들은 그저 이번 겨울을 잘 보낼 수 있는 김치가 왔다는 사실에 기뻐하셨고 감사하셨다. 때로는 거동이 불편하신 분들이셔서 가족분이나 요양사분들이 대신 받는 경우도 있었는데, 나오시지는 못했지만 방안에서라도 연신 "감사하다"고 말씀해주셨다. 


집에서라면 가족이 다 모이는 연례행사 정도인 김장이, 내가 밥을 먹을때면 늘상 올라와 있는 김치가 누군가에게는 한겨울을 든든히 보낼 수 있는 감사함이라는 것이 슬펐다. 잘 만들어진 김치인지, 맛있는지 아닌지도 잘 모르지만 그저 이렇게 김치를 전달해주는 우리에게 감사함을 표현해주는 그분들께 너무 감사했다. 


누군가 나에게 봉사활동을 '왜 해야된다고 생각하는지' 물은적이 있다. 나는 선뜻 대답하지 못했는 데, 그 질문을 한 사람은 '삶에 감사하기 위해'라고 알려주었다. 봉사를 신청할때의 내 모습은 허투루 보내는 시간이 싫어, 그 시간을 좋은 곳에 쓰자는 이유였지만 막상 봉사활동을 마치고 돌아올때 나는 너무나도 큰 감사함을 느꼈다.


내 몸과 마음이 건강해서 느낀 감사함이 아니라, 나의 작은 시간과 도움에도 '감사하다'고 말해주는 분들께 느끼는 감사함이었다.


나의 노동을, 내 시간을 소중하게 여겨주고 또 그렇게 만들어줘서 너무나도 감사했다. 매월 경제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기부를 한 것도 아니고, 그저 주말 하루를 아니 반나절을 투자해 도와드렸을 뿐인데 너무나도 감사해하셨다. 아마도 그때 나에게 '삶에 감사하기 위해 봉사를 해야 한다.'라고 말한 그 사람도 이러한 감사함을 말했던게 아닐까?


다음주에는 연탄봉사도 신청할 예정이다. 내가 의미없이 보내던 시간, 내가 잠깐 쉼을 포기하면 얻을 수 있는 그 시간을 소중하게 만들어주는 분들을 돕기 위해 춥겠지만 나설 생각이다.


누군가를 위한 내 하루가, 누군가에게는 든든한 한겨울이 될 수 있기를 빌며..


*Photo by Josh Appel on Unsplash


추신. 혹시라도 우리 어머니께서 이 글을 읽으실까봐 남겨본다. 힘든 김장을 하며 매해 겨울이면 고생하셔서 일년치 김치를 담궈주시는 어머니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 그리고 그 김치는 무척이나 맛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말씀드리고 싶다 :)


추신2. 아래 영상은 봉사활동에 가서 본 영상이다. 나는 이러한 장애인분들을 '차별하지 않는다'고 살아왔지만 그렇지 않았던 것 같다. 또한 나는 정말 그들을 잘 몰랐다고 느꼈다. 8분이 긴 시간이 일 수도 있지만 꼭 한번쯤 보시기를 추천드린다.


오늘도 재미없는 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By 하노마.


* Main Photo by Fabrice Villard on Unsplash

https://youtu.be/L9Jxevhf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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