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노마 Jun 10. 2020

회사를 떠나고 싶어, 제주로 떠났다.

처음엔 그랬다. 사람도, 나도, 회사도 아닌 일이 싫어졌다.

그땐 그랬다. 몇 개월간 마음 졸이며 지원 결과 메일을 기다리던 시절. 막상 메일이 오면 들려오는 "귀하의" 소식에 우울함을 감출 수 없었다. 나 자신이 그렇게나 작아질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렇듯 얼마나 어렵게 쟁취한 일인데, 직장인데, 그런 것들이 싫어졌다.


그래서 제주로 떠났다.


길도 그렇더라

돌이켜보면 군에 있으며 행군을 하던 시절, 정처 없이 앞사람의 발뒤꿈치만 쳐다보고 걸었다. 그때가 좋았다. 아무런 생각이 없었으니까. 나는 그래서 제주도의 올레길로 향했다. 이것저것 알아보고 싶지도 않았고, 그럴 생각을 하지도 않았다. 50살이 넘은 자식도 "애기"라고 했던가, 올레길 선배님인 어머니는 자신의 경험, 그리고  도움이 될만한 정보를 전해주셨다.


걷기 좋을 만한 곳에 숙소를 잡고 다음 날 아침 올레길 7코스를 걷기 시작했다.


이 녀석 하나 믿고 발걸음을 시작했다.


제대로 된 정보도 없이 떠나서인지, 처음 한 시간은 그저 리본을 찾기 바빴다. 행여나 하나라도 놓칠까, 간세하나라도 그냥 지나칠까, 잘못된 길로 가는 건 아닐까, 잔뜩 긴장한 채 발걸음을 옮겼다.


근데 어느 순간 리본도, 간세도, 화살표도 보이지 않았다.


벌써 이 길로 온 지 꽤 된 것 같은데, 길치도 아닌 내가 이렇게나 오래 길을 놓친지도 모르고 걸어왔다니.. 핸드폰이 있음에도 길을 잃은 건 아닌지 이러다가 해가 지고 나서야 숙소에 도착하는 건 아닐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여행자센터에서 받은 지도를 들여다보고, 내 기억에 의존해 길을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리본 녀석이 나타났고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여담이지만 네이버 지도에 올레길 코스가 표시된다. 이걸 일찍 알았더라면..). 생각보다 멀리 오지 않았었고, 리본도 근처에 있었다. 잔뜩 긴장하고 걸어서인지 긴장이 풀린 다리가 조금씩 떨리기도 했다.


우리 삶도 그렇지 않을까?

맞는 삶이 어디 있고, 틀린 삶이 어디 있겠냐만은 우리는 늘 스스로의 삶을 재단한다. 지금 이 삶이 틀렸다고,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근데 이상하게도 쉽사리 뒤돌아오지 못한다. 그건 그 길이 더 이상 혼자가 아니어서 일수도, 혹은 틀렸다고 생각하지만 그 길이 너무나도 휘황찬란해서 일수도 있다.


뒤돌아 걷는 것은 새로이 걷는 것.


잔뜩 긴장하며 왔던 길을 다시 걸을 때, 보지 못했던 새로운 풍경이 보였다. 지나온 나무의 반대편, 걸어온 길의 모양, 그리고 새로운 풍경까지. 잔뜩 긴장하고 뒤돌아왔지만 그 나름의 아름다움이, 그리고 기억이 남았다.

용기를 내 뒤돌아 걷는다는 것은 새로운 길을 걷는 것이다. 그리고 그 길은 새로운 기억으로 남는다. 누군가 나를 추월해버렸더라도, 혹은 시간이 촉박해오더라도 상관없다. 뒤돌아 온 길만큼 내 기억은 더 풍족해졌으니까.



빨리 걷는 길, 풍경을 보는 길, 마음 가는 대로 가는 길

길은 어떻게 걷는 것이 맞는 걸까? 남들보다 빨리 걷기, 풍경을 보며 걷기, 때로는 길이 아닌 곳으로 걸어보기.  


저마다의 풍경, 저마다의 이유, 저마다의 아름다움이 남을 것이다.


당신의 여정에는 어떤 아름다움이 있는가?


당신만의, 그 온전한 길을 응원하는 이가 있음을 잊지 말기를


올레길 7코스, 2편에 계속됩니다.


오늘도 글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당신의 여정에 답이 아닌 질문이 있기를.


- 하노마 드림.


Main photo, Thanks to takahiro taguchi for sharing their work on Unsplash

작가의 이전글 만약 당신을 마주친다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